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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18-25
강설날짜 2013-03-06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십자가의 도!


말씀:고린도전서 1:18-25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가운데 있는 파당 문제에 대해서 권면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베드로 파다, 나는 그리스도 파다고 하며 서로 파당을 지어 다투는 그들에게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가?”라며 책망했습니다(1:13). 그리고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했습니다(1:10). 그런 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들에게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이 미련하고 거리끼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그 미련한 십자가의 도로 구원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21).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전도를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좋아하는 방법으로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꺼려하고 싫어하는 십자가의 도로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구원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의 공로가 전혀 개입되지 않고 오직 우리 주님의 일하심으로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거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모르면 이 땅의 교회들은 고린도 교회처럼 사람을 중심으로 파벌이 생기고, 자기 자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얼마나 많은 전도 방법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고구마 전도 법, 진돗개 전도 법, 디모데 전도 법 등등 너무 많아서 다 나열하기도 힘듭니다. 그리고 그 전도 법을 전수하기 위한 부흥회가 교회마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전도방법을 소개하면서 자기들의 방법이 미련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자기들의 전도방법이야 말로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의 전도 방법을 교회에 적용해 봤더니 교회가 단기간에 엄청난 부흥을 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전도방법들의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 필요를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입니까? 얼마나 사람들에게 매력 있는 방법입니까?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이런 전도방법을 차용하고, 이런 전도방법을 전수받기 위해 부흥회를 합니다. 사람들도 그 전도 비법을 배우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런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지혜로는 어떤 인간도 십자가를 알고 믿게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다시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 얻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멸망 받는 자들에게 십자가란 미련하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십자가로 두 편으로 나누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서 미련하게 여기는 자들은 멸망 받는 자들이고, 십자가를 보고서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로마시대의 사형 형틀입니다. 로마에 반역하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형틀입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보면 네로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서는 그것을 기독교인들이 한 짓으로 돌립니다. 민중들의 분노를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는데 처음에는 원형경기장에서 사자 밥이 되게 하고, 두 번째는 십자가에 메달아 화형을 시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처형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십자가는 그런 사형 형틀입니다. 그런데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데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죽어 갈뿐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모든 원수를 쳐부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아이심을 보여 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자기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고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신명기 21:23절에 보면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나무에 달린 자 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보면 십자가는 정말 저주 받아 죽은 죽음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저주 받아 죽은 한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라는 메시아는 강한 능력으로 자기들을 구원해 줄 그런 메시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가 와서 강한 능력으로 자기 민족을 구원하여줄 표적을 보여주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냥 십자가에 달려 힘없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미련하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9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지만 정작 보여주시고자 하는 최종적인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을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땅속에 삼일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표적이 보여줄 진짜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도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미련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9:1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여 버린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이 말씀 앞뒤를 조금 더 보겠습니다. 이사야 29:9-16절을 보면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지혜와 총명을 폐하여 버리시는 이유는 인간들의 거짓됨과 교만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입술로만 존경하지 마음은 먼 것입니다. 곧 말로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 실상은 자기 자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지은 자를 향하여 총명이 없다고 하는 이런 인간들의 교만을 인하여 인간의 지혜와 방법과 선행과 공로로는 그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도록 조치하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21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지혜 자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비가 어디 있고, 말 잘하는 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 즉 십자가의 도로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22-23절을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입니까? 여기서 ‘거리낀다’는 것은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왜 걸림돌이 되는가 하면 십자가란 능력이 아니라 실패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조차도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돌아선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십자가를 지는 메시아인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헬라인들에게는 왜 십자가가 미련한 것입니까? 헬라인들의 신의 개념으로는 신이 육체를 입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다는 것 자체가 미련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세상의 삶의 원리란 인과율의 세계입니다. 자기의 행위를 자기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내가 선행을 하면 그 보상을 내가 받는 것이고, 내가 악행을 하면 내가 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원리가 다 이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려서부터 보던 동화나 전설의 고향 이야기들이 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능성을 이야기 하면서 선하고 착하고 바르게 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윤리요, 도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도 윤리와 도덕의 연장선상에서 인간이 서로 착하게 살도록 만드는 기능으로 보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면 신이 복을 주고 죽어서도 좋은데 가고, 나쁘게 살면 신이 벌을 주고 죽어서도 나쁜데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과율의 원리에 비춰볼 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평생 강도짓을 하다가 사형당하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습니다’고 한 것으로 인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까? 인과응보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강도가 천국에 간 것입니다. 강도가 천국 간 것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이게 세상 지혜로 될 말입니까? 평생토록 율법을 지키고 금식하고 전도하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았던 바리새인들이 단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해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본 자손들은 빼앗기고 이방인들이 차지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 할 수 있습니까? 세상 지혜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는 사람의 지혜나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 자체의 능력으로 인한 구원이지 인간이 십자가를 믿어주어서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기까지는 예수님이 하시고 그것을 믿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전도 방법들이 십자가를 진 것은 예수님이 하시고 믿는 것은 사람 편에서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구원에 있어서 자랑 할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십자가를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나는 잘 알아들어서 구원받았다는 자기 자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안에도 언제나 이 문제는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도 앞에서 자기 신앙을 점검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는 것이 과연 은혜인가, 아니면 나의 책임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것은 처음 믿을 때 이야기고, 믿고 나서는 그래도 차이가 있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믿고 나서도 더욱 알아가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3:17-19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빌립보서 3:8-12절에 보면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십자가를 알기 전에 나타난 열심과 헌신을 따라갈 자가 과연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안 후에 자신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고상한 지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붙잡고자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를 알고 난 이후에 나타난 열심과 헌신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곧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앎으로 나오는 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도의 은혜를 덧입을 때만이 교회 내의 분열과 다툼과 파당문제와 같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합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입지 않고서는 믿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너보다 낫다는 자기 자랑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느니, 나는 어느 파다느니, 하는 것이 나올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자랑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도 십자가의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란 날이 가면 갈수록 그리스도만 자랑되어질 뿐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이의 지혜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십자가의 도를 날마다 더 깊이 알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십자가의 도의 은혜를 더 깊이 누려가게 하시고, 오직 십자가의 도를 자랑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에까지 자라가는 교회,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가는 참된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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