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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6:13-24
성경본문내용 (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14)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16)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17)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18)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20)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21)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22)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24)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강설날짜 2014-01-22

2014년 고린도전서 공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말씀:고린도전서 16:13-24 

 

오늘 말씀은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 가까이 고린도전서 말씀을 공부해 왔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들이 무엇이었습니까? 파당 문제, 음행의 문제, 우상의 제물 문제, 세상의 법정에 소송하는 문제, 결혼과 이혼의 문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심과 성찬 문제, 은사 문제,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문제 등등 참으로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고린도교회 문제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 가운데 왜 이런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까?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들에게 전하여진 복음 진리 가운데 굳게 서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1:18).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오직 복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하셨습니다(엡 2:8-9).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자기들이 구원함을 받은 것이 마치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무언가 뛰어난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자기 자랑이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믿는 자기들까지 자랑하고 내세운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교회 가운데 많은 문제들이 터져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이런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해 아래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일이 오늘날 우리교회에서도 다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그럴 것이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면 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지음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골로새서 1:15-17절 말씀을 보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모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만물은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우리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피조물로서 당연한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보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선다’라는 말씀은 그저 ‘믿습니다’고 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무엇이 믿음인지 분별을 하고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했습니다. 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합니까? 이 말은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고린도전서의 결론입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교회의 모든 문제들이 사실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깨어서 믿음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문제들 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위에 굳세 서서 사랑으로 행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파당이 생기는 문제를 예로 보겠습니다. 교회 가운데서 왜 파당이 생기는 것입니까?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랑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서 자기 자랑이 나오고, 자기주장이 나오고,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파당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옳고 그름만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파당이 생기게 되면 사생결단으로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보십시오. 여당과 야당이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동원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를 보면서 이제 국민은 정치에 혐오를 느낍니다. 고린도교회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성경도 하나님도 다 동원하면서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주장 속에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마음이 사실 우리 안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도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바냐서 2:15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하며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같이 황무하여 들짐승의 엎드릴 곳이 되었는고. 지나가는 자마다 치소하여 손을 흔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합니다. 유다를 심판하시고 주변 나라들까지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데 왜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이 말씀은 누구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4: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앗수르는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교만을 떤 것입니다. 그로인해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소리 지르는 우상들이 우리 속에 다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파당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다 자기 사랑으로 귀결이 됩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여도 자기 사랑이 나옵니다. 은사를 사용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지식을 사용하여도 자기를 사랑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다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하는 몇 사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15-18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고 합니다.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 지역의 전도의 첫 열매인데 이 스데바나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스데바나와 함께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함께 왔는데 이런 사람들이 고린도교회의 부족한 것을 채웠다고 합니다. 이들이 나와 너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고린도교회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주님의 은혜에 기초해서 사랑으로 헌신적으로 섬긴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들이 믿음이 있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헌신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자원함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 주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행한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이 아니라 답답하게 될 것입니다.


 

19-20절 말씀을 보면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아시아의 교회들과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문안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서 모인 것입니다. 이들이 고린도교회에 안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도 서로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이런 사람들이 물질로 성도를 섬기고, 자기의 집을 성도들이 모이는 모임의 장소로 내어놓고 하는 일들이 무엇 때문에 하였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시기 질투로 한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랑이나 나중에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으로 하는 것 자체가 은혜요, 복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1-22절 말씀을 보면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자신의 편지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친필로 쓰는 부분인데 그중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함부로 아멘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동안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무엇을 할 때에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여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 다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이며, 신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셔서 메시아를 보내셨는데도 그 메시아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지는 않아도 착하게 살면 천국 간다고 여기는 것이 세상의 종교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 22절의 말씀 곧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는 말씀에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굉장히 기분 나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지워버려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 아들 앞에 모든 무릎이 꿇는 것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아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영원한 지옥형벌에 보내심으로 또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러느냐고 우리가 물을 처지가 못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질문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아들을 알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서 그 분을 나의 주로 고백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일이 은혜로 일어난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과연 그분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나를 사랑하면서 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위하여 교회에 나오고, 나를 사랑하여 헌금을 하고, 나를 사랑하여 무엇을 하였다면 그것은 다 저주를 받는 것임을 꿈엔들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인생이 무엇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살아온 것입니까? 자기를 위하여 살아온 모든 세월이 다 하나님의 진노를 차곡차곡 쌓아온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직장을 선택해도, 교회를 선택해도, 전도를 해도, 헌신을 해도 모두가 다 자기 사랑이 우선이지 과연 예수님을 사랑하여 한 것이 얼마나 됩니까?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교회의 모든 문제들도 결국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주를 사랑하지 않기에 나오는 문제들 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22절을 다시 보면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임하십니다. 언제 오신다는 것입니까? 이미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심으로부터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미 종말의 세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주님께서는 장차 하나님의 때가 되면 영광의 주요,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이때는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다 주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 앞에서 지금까지 자기를 사랑하며 살아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마땅히 저주를 받아 멸망할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입혀 주시는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우리 대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의 저주가 바로 나의 저주임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더욱더 자신의 죄의 깊이와 넓이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의 죄가 교묘하고 뿌리 깊은지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거부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용서함을 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23-24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찌어다”고 기원하며 고린도전서를 마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더 이 주님의 사랑이 깊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교회가 더욱 성숙한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고, 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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