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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유다서 1:1-2

2008년 유다서 공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말씀:유다서 1:1-2

 

오늘부터 우리는 유다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유다서의 저자는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야고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유다서의 저자 유다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유다가 이 서신을 쓴 동기는 3절에 보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당시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믿음의 도를 무너뜨리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에는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변호하기 위해 이 서신을 섰습니다. 유다서는 아주 짧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유다서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고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위에 굳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마다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부자 되게 해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병 고쳐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성공하게 해주시는 예수님, 이런 식으로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입니까? 오늘 말씀 1절을 보면 이 서신의 저자인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곧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어려서부터 자기들과 꼭 같은 형제로 알았던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자신들은 그의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지금 주와 그리스도라는 말이 그 뜻과 의미를 제대로 모른 채 많이 사용하다보니 익숙하여져서 별 의미 없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주와 그리스도라는 말은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 한 마디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핍박도 받지 않을 것인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기에 순교까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중요한 고백이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유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평소에 자신들과 같은 부모 밑에서 자기들과 꼭 같은 사람인줄 알고 살았는데 그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7: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에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에만 다니시니 그의 형제들이 왜 유대에 올라가지 않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형제들이라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심지어 마가복음 3:21절에 보면 예수님의 친속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옵니다. 이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믿기 힘든 사람들이 그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오백여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기에 그 제자들의 무리 속에 예수님의 동생들도 함께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14절을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모인 무리 중에 예수님의 동생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 무리의 수가 12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자 그 제자들이 나가서 전한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2:36절을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니 그동안 자신의 육신의 형으로 알았던 예수, 심지어 미쳤다고 여기기까지 한 예수, 그래서 믿지 않았었는데 성령이 임하게 되니 자신은 갑자기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바울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행 9장). 그러자 이단의 괴수라고 여긴 예수가 갑자기 주와 그리스도가 되고 자신은 그의 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예수 믿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공부에서 배웠듯이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내가 주인이고 예수님은 알라딘의 램프처럼 주문만 외우면 펑 나타나서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면서 나타나는 그런 거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거인을 불러내는 주문을 기도로 바꾸고 그 램프는 문지르는 손길을 정성으로 바꾸어 예수님도 기도와 정성으로 불러내어 자기의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한다면 이것은 결단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합니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라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형제는 야고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의 종(노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호칭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호칭입니까?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세상의 종이 아닙니다. 자기 영광이나 자기 자존심의 종이 된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명칭인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 감사와 감격으로 다가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만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한다고 말하면서 그 마음이 멀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르침이란 사람이 언제나 주인공이요, 중심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라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결국 사람 중심입니다. 곧 사람을 위함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외치는 구호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 중심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가르침입니다.

 

이사야 29:13절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입술로만 존경하고 마음이 떠난 이유는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혜자의 지혜와 명철자의 총명을 가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들어도 사람의 가르침만 가득하니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말은 입술만의 고백이고 마음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무엇을 배경으로 말씀하시는가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왜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느냐고 하는 상황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장로들의 유전은 지킨다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마땅히 공경하여야 할 일을 하나님께 드린바 되었다 곧 고르반 하고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로서 고르반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의 중심이란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우리는 그의 종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의 주인이 내 자신이 아닙니까? 나의 만족과 나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영광과 성공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유다라는 이 말한 마디 앞에서 회개할 것이 갑자기 산더미같이 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회개거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종의 자리에 있지 않고 주인의 자리에 있는 것을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마 6:33). 이것을 알려주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내용도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어야 자신이 진정으로 종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1절 중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유다는 세상이 알 수 없는 가치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것,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얻은 것,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있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주님을 부를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길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3-14절을 보면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를 복음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것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며, 이런 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런 부르심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역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을 때에 그 사랑을 십자가로 확증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복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기에 신령한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 신령한 복이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3-6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상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과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킨다는 말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지키신다는 말씀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란 고린도전서 1:8-9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부르신 것은 사랑으로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실 하나입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끝까지 견고케 하시는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고맙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면 유다는 이 편지를 쓰면서 왜 이런 인사말을 하는 것입니까? 3절에 보면 우리가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하여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였다고 합니다. 구원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 은혜와 사랑이 넘쳐서 편지하려고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것과 함께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권면은 다음 주에 다시 보겠습니다만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구원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권면을 추가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유다서를 받는 성도들은 지금 어려움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도 무엇을 통하여 너끈하게 이기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는다는 말씀으로 세상의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사의 마지막 말은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라”고 합니다. 긍휼이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이 긍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자들은 평강을 누립니다. 사람들이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염려들로 인하여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또 믿는 자라고 하여도 자기의 행위를 돌아보면 결코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 이십니다. 의롭다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감히 송사하겠습니까? 로마서 8:35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합니다. 곧 죽음조차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안에서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충만히 받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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