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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유다서 1:5-7

2008년 유다서 공부
                                                       다시 생각나도록
말씀:유다서 1:5-7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 유다는 일반으로 얻는 구원에 대하여 편지를 쓰려고 하였습니다.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란 모든 인간이 참여하는 구원으로 인간의 어떠한 자격이나 조건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단번에 믿음의 도로 얻는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그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편지를 쓰려던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이런 은혜를 색욕거리고 바꾸는 자들이 나타났기에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편지를 한 것입니다.

 

이런 은혜로 인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 것인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얼마나 복음이 좋았으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순간에 가슴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복음의 내용보다 먼저 찬송의 말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1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한 것이니…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를 하는데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찬송하리로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 전체를 한마디로 말하면 오직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나 바울이나 율법아래 있던 자들이 은혜를 입고 나니 그 은혜가 얼마나 좋은지 그것을 전하기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를 오해하고 이용하는 무리들이 항상 등장하는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하니 그러면 은혜를 더하려면 죄를 더 지어야 되겠네’ 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복음이 전하여지고부터 계속되어온 싸움입니다. 오직 은혜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은혜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을 정당화 하는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혜만이 아니라 행함도 따라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은혜만이 아니라 행함도 있어야 한다고 하는 곳에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가리는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둘을 절충하는 것입니다. 곧 신인협력설이 나온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볼만한 구절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유다서에서도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하면서 구약에서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다가 말하는 구약의 예들이 행함이 없어서인지 믿음이 없어서 인지를 추적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다고 합니다. ‘범사를 알았다’는 말은 ‘그들의 구원이 은혜로 된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이미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쓴다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1-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듣고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거짓 선생들이 들어오니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봉사도 곧잘 하는데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만 구원이 일어나는지, 오직 은혜로만 구원이 일어나는지 다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정말 잘 잊어먹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도 자기가 행한 것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원수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도 받은바 은혜는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유다는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5b절에 보면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하십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 어떻게 구원하여 내셨습니까?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따라 때가되어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발린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피 안에 있었던 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피의 능력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홍해 바다 앞에서 어떻게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바다요, 뒤는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고서는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것은 다 어디로 잊어버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 속에서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종이 되어 그들을 섬겼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모세는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합니다. 그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홍해가 갈라지고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홍해에 수장되는 것을 보고서 여호와의 구원을 찬송합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라고 모세가 찬송하고 백성들이 다 화답합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5-16장에 보면 이 큰 구원을 보고서도 3일 만에 물이 없다고 다시 원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없는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광야 40년 동안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 동안은 믿음 없는 자들을 멸하시는 기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멸하셨습니까? 그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민수기 13장에서 출애굽한 후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40일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기를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대한 아낙 사람들과 강한 성벽으로 되어 있기에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아서 당할 수가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이 또 원망하면서 장관을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합니다. 민수기14: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출애굽부터 홍해를 건너 시내산의 강림을 보고 지금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개혁 한글판 성경에 보면 ‘생각하지 아니했다’는 말이 작은 글씨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문자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뜻을 이해하도록 첨부한 글씨인데 우리는 이것을 믿음과 연결하여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한 자들은 행함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한 것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렇게 놀라운 은혜로 인도하셨기에 가나안도 은혜로 들여놓으실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런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무엇을 생각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생각지 않고 자기들의 손익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광야에서 죽은 자들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하고 중도에서 멸망당하였는가?’하고 물으신다면 역시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역시 나의 개인적인 구원에 대한 관심사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제 생각엔 다 멸망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반석에 물이 나오도록 명하라는 것을 지팡이로 치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않았기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관심은 개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이런 출애굽의 과정을 통하여 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가 이 편지를 쓰면서 왜 출애굽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가 어떤 것인지를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로 얻은 구원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생각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12-4:2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광야 40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12절에서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있을까 하여 매일 서로 피차 권면하라고 합니다. 14절에서는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처음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자들이 순종치 아니한 자들입니다. 여기서 순종치 아니한 자들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타락한 천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6절에 보면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심판의 날까지 영원한 흑암에 가두셨다고 합니다. 천사란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일을 위하여 시중드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런 천사조차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을 타락한 천사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늘의 처소에서 쫓겨나서 영원한 심판의 날까지 흑암에 가두어 두셨다는데, 이 흑암의 세계가 이 땅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늘의 영광에 비하면 이 땅은 캄캄한 흑암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단은 끊임없이 이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싸움이란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4: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그러므로 이 세상의 신은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3-6절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비쳐졌다면 그것은 천지창조의 능력처럼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붙들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임한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과 그 이웃의 도시들이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저희와 같이’라는 이 저희들이 바로 거짓 선생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꾼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자부하는 자들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에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 결과 다른 색을 따라가고 음행한 소돔과 고모라성과 그 주변의 도시들과 같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여 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내용을 통하여 성경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7절 끝에 보면 ‘거울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거울을 왜 보는 것입니까?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를 보기 위해서 입니다. 머리모양이나 몸이 어떤지를 살피기 위해서 입니다. 옷매무시를 살펴보기 위해서 입니다.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 자신을 살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을 비추는 거울입니까?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날마다 거울을 보듯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봐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4-5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서도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고린도전서 10:1-1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으나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유다도, 바울사도도 광야생활을 거울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거울이 되어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그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한번 따 놓은 면허증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단번에 얻은 믿음의 도를 필요할 때만 꺼내 써 먹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은혜가 천하보다 귀한 것임을 날마다 생각하며, 그 은혜를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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