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00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2003년 교회론 특강
교회의 표상(2)
                                                    성전인 교회 공동체

말씀:고린도전서3:16-17, 에베소서2:21-22,요한복음2:13-22

   교회를 묘사하는 흥미로운 표상들 중에 또 하나는 교회를 ‘성전’이라고 하는 표상이다. 이것을 오해하면 안 된다. 흔히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모이는 장소인 ‘예배당’을 또는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건물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성전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그 곳에 두시겠다고 하신, 즉 하나님이 친히 임재해 있다고 말하신 성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맨 처음부터 성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장막에 사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막에 사니까 하나님 자신도 “나도 내 이름을 장막에 두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 길을 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들을 거둬가지고 다닌 것처럼 거기에 맞게끔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장막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거룩한 장막’이라는 뜻으로 성막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으로 회막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 장막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장막에 계셨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은 피를 너무 흘렸기 때문에 합당치 않고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막과 똑같은 개념을 가진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당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신 곳입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칫 잘 못하면 하나님을 그 성전 안에다 가둬 두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고 해서 성전에만 계시고, 우리가 사는 곳에는 안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잘못을 많이 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절한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그 성전에 와서 행하면서 속으로 “하나님은 여기 계십시오. 거기 가서 제가 잘 해 드릴께요. 그러나 다른 것은 간섭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유폐시켜 놓는 잘 못을 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즉 성전 안에 계시겠다고 하신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성막으로부터 생각해 봅시다. 성막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친히 텐트를 치시고 그 분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거기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갈 때 내가 너희들 가운데 있겠다. ‘나는 너희들 가운데서 너희들과 함께 진행해 나갈 것이다.’하신 것이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있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 가운데 성막을 치고, 또 그 후에는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면 그 성전은 이미 성전이 아닌 것입니다. 그 실상을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으로 몰려옵니다. 그런데 그들 마음 가운데 그 성전의 참된 의미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양이나 소를 쫓아내시고 돈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으로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을 들을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루살렘 성전은 40년 이상 걸려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전을 사흘 만에 일킨다고 하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을 오해한 사람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고소하는 죄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변형하여 고소했습니다. “자기가 이 성전을 헐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삼일 동안에 짓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이 성전을 헐겠다” 이것은 성전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헐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가 성전을 헐라고 한 것입니다. 제자들도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그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22)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후에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고 하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 성전이 무엇입니까? 그 뜻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21절에 보면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라.” 즉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헤롯 대왕이 세운 그 건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야기 한 그 말씀의 뜻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기가 곧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전부다 그 건물이 성전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이 성전이 아니고 내가 성전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님 자신, 또는 예수님의 몸과 성전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성전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성전은 그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해 주신 표현들을 빌리면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그곳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희 중에 행동하고, 가르치고,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는 뜻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해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들 가운데 오셔서 우리들 가운데 함께 계심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쓰던 말 한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는 더 이상 그것을 다른 건물로 보여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전이 의미하고 말하던 바를 다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목 박혀 죽게 하면 그것은 사실상 사람들이 성전을 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헤롯 성전을 허는 것이 성전을 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성전을 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세우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그것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전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난주 말씀했던 것과 연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주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이제 승천하신 다음에 하늘이라는 곳에 가 계십니다. 그러나 그가 이 땅위에 당신의 몸을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곧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위에 예수께서 계실 때 그의 몸이 성전이었다면, 우리들, 즉 교회, 그리스도의 공동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성전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늘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이 세상에는 어떤 건물도 성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가도 성전은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 어떤 아름다운 건물을 세워 놓아도 그것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오직 우리들 자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백성들 자신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전이라고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가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통해 성전됨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합니다. 곧 정말 성전다운 모습이 우리 가운데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위해서 뚜렷이 구별되는 그래서 하나님이 이 가운데 계시겠다고 한 그 의미가 분명히 들어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서 주님께서 너희가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당 가운데서 함께 계신다는 그런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 모여 있을 때나 각자 집에 흩어져 있을 때나 모두 교회입니다. 우리 각자가 집에 가서 활동할 때나, 직장에 가서 활동 할 때도 한결 교회로 존재합니다. 한결 교회는 이 예배당(건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임 가운데, 우리가 흩어져 활동하는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렇게 교인들로서 서로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갈 때 그것이 한결 교회인데 거기에서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성전의 참 의미,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럴 때 성전으로서 곧 교회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왜 화를 내셨습니까? 당시의 성전에서는 그 의미가 도무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성전에서 예배 의식은 행하고 제사는 드리는데 그 의미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을 때 주님은 화를 내십니다. 우리를 향하여서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서도 동일한 태도를 취하실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우리들의 관계를 통하여, 우리의 모임을 통해서, 우리들 각자의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 여기에 우리들 가운데 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역시 그의 의로운 분을 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의로운 분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힘써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우리의 관계 가운데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우리를 보면서 “아! 하나님이 당신들 가운데 계시군요, 정말 그렇군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들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뿐만 아니라 더 구체적인 적용을 하나 더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6:19절 말씀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을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라고 합니다. 곧 우리 각자의 몸도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가 성전입니다. 이것이 성전이지 다른 것 곧 건물이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내 몸을 향하여서, 이는 내 영혼과 육체를 다 합해서 하는데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전다움을 내가 드러내고 살고 있는가? 나의 구체적인 삶에서 내 몸을 사용해서 내가 구체적으로 성전됨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하게 우리를 성전답게 주님 앞에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각자 각자가 우리 몸을 사용했을 때 이 공동체가 성전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각자 그렇게 하지 않는데 “공동체는 성전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자 각자가 다 그런 성전일 때 우리 모두가 합해져서 성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공동체를 향하여서 성전이라고 하시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이 자상에서는 어떤 건물로도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성전 건축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예배당 건축, 교회당 건축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성전 건축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공동체답게 잘 세워져 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성전 건축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진력해야 합니다. 이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분명히 자신이 성전됨을 기억하고, 성전답게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에베소서2:20-22절에 보면 이 성전은 자라간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성전이므로 우리가 신앙 안에서 성장해 갈 때 성전이 자랍니다. 성전이 성장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모퉁이 머릿돌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입니다. 모퉁이 머릿돌을 기초로 해서 건물마다 연결하여 성전이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성전이지만 아직 아닙니다. 곧 이미 우리가 성전이지만 이 성전이 완성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이지만 아직 아닌 면에서 점진적으로 성전의 모습을 드러내어 가야 합니다. 원래는 각자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성전이 되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온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다 하나요, 그들이 다 합하여서 주의 성전이 되어 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을 우리는 우주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이 성전의 완성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의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은 성전을 사랑하셨고, 그 성전이 본래의 뜻을 잘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한 뜻을 두고 계십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우리들의 공동체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성전으로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각자 개인과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도록 힘써 주님의 주되심을 드러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