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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교회론 특강
                                                    교회의 사명
말씀:디모데전서3:14-16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 교회의 표상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교회의 속성들과 표지에 대해서는 라은성 교수님과 함께 공부했기 때문에 넘어 가겠습니다. 오늘부터는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 땅 위에 새로운 공동체로 세워진 교회라고 하는 것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회라는 존재로 이 땅 위에 서 있는데 그러한 존재가 과연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있는가에 대한 인식이 없이 우리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 각자가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그 교회가 세상에 세워진 뜻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 땅 위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이 땅 위에 드러나기 위해서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너에게 속히 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배웠죠? 성도들이 모이는 모임, 성도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우리의 모임,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독특한 존재에 대해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교회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의 일원으로서, 교회 공동체로서 행해야 할 것 곧 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를 알기 위해서 디모데서를 읽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사명을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곧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곧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다 잊는다 해도 이 말만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증시한다’는 말은 ‘나타내 보인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미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고, 그가 재림하실 때 그 극치에 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영적인 실체가 이미 우리에게 임해 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여 왔다는 것을 이 땅 위에 찬연하게 그 빛을 비추어 보이면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통해서 확연하게 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나중에 언젠가는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우리가 임시 정거장처럼 있는 데가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전혀 그렇게 이야기 하는 데가 없습니다. 곧 죽으면 천국 간다고 말하는 데가 없습니다. 천국은 이미 여기에 와 있습니다. 성경에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확연하게 사람들에게 보이는 기관으로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바로 그러한 공동체입니다. 디모데전서3:15절에 보면 교회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생각해 봤듯이 기둥은 동상을 세우기 위해 대를 만들어 놓은 것을 가리키고, 터는 동상을 세우기 위해 닦아 놓은 터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진리를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 있어지는 기둥과 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는 무엇을 위해서 이 땅에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동상의 경우에 그 동상의 윗부분에 있는 존재가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기 위해 기둥도 있고 터가 있듯이, 우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진리가 땅 위에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들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한결 교회로 늘 모이는 것입니까?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확연하게 들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사명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생각하는 진리가 이 땅 위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그 일을 위해서 교회인 우리가 기둥 노릇을 하는 것이고 터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는 것은 명확한데 “그렇다면 그렇게 드러나야 할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을 아주 중요시하는 시대입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정신을 흔히 인도주의적 정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중요하긴 중요하지만 곧 사람들을 존중히 여겨야 되지만 그 생각이 너무 지나쳐서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내가 더 중요하다, 내 가족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우리의 삶을 보면 무의식 속에서 그렇게 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사람을 중히 여기고, 자기를 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하나님보다 앞서 버릴 때 진리가 드러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어떻게 잘 살게 하기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축복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실제 삶속에서 하나님보다 먼저 자신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여기에서 좋아지고 여기에서 높임을 받고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이 땅 위에 현저하게 증시되기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뼈저리게 있어야만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시대에 그렇게 말하고, 그런 것을 강조하면 사람들이 오겠습니까? 이것이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안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여기 있을 수 있도록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가 환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교회는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진리를 드러낼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진리는 어떤 진리입니까? 디모데전서3:16절을 보십시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의 나타나신 바 되시고 ----올리우셨음이라.” 누구에 관한 이야기 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 분에 관한 진리가 교회 안에서 현현되야 할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상에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곧 하나님이면서 사람인 분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수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해서 구속 사역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이제 어떻게 되셨습니까? “온 세상에 전파되시고” 그런데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는 복음이 한국에 전파되지 않은 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전파되시고”라는 말을 썼습니다. 왜 이렇게 썼을까요? 왜 그렇게 했느냐하면 이 사실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를 통해서 현현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가 현현되려면 우리 스스로를 마땅히 하나님 앞에 이렇게 서서 경배해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정말 나를 이렇게 불러 주셔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는 존재로 부르셨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것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를 바라보면 나는 언제나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온전한 의를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식 그것을 드러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언제나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볼 때에는 이 사람들의 존재 가운데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가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통해서, 그 사는 삶을 통해서 진리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가 이 땅 위에 선포되는 방식입니다. 이 진리, 이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룬 이 진리, 이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다운 삶을 통해서도 조금 드러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직장 생활하는 분들은 직장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속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그 원칙에 따라 살 때 거기서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선생님이 아주 신실하게 학생들을 가르칠 때 거기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는 이러해야 한다”는 진리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이 땅 위에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늘 안되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늘 받아들이면서 마음 속에 이 하나님의 진리가 어떻게 나의 삶 가운데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것을 구현해 내었을 때, 곧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처소에서 그런 일을 해 낼 때,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니까 그 공동체가 정말 진리를 이 땅 위에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 교회가 어떤 수준에 있습니까? 우리가 선포되는 말씀을 쫓아 그런 삶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현해 내지 못할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반쪽 예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온전한 예배가 되고 진리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선포된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구현되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서 그 하나님을 아는 빛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 주일이고 수요일이고 모여서 예배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는 데, 거기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빛이 나는 것일까?” 하면서 사람들이 올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합니까? 이것은 수천년이 흘러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는 어느 교회이든지 교회의 사명은 이것 하나인데, “하나님의 나라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진리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의 나라이므로 우리의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다스림이 확연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진리의 그 내용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와 있다”는 진리의 한 가지 내용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되고, 그래서 생각이 매일 고쳐져야 합니다. 늘 공부하는데 그것이 내 생각하고 별개의 것이라면 진리를 드러낼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의 지식이 늘어가면서 그렇게 내 의식도 고쳐지고, 내 생각도 고쳐지고 해서 마음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확연하게 빛을 비추고 있을 때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빛이 비추어 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분이시다”고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고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자꾸만 그리로 가기 쉽습니다. 인간이 그렇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가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고, 교회도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 세상에 참된 교회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우리의 교회 공동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까?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라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릴 수 있게끔 준비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안되 있으면 아무 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에 편하면 진리도 희생되고 하나님의 원칙도 희생해 버리고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의 진리는 안 드러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지 관심도 없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과 똑같은 생각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좋긴 좋은데 먼저 우리가 좀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하나님보다도 먼저 자신의 삶을 추구한다면 진리가 손상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진리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의 삶을 먼저 추구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속에 세속적인 가치관을 허용해서는 진리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라고 하는 것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한결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 위에 굳게 세워져서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