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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2:14-21
성경본문내용 (14)보라 이제 세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16)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17)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18)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19)이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21)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
강설날짜 2014-11-12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말씀:고린도후서 12:14-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부득불 자신이 14년 전에 경험했던 영적인 체험을 자랑하는 것을 봤습니다(고후 12:1-13). 바울 사도는 이를 통해서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후서 12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세 번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바울이 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4-15절 말씀을 보면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세 번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번에 가고자 하는 것도 너희에게 폐를 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세 번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4절을 다시 보면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라는 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자식이 머리가 컸다고 부모를 우습게 여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로 그러한 모습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거짓 선생들을 용납하고 그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이런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자식이 아니라고 버려야 합니까? 아니면 또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또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세 번째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재물을 준비하는 것이지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재물을 허비하고 자신까지 허비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요, 목자의 심정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신은 굶어도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이것이 당연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모습이 바로 사도 바울의 모습이며, 모든 참된 주의 종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무엘하 7:24-29절을 보면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대로 행하사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고백이요, 기도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말을 하나님께 하게 된 배경은 1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하 7:1절 이하에 보면 다윗이 목동에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고 적을 다 물리치고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초라한 천막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응답이 온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7:8-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어디로 가든 함께 있으며 모든 대적을 멸하여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워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24-29절을 다시 보면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대로 행하사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을 받은 자가, 이 복을 증거 하는 모습이 바로 사도의 표이며, 주의 종의 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다시 보면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러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처럼 복음으로 낳은 것입니다. 우리가 자식을 키워보면 여러 자식들 중에 애를 제일 많이 먹이는 자식이 있습니다. 참된 부모라면 그런 자식일수록 애정이 더 많이 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많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서신들 가운데 고린도전후서가 가장 깁니다. 그만큼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말 안 듣는 자식을 때로는 어떻게 합니까? 징계하죠.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지만 때로는 말을 안 들을 때 자식을 위하여 매를 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1-2절을 보면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세 번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말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내용을 보면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 부모라면 자녀를 위하여 좋은 것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매도 아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참 사랑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2:5-13절을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입니다.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습니까? 육신의 부모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도, 13장에서 무서운 책망을 하는 것도 결국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보면 “이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도, 또한 무섭게 책망을 하는 것도 다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도덕 윤리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율법의 규칙을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은 그들을 그리스도 앞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덕은 어떤 덕을 말하겠습니까? 결국 주가 한 분이시요, 계시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인 것처럼 바울 사도도 같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길게 자신을 변호하는 것은 자신을 알아달라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9절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덕을 세우기 위함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았다면 이 덕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고 긍휼을 입지 못한 자였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백성이 되고 긍휼을 입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전에는 어두움이었는데 이제는 빛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섬겨주신 결과입니다. 이렇게 섬김을 받은 자는 또한 다른 형제를 섬기는 모습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 모습이 겸손이며, 헌신이며, 희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고서 무언가 부족하여 못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갈 때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않게 될까봐서 두렵다고 합니다. 또한 너희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내가 보일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봐 염려가 되고 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자신을 잘 못 보게 될까봐서 염려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부모 된 심정으로 자녀를 위하여 희생한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그들이 바울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까봐서 두렵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14-16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관심은 자신이 어떻게 대접을 받는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본 받으라고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20절을 계속해서 보면 바울 사도는 또한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목록들이 왜 나오게 되는 것입니까? 왜 교회 안에 다툼이 있고 시기와 분쟁이 있는 것입니까? 왜 분을 내고 당을 짓고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그리스도 앞에 제대로 세워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 앞에 제대로 세워졌다면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로 드러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분냄과 다툼이 있었다는 것은 자기들의 자랑거리로 인하여 교만하여 진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세워지지 아니하면 자신의 공적을 가지고 나서게 됩니다. 그러면 남과 비교를 하면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누가 잘했는가 하는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고 온갖 수군거림이 나오고 중상과 거만함과 어지러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덕을 자랑하고자 나섰기 때문에 분냄과 다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너희에게 다시 갈 때에 곧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다시 갈 때에 하나님이 자신을 그들 앞에서 낮추실까 두렵다고 합니다. 바울의 겸손과 희생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평소에 바울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긴 것처럼 될까봐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까지 낮아 지셔서 바울을 섬겨 주셨듯이 바울도 그들보다 낮은 자로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의 본질을 오해할까봐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염려는 이미 고린도 교회에 책망의 편지를 보냄으로 그들이 회개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그러나 아직까지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방문을 할 때에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였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입니다. 곧 바울이 그들에게 갈 때까지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심정이며, 그리스도의 덕을 세우는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권면을 받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주시는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덕이 세워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앞에 세워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 세워질 때 자신의 못남을 자랑하고 주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만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곳에 시기와 다툼이 아니라 주님의 아름다운 덕만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를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이 증거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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