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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2:10-13

2011년 야고보서 공부
                                                  긍휼이 심판을 이긴다.
말씀:야고보서 2:10-13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는 계속해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죄라고 지적했습니다. 8-9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8절과 9절을 대조하여 잘하는 일과 죄짓는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레위기 19:18절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구약을 한마다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7-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하고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묻는 한 율법사에게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야고보서 2:8절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지만 이미 그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최고한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율법이 그를 범죄자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0절에 보면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했습니다. 개역 성경에서는 생략되어 있습니다만 원문에 보면 10절 앞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죄를 짓는 것인데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속성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하나만 어겨도 하나님을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11절에 보면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11절 앞에도 원문에 보면 ‘왜냐하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하나님을 침해하게 되는 것은 율법을 주신 분이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살인하지 말라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만 어겨도 하나님을 침해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6계명과 7계명을 통해서 그 하나를 범하게 되면 율법 전체를 범하게 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간음을 행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나는 살인도 간음도 하지 않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27-28).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힘을 의지한 것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미움이 곧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21-22). 요한일서 3:14-15절에 보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미워하였다면 이것은 최고한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곧 살인하는 자며,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율법이든, 어떤 행함이든 간에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든 율법을 항상 완벽하게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지킬 인생이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3:10절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자기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어떤 인간도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아래 놓여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심판아래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로마서 11:31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기에 어떤 인간도 자기의 의로운 행위가 율법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긍휼로만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왜 긍휼로만 구원하시는가 하면 어떤 인간의 자랑도 없애버리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 아들 홀로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홀로 율법의 저주를 다 받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의 저주를 우리를 위하여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신 저주 받으심 아래 있지 아니하면 그 인간은 늘 율법의 저주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제 율법의 정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제 정죄가 아니라 자유의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라는 말씀과 오늘 자유의 율법이란 같은 말씀입니다. 율법이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그 정죄와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저주 받으심으로 그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의 정죄가 없기에 자유의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율법의 정죄를 알아야 합니다. 도대체 인간의 죄가 어떤 것인지 그 죄의 깊이를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는 탄식과 절망이 있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저주 받으심이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또다시 자기 공로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심판과 긍휼을 동시에 알고 믿는 사람이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는 형제를 외모로 차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긍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긍휼뿐입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하다가 그 하나를 어기게 되면 그 율법을 다 범하는 죄가 됨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많이 배워왔습니다만 율법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첫째로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곧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밝히 드러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규범 역할을 합니다. 곧 율법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말해 줍니다. (칼빈은 율법은 세 가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외에 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12절에 보면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자유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자유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의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잘 못 이해하면 안됩니다. 이제 구원받았으니 모세의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유와 방종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자유의 율법으로 자유케 된 자들은 새로운 의무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긍휼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함을 받았으므로 마땅함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성도들은 비로소 복음의 말씀에 따라 심판을 받아 온전한 구원함에 이르게 됩니다. 반대로 긍휼이 없다면 그는 율법의 기준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자유의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 자처럼 말도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말은 현재 명령형으로 이중으로 강조된 표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진자 운동이 일어납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는 자임을 깨닫고 예수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앞에 서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다시 율법은 삶의 규범으로써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삶의 규범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그대로 행하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것은 심판을 받을 자임을 생각하며 긍휼을 구하는 자세로 말도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이 13절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면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심판이란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곳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도 결국 인간의 행함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이니 행함으로 심판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5:7절을 보면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14-15절에서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을 보면 인간이 먼저 긍휼히 여기는 선행 조건이 있어야 긍휼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 되는데 지키다가 어느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다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7장의 내용 중에 자기 힘으로 지켜낼 수 있는 말씀이 과연 있습니까? 내일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습니까? 범죄 한 눈을 빼내어 버리고, 손과 발을 찍어버렸습니까? 오른편 뺨을 치는데 왼 뺨을 돌려 되었습니까?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었습니까? 구하고자 하는 자에게 주었습니까? 이 말씀을 보면서 결국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누가 나는 이러한 긍휼을 베푸는 조건이 갖추어졌기에 긍휼을 받을 만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12-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라는 세리의 집에서 여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힐문하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긍휼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긍휼을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자기들이 제물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긍휼을 담아야 하는데 제사 지내는 그 율법적인 행위자체를 그들의 의로 여겼기에 그런 제사에는 긍휼히 여김이 담겨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죄인들은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은 자들은 주님의 긍휼, 불쌍히 여겨주심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죽을지언정 자기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합니까? 처음에 믿을 때는 은혜로 믿지만 믿고 나서는 나의 행함으로 갚아 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바로 주님의 긍휼, 유일하게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수 있는 긍휼을 발로 차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란 주님의 긍휼을 입고 나온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누가 높은가 하는 문제가 나올 수가 없는 곳입니다. 부자가 왔다고 특별대우하고 가난한 자가 왔다고 무시하게 된다면 그 현장이 주님의 긍휼을 모독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란 주님의 집에서부터 먼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긍휼을 입은 자인지 아닌 지를 골라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께 긍휼을 입은 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신이 긍휼을 입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긍휼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외모로 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지옥형별의 저주에서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 용서를 긍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 용서를 받은 사람끼리 세상의 조건을 따라 차별대우 한다면 그런 곳이 어떻게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자를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시자 모두 다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누가 너를 정죄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여자는 “아무도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 받은 이 여자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자유케 하는 율법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로 구원함을 받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용서 받은 여인과 같이 오직 주님의 긍휼만 자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주님의 긍휼로 형제를 차별 없이 대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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