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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0:12-22
강설날짜 2019-03-20

2019년 신명기 공부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

말씀:신명기 10:12-22

 

우리는 지난 시간에 모세가 다시 십계명을 받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번째 돌판을 주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십계명을 행복을 위해 주셨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고 또한 약한 자를 보호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12-13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신명기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대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네 행복을 위하여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경외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여기서 ‘경외’(arey: 야레)란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경외하는 길은 여호와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며,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네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 살 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고 마음과 성품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며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 우리 자신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우리 인간은 세상만사가 다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행복하다고 여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이 나의 행복일 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 다 하나님 것이며, 우리 자신은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하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모든 만물이 다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무슨 그릇을 만들든지 그것은 토기장이의 마음입니다. 어떤 그릇은 귀하게도 쓰고 어떤 그릇은 천하게도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어떻게 쓰시든지 순종하는 것이 그 인생의 행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으로 태어난 인생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끊어져 있기에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행복이란 오직 자신의 행동여하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죄악된 모습이요, 인간의 불행인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우리 인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두고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보고 사는 한 결단코 행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택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함을 입은 것은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과 사랑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신 것이지 결코 그들의 조상들에게 무슨 공로가 있거나 자기 자신들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을 사랑하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으로 오늘날까지 온 것을 잘 알고 너희의 행복을 위하여 내 말을 잘 들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경외하라고 하셨지만 여기서도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며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기에 뇌물을 받지 않으시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7-22절을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두려운 하나님만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fP;v]mi 미쉬파트-‘재판하다’, ‘변호하다’라는 뜻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정의롭게 처리하는 것을 말함)하시고,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아야 하기에 너희가 전에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것을 기억하고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는 네 찬송이며, 네 하나님이시기에 네가 목도한 바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다고 합니다. 출애굽만이 아니라 겨우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갔으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고 두려운 일을 행하신 이유도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까? 그 큰 구원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것이 그들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신약성경까지 완성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크고 두려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보고서도 순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에서는 다른 율법서와 달리 벌써 마음의 할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몸의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든지 행할 수 있었습니다. 몸의 할례는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에게서 끊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 17:9-14).

 

그런데 몸의 할례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판에 말씀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말씀이 기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몸의 할례를 받아도 목이 곧은 백성의 속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할례를 어떻게 행할 수 있습니까? 신명기 30:6-8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대적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음의 할례를 행하신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돌아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명하신 모든 명령을 행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였다고 곧 자신 자신들의 몸에 할례의 표가 있다고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지만 결국은 그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면 목이 곧은 백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출 32:7-10; 신 9:6-12).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함으로 아무리 겉으로 할례를 행하고 겉으로 율법을 지키는 모양은 낼 수가 있지만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지 못하였기에 저주를 받아 온갖 고생을 다하게 됩니다. 왕의 악정, 적의 침략, 기근과 전염병,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9:25-2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할례를 받은 자나 할례를 받지 못한 자나 다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도 벌을 받는 것은 그들이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용사가 성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잠언 16:32절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예레미야 31:31-34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새 언약을 말씀합니다.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할례가 마음에 이루어져야 하듯이 새 언약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언약의 내용 곧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의 때에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게 되며, 또한 그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 언약을 맺으시는 것도 결국은 자기 백성의 복을 위한 것임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예레미야 32:36-42절을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의 말하는바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인바 되었다 하는 이성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는데도 하나님은 구원하여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언약을 이루어내시면 몸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 언약의 완성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떡을 주시면서 자신의 살이라고 하시고 잔을 주시면서 피로 새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6:26-30; 막 14:22-26; 눅 22:15-20; 고전 11:23-25). 예수님의 피로 새 언약이 완성이 되고 부활 승천하셔서 그 언약을 보증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것은 돌판에 새겨진 약속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겨졌기에 스스로 제거해 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합니다.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징계를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러나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의 욕심 때문에 요구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말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그 요구를 하나님 편에서 이루어내시기까지 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9-10절을 보면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유익과 복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 유익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복을 아브라함과 다윗을 인용하여 증거 합니다. 로마서 4:4-8절을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복을 받은 자는 행복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복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이 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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