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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5:1-6

2011년 야고보서 공부
                                                      부자들에 대한 경고!
말씀:야고보서 5:1-6

 

오늘부터 우리는 야고보서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5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부분은 1-12절 말씀으로 부자들에 대한 신랄한 경고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인내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13-20절 말씀으로 병든 자들을 위한 기도와 의인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첫 번째 부분에 속하는 말씀으로 부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할 것 없이 오늘날 우리 모든 인생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아니 인류 역사 이래로 모든 인생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인사가 ‘부자 되세요’ 입니다. 새해 인사도 ‘복 많이 받으시요!’라고 하기보다 ‘부자 되세요!’가 대세입니다. 심지어 교회라는 곳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지난번 창원 극동방송에서는 부자학교라는 특강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교회나 세상이나 할 것 없이 부자 되고자 하는 것이 화두입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자본이 많아진 것을 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분명히 오늘 말씀이나 성경 전체적으로 보면 부의 축적을 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축적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3-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자본의 축적을 교회에서 복이라고 여기는 것입니까? 막스 베버라는 독일 사회학자가 이 문제를 가지고 연구 했는데 그에 의하면 칼빈의 직업 소명설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의 연구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는 것은 예정 되어 있어야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정 되었는지 아니 되었는지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정되었다는 징표를 자기 직업에 충실 하는 것이 구원의 징표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에 의해 직업 소명설이 나온 것입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여 자본을 축적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신이 주신 사명에 충실함으로 주어진 도덕적 성격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칼빈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이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고정된 신분제도들이 무너지면서 상공인들이 자본을 축적하는 하나의 정당한 논리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자본이 힘이 되는 것을 알았지만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자본이 많은 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표이며, 축복이라는 근거를 가지게 되니 얼마든지 자본을 축적하여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자본주의의 발달에 칼빈의 사상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런 영향을 받은 교회에서 특히 개혁주이라고 하고, 칼빈주의라고 하는 교회에서 무엇을 하나님의 축복의 기준으로 보겠습니까? 부를 하나님의 축복의 기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부자가 되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위대한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인 칼빈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누가 반박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마다 부자 되기를 좋아하는 죄악된 본성이 문제인데 그러한 마음에 불을 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 교회에서 부자는 복 받은 것이고, 가난한 것은 저주 받은 것으로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부자에 대한 책망정도가 아니라 아주 실랄 하게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부자에게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심판이 집행이 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자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부자가 무엇입니까? 부자란 자본이 축적되어야 부자입니다. 동산이나 부동산을 많이 축적하여야 부자인 것입니다.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의 부를 축적하는 것은 곡물과 의복과 금과 은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을 축적하는데 그 축적의 과정도 정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축적하는 목적도 자기를 위하여 쌓아둔 것입니다. 그러니 곡물이 썩고, 의복이 좀이 썰고, 금과 은이 녹이 쓰는 것입니다. 사실 금과 은은 녹이 쓰는 것이 아니죠. 그러므로 이 말은 금과 은이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자본의 축적을 지금 야고보는 심판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5:1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부자가 되는 것이 울고 통곡할 일입니까? 아니면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 일입니까? 다시 묻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복입니까? 아니면 저주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기뻐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마 한 사람도 울고 통곡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보십시오. 부자가 부럽지 않습니까? 돈이 많아 좋은 집과 좋은 차 타고 다니는 사람 부럽지 않습니까? 돈 많은 교회 부럽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산다고 하는 우리까지도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부자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합니까? 울고 통곡하라는 것입니다.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게 울고 통곡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3절에 보면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재물이 썩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과 은이 녹이 쓸었는데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고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이 말세이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고 합니다. 아니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에 이미 말세에 재물을 쌓은 것이 복을 쌓은 것이 아니라 저주를 쌓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에 와서 자본의 축적을 복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까? 개인이든, 교회이든, 국가이든 자본이 많은 것을 복이라고 여기고 서구가 자본이 많아진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그렇다고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않게 들어왔는데 성경에서는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세에 재물을 쌓는 것이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되는 것은 정직하게 벌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본주의 세상에서 정직하게 일해서 부자가 되는 길이 가능한 일입니까? 어떤 분들은 정직하게 일해서 성공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자기의 믿음일 뿐이고, 우리나라에서 세금 제대로 내고 종업원들 월급제대로 주고 공해시설 제대로 가동하고 해서 재벌 된 회사가 몇 개가 있습니까? 4절을 보면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했습니다. 밭에 추수한 일군들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합니다. 추수하는 일군들, 일용직 근로자들이 그 품삯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땅히 일군에게 돌아가야 할 삯이 하늘에 고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24:14-15절을 보면 “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객이든지 학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라고 하느냐 하면 곤궁하고 빈한한 자는 빈궁함으로 그 품삯을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품삯을 받지 않으면 굶고 생명의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호소하는 죄가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세를 이미 율법에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것입니다.

 

이사야 5:8-12절을 보면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찌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한 자들의 향락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행하심에 관심이 없고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부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정당한 품삯을 제 때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난과 아픔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가난한 자들을 이용하여 자기 부를 쌓고 자기 향락을 좇아 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한 자들의 향락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아모스 2:6-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이런 책망은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하는 책망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 세상은 종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 자체가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책망하고 돌이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심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까?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소나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도살의 날을 앞두고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기름지고 영양가 많은 사료를 주어서 살을 찌개 하는 것입니다. 도살의 날을 앞두고 이렇게 짐승을 살찌게 하는 이유는 무게를 많이 나가게 하여 많은 돈을 벌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도살할 날을 앞에 두고 주인이 기름지고 영양가 많은 사료를 먹는 소나 돼지가 행복한 것입니까? 불행한 것입니까? 물론 소나 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불행한 것이죠. 그처럼 지금 부자들이 사치하고 연락하는 것은 도살의 날에 잡힐 짐승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가 어느 때입니까? 말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불로 태우시고 심판하실 날이 가까운 것입니다. 이런 때에 이 땅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도살할 날을 앞에 두고 살을 찌우는 짐승과 같은 어리석은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교회가 정말 예수님 오심이 종말인 것을 지금까지 외쳐 왔다면 과연 오늘날 성도와 교회가 이렇게 돈을 사랑하고 돈을 많이 가진 것을 축복이라고 하였겠습니까? 이미 교회는 힘없는 십자가와 이별하고 힘 있는 돈과 결탁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한 쪽을 사랑하면 한 쪽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버리고 힘이 되는 돈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음녀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지금 야고보는 외치는 것입니다. 울고 통곡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회개하라고도 아니합니다. 지금 심판이 집행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울고 통곡하라는 것은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임하였기에 울고 통곡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심판이 집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말세인데 심판의 날이요, 도살의 날인데 무엇을 쌓아두고 그것을 힘이라고 여기고 있습니까? 교회와 성도가 세상의 힘을 추구하면 그것은 이미 심판을 받은 증거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처럼 가난한 교회는 괜찮은 것입니까? 천만에요? 우리도 똑같이 부자 되고 싶어 합니다. 더 힘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하면 누가 돈을 좀 많이 내어서 좀 근사한 예배당이나 하나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부자가 아니더라도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경고하는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바로 앞의 말씀 디모데전서 6:3-8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교훈에 착념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세상에서 힘없이 달리신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이요, 은혜요, 복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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