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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5:7-11

2011년 야고보서 공부
                                                             길이 참으라.
말씀:야고보서 5:7-11

 

야고보서는 1:1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초대 교회 흩어진 이스라엘 열두 지파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핍박으로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서 가난 가운데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4장후반부에 보면 어느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벌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고자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이며,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5:1-11절 말씀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가난한 자를 핍박하며 착취하고 세상 낙을 좇아 사는 부자들에게 경고하며(1-6), 가난한 성도들에게 주의 강림을 소망하며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7-11).

 

지난 시간에 우리는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살펴봤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에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한다고 했습니다. 말세의 특징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재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말세에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7-8절에 보면 ‘길이 참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7-8). 여러분! 종말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들어왔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들어 왔죠?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이 이미 종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현상은 이 세상에 교회가 나타난 것입니다. 교회가 나타난 것은 메시아의 오심과 성령의 임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러한 종말의 현상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미리 내다보고 예언한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 곳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11:1-5절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또 요엘서 2:28-30절에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특징은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것입니다. 교회 자체가 주의 재림을 대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늘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1:11절에 보면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앙! 이것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 특징이었습니다. 그 소망 가운데 그들은 믿음의 길, 순교의 길을 기쁨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몇 십 년이 지나도 주의 재림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큰소리치면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점점 고난은 가중되는데 주의 재림은 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도들 사이에 여러 가지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고난이 가중되고 주의 재림이 더딜찌라도 원망하지 말고 길이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주님이 재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7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야고보 당시 성도들에게 어떤 고난이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7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곧 “그러므로 길이 참으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떤 상황입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오늘 본문 바로 앞의 말씀에서 부자들의 착취를 말씀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다라고 책망합니다. 물론 성도 중에 가끔 부한 자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고 하면서 가난하고 약하고 천하고 못난 자들을 부르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난한 자들이 누구에 의해 더 고생스러운가 하면 부자들의 착취로 인해 더 고생스러운 것입니다. 정당한 품삯이라도 주면 나을 텐데 가난한 자의 품삯마저 착취하는 부자들로 인해 고생이 심하였던 것입니다. 5:4절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강림 소식은 부자들에게는 그들이 받을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주의 강림이 소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의 강림이 자꾸만 더디어지는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자나고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주의 재림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이 놀리는 것입니다. ‘너희들 주의 재림이 임하면 세상을 심판한다고 한다더니 재림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핍박을 받고 살지만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호의호식 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재림은 무슨 재림이냐’고 희롱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림도 고난을 가중하는 것입니다. 부자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괴로운데 이런 놀림까지 받는 것입니다.

 

그러자 교회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나도 돈 벌어서 보란듯이 한번 잘 살아봐야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4장에서 보았던 대로 내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일년 동안 장사하여 많은 이익을 보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허탄한 자랑을 하는 것이며,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잠시 보이는 안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라는 곳은 어떻습니까? 무엇을 축복으로 보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부자가 된 것을 축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오늘날 교회나 성도가 부를 획득하고 축적하는 것이 정당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물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 어떤 교리적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까? 칼빈의 예정설과 직업 소명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입은 증거가 믿음이라고 하면 되는데 그것으로는 사람들이 무언가 불안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자 좋은 근거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칼빈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칼빈의 신학에서 자기 직업에 충실하여 부자가 되는 것을 부르심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고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일에 교리적인 뒷받침까지 있으니 개신교가 가는 곳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막스 베브가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이 돈이 많아지고 교회가 돈이 많아지는 것을 정당화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부요하게 되면 될수록 주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게 됩니다. 서울의 분당이라는 곳은 얼마나 좋은지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 다 불에 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심판이 문밖에 가까이 계십니다’라고 하면서 야고보서 5장의 이 말씀을 선포하면 교회가 부흥이 되겠습니까? 종말을 기다리는 자들을 향하여 오히려 세상에서 실패하였으니 무능하여 기다린다고 하면서 놀리지 않겠습니까?

 

베드로후서 3:1-1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두번째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기억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말은 내가 죽을 때쯤이나 생각할 문제로 돌리지 않습니까? 많은 돈을 들여 예배당을 건축하려는 교회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강조하는 내용이 과연 종말을 이야기 하겠습니까? 부자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이 세상의 종말과 심판을 가장 우선순위로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먼저 이것을 알라고 합니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와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에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물이 다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 홍수의 심판도 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잊어버리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세상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아 홍수 때의 그 동일한 말씀대로 이 세상은 불살라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누구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세상에서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저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택하심을 입었기에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이 있다면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예수님이 먼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은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주님의 택하심을 입었기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4:12-19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에 참예한 자들은 주의 영광의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기에 미리 당겨서 고난 중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여전히 동일한 유혹과 핍박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보암직하게 살아보겠다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의 유혹을 거부하셨는데 오늘날 교회는 사단이 주마고 한 것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보암직한 세상의 영광을 보이겠다면 그것은 이미 마귀의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구원의 능력으로 믿는다는 것인데 이것 자체가 핍박이요, 고난인 것입니다. 가족에게서도 미움을 받을 것이요, 교회 안에서도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동일하게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기는 한 것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심판과 주의 재림을 말하지 않으면 핍박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일에 희망을 주는 사람을 누가 핍박하겠습니까? 그러나 주의 재림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통째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다리는 것입니까? 7-8절을 다시 보면 농부처럼 기다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땅은 비를 흡수하는 땅이기에 천수답입니다. 그래서 씨를 뿌려 놓고 비가 와야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이것이 이른 비입니다. 그리고 늦은 비가 와야 곡식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가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농부처럼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주의 강림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신실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원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재림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자가 문밖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이 있을 때에 원망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억울함 속에서 주님의 억울함을 배우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하지 말고 주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어느 억울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하소연하고 그 억울함을 푸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자기의 억울함을 자기가 갚지 않고 주님의 심판에 맡겨둘 자가 과연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믿는 사람만이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 이러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10-11절을 보면 오래 참은 믿음의 본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오래 참은 자들의 예를 선지자들과 욥을 말씀합니다. 선지자들이 온갖 핍박 속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어느 선지자 치고 핍박을 받지 아니한 선지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욥의 인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고난을 받을 죄를 지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핍박 가운데서도 오래 참았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고난 받는다며 원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어떻게 답변하셨습니까? 욥기 38-4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도리어 긴 반문을 하십니다. 까마귀 새끼가 배가 고파서 부르짖을 때에 그 까마귀 새끼를 위하여 먹을 것을 누가 준비하느냐고 물으십니다. 황무지에 비가 내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지금 욥은 자기는 까닭 없이 고난 받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대답을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답변들이 무슨 말씀입니까?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욥은 이런 말씀 앞에서 회개합니다. 자기는 정당한데 고난을 받는다고 억울해 하였지만 까마귀 새끼의 배고픔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산 염소가 새끼를 언제 치는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 욥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알고서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이 죄가 있어서 벌을 받는다고 하는 세 명이 욥처럼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욥이 그들의 위하여 번제를 드리고 기도함으로 그들이 사함을 얻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성도의 인내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장차 불사르기 위하여 보전되고 있을 뿐입니다(벧후 3:7). 주님은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오래 참고 인내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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