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23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5:12

2011년 야고보서 공부
                                                          맹세하지 말라
말씀:야고보서 5:12

 

우리는 지난 시간에 ‘길이 참으라’라는 제목으로 야고보의 권면의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성도들이 말세를 살 때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야고보 시대와 같이 부자들로부터 착취를 당하기도 하고,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많은 손해를 감수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우리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길이 참아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강림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강림! 이것이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야고보서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교훈은 예수님께서 이미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33-37절에 보면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늘로도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도들은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악을 좇아 왔다고 하셨습니다. ‘맹세한다’라는 말은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는 말인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내 안에 불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 지혜자는 맹세를 잘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얼마나 맹세를 잘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기 때문에 맹세하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맹세를 하게 됩니까? 자기 말의 정당함을 주장할 때 맹세를 합니다. 하늘과 땅에 맹세코 내 말은 참말이라고 합니다. 또는 벌을 면하기 위하여 맹세하기도 합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 맹세를 합니까? 자기 자신이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신에게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렇게만 하여 주시면 반드시 이 맹세를 지키겠습니다.’ 이런 맹세가 제일 많겠지요! 일종의 서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맹세들을 구약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맹세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종에게 맹세를 시키면서 자기 며느리를 구하여 오도록 하고,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서 다시 돌아오게 하시면 십일조를 드리고 성전을 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러한 맹세를 지켰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급하게 되고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대고 맹세를 하기에 율법에는 헛된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9:12절을 보면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하늘과 땅에 맹세하는 것보다 더 큰 맹세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이름까지 이용하여 거짓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 헛된 맹세를 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율법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합니다. 신명기 6:10-13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 맹세가 나옵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가 나옵니다. 그 맹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입니다. 그 맹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다른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이름’이란 ‘다른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을 거의 다 외우는 유대인들이 교묘하게 그러한 맹세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축소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되면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할 때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율법의 전문가들인 유대인들이 어떻게 맹세를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으로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성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너희가 무엇을 걸고 맹세하는 그 대상이 누구 것이냐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다른 것을 걸고 맹세를 하는 것도 결국은 다 하나님의 것으로 맹세를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맹세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자기 것도 아니면서 맹세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맹세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책임을 진다는 것인데 하늘과 땅에 맹세를 한다고 해서 하늘을 줄 것입니까? 땅을 줄 것 입니까? 그런데 우리도 실상은 얼마나 그런 맹세를 많이 하였습니까? 자기 말의 정당성을 위하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자기의 소원을 빌기 위하여 무엇이나 영원하고 절대적일 것 같은 것에다가 빌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상물이 나의 것이 아닌 것이기에 맹세할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으로 맹세하면 되지 않는가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36절에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네가 머리카락 한 가닥도 임의로 희거나 검게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네 몸이 네 것 인양 맹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자기를 책임질만한 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자기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자기 몸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도 내가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결국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몸도 내가 관리할 수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몸을 무슨 수로 관리합니까? 아무리 웰빙을 외쳐도 결국은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내 머리로 맹세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하늘과 땅으로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았기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맹세가 어떻게 변질되는가 하면 자기들의 이익의 재료로 맹세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16-22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으로 맹세하여도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 대한 맹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전문가라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세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성전이나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도 없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키라는 것입니다. 성전이나 제단보다 금과 예물이 우선입니다. 맹세하는 사람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맹세 하는데 맹세를 시키고 맹세를 받는다는 지도자들이 무엇으로 맹세하면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맹세는 반드시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경된 인도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어떤 서원을 지키라고 합니까? 여러분의 소원이 있으면 서원하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맹세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들이 ‘하나님께서 저의 사업을 이렇게 도와주시면 제가 반드시 무엇을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아이 일류대학에 합격 시켜주시면 제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는 것들 입니다. 이런 조건부의 기도가 다 맹세입니다. 그러니 기도라는 것도 거의 다 이런 내용들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 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이미 우리는 죽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만족과 나의 유익을 위하여 구할 내용이 없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그 아들을 믿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나 자기의 결심이나 자기의 결단을 가지고 맹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이 독자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놓고서 맹세로서 이루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불신의 사람입니다. 자기 이름과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지언정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영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맹세하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맹세하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내용 중에 이런 것이 들어있습니까?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현재 주어진 것만으로도 너무나 과분한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만물의 찌끼같이 여김을 받을지라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으로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맹세하고 무엇을 서원하고 작정기도를 하는 것 전부가 결국은 주님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아무리 거창하게 포장을 하여도 한 꺼풀만 벗겨보면 내 영광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을 맹세라도 하여서 이룰 수만 있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지나치는 것은 다 죄라고 합니다.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예와 아니요’를 제대로 못하는지 아십니까? ‘예’라고 하여야 할 때에 ‘아니요’가 나오고, ‘아니요’가 나와야 하는데 ‘예’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애매모호하게 답하고서 자기가 빠져나갈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나 ‘아니오’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 다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맹세를 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맹세하고, 예와 아니요도 진리와 상관없이 자기의 이익을 따라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까? 죄 정함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죄 정함을 받는다는 말씀은 바로 위의 말씀에서 심판자가 문 밖에 계신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헛된 맹세와 거짓된 예와 아니오를 반복해 왔는지를 돌아보면 심판 외에 달리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맹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맹세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신명기 6:10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그 맹세를 하나님 자신이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앞선 맹세가 있습니다. 창세기 22:16-17절을 보면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슨 맹세를 이루실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한 그 제물을 여호와의 맹세로 준비하십니다. 그 씨가 대적을 문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맹세로 이루어내시는 그 씨를 통하여 어떻게 대적의 문을 얻게 되는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3:15-16절을 보면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맹세,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시고 이루심으로 그 씨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맹세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절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무엇에 예하면 됩니까?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맹세는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예!’ 하면 됩니다. 여기서 ‘예’라는 말이 ‘아멘’과 동의어입니다. 그러면 ‘아니요!’는 언제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지 못하였다는 말에 우리는 ‘아니오’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을 부인하는 역사가 늘 있어 왔습니다. 펠라기안이 그러했고, 세미 펠라기안이 그러했고, 알미니안이 그러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사상들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다른 복음에 대해서 분명히 ‘아니오’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성경의 모든 언약과 맹세와 순종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오직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80 [요나서 2장] 물고기 뱃속에서 file 요나서 2:1-10 손재호 1773
479 [요나서 1장] 나를 바다에 던지라 file 요나서 1:11-17 손재호 1250
478 [요나서 1장]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file 요나서 1:1-10 손재호 1776
477 [오바댜 1장] 오바댜에게 임한 묵시(피할 자) file 오바댜 1:15-21 손재호 1375
476 [오바댜 1장] 오바댜에게 임한 묵시(에돔의 멸망) file 오바댜 1:1-14 손재호 1517
475 [사무엘상 19장]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다 file 사무엘상 19장 손재호 2015-05-20 2231
474 [사무엘상 18장]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file 사무엘상 18장 손재호 2015-05-13 2238
473 [사무엘상 17장]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file 사무엘상 17장 손재호 2015-05-06 2556
472 [사무엘상 16장]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다 file 사무엘상 16장 손재호 2015-04-29 2183
471 [사무엘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file 사무엘상 15장 손재호 2015-04-22 3299
470 [사무엘상 14장]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느니라 file 사무엘상 14장 손재호 2015-04-15 2280
469 [사무엘상 13장] 망령된 제사를 드린 사울 왕 file 사무엘상 13장 손재호 2015-04-08 2871
468 [사무엘상 12장] 왕을 구한 이스라엘의 악 file 사무엘상 12장 손재호 2015-04-01 2143
467 [야고보서 5장] 기도하고 찬송하라 file 야고보서 5:13-20 손재호 1586
» [야고보서 5장] 맹세하지 말라 file 야고보서 5:12 손재호 1232
465 [야고보서 5장] 길이 참으라 file 야고보서 5:7-11 손재호 1364
464 [야고보서 5장] 부자들에 대한 경고 file 야고보서 5:1-6 손재호 1462
463 [야고보서 4장] 너희는 안개니라 file 야고보서 4:13-17 손재호 1313
462 [야고보서 4장] 너는 누구관대 file 야고보서 4:11-12 손재호 1143
461 [야고보서 4장]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file 야고보서 4:5-10 손재호 206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