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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5:13-20

2011년 야고보서 공부
                                                    기도하고 찬송하라!
말씀:야고보서 5:13-20

 

오늘 말씀은 야고보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할 것이며, 즐거운 자는 찬송할 것이라고 합니다. 기도와 찬송! 이것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삶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됩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보았듯이 우리에게 무슨 급한 일이 닥치고 꼭 이루어야 할 일이 있으면 우리는 맹세하기를 잘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날마다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당할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시간 이런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면서 본문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먼저 야고보는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기도하라고 하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왜 야고보는 고난당할 때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야고보가 고난당할 때 기도하라는 것은 단지 고난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초점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고난은 자기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이기 때문에 오는 고난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기록 목적도 흩어진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그것을 인내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곧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에 내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돌아보아 빨리 고쳐 해결해 보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5절에 보면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성도들이 당하는 시련 때문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지혜를 구하게 되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1:2-3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기도하여 지혜를 얻게 되면 그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을 기쁘게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시련들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룸으로써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시험은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장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함이란 1:12절에서 본 것처럼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환난이나 고난은 그것을 통해 믿음을 연단하여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셔서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살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4절에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성도가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에 기도함으로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도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짐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하라는 것은 자기 앞에 있는 어려움을 빨리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의 의미를 더욱 알게 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에게 닥친 고난만이 빨리 해결되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 편안함만을 생각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삶 가운데서 보면 대부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많은 고난과 역경과 환난을 당하는데 그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고난들의 의미를 알도록 늘 그렇게 기도합니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나에게 닥치는 고난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편안함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어려움이 생기면 내가 무엇을 잘 못해서 이렇게 어려움이 왔는지를 돌아보면서 자기를 탓하거나 아니면 남을 탓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보고 자기가 그렇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 이웃에 대하여 원망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히 자신에게 임한 고난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오늘 본문에서 성도가 고난당할 때 기도하라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기도하라는 것은 그 고난이 빨리 해결되도록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의미를 바르게 알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가 그렇게 기도하게 되면 그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는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도가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찬송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말 우리가 즐거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을 찬송합니까? 우리가 고난 받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기도하기는 쉽습니다. 곧 고난의 뜻을 알기보다 그 고난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기도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기가 쉽습니까? 우리는 무슨 일이 잘 되면 자기 탓이고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아담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치면 전부 남이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핑계하고, 잘된 일이 있으면 자기가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를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 본성이 성도라고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즐거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셨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입니다.

 

여러분! 무슨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길 때 누구에게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됩니까? 물론 말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말로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내가 그동안 노력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렇게 헌신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겠느냐고 하면서 자기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리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가 즐거운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영광과 찬송을 주님께만 돌립니까? 물론 이런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극히 드물 것입니다. 요한복음 5: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서로 자기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사람들이 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란 십자가의 영광이기에 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암직하고 세상에서 영화로운 것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영광을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어떻게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찬송하겠습니까? 찬송이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찬송하는 사람이 영광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큰 일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 정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돌립니까? 그렇지 않죠.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본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즐거울 때 찬송하는 이 일이 얼마나 실천하기 힘든 내용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니 힘든 정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시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 보면 사도들이 즐거운 일이라고 여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의 성공과 즐거운 일을 즐거워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즐거운 일을 즐거움으로 보고 있으니 이미 초점부터가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양보하여 세상의 즐거움이라고 하여도 과연 주님께 찬송을 돌립니까? 전세방 살 때는 좁아도 자기 집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막상 집을 마련하여 일 년만 지나도 자기는 의례히 그런 집에 살만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집이 좁다고 여기고 더 나은 집에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이 정도에 이것도 누리지 못하겠느냐고 하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 찬송이 나오겠습니까? 원망이 나오겠습니까? 유다서 1:3-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어진 믿음의 도를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무엇으로 삼고 있습니까? 고난 받을 때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에 찬송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그렇게 고난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찬송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에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고난 가운데 기도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찬송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참으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는 귀하여서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있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14-18절에 보면 이제 야고보는 병들었을 때에 기도하라고 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다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기름을 바르며’라는 말은 ‘좋은 약도 먹으며’라는 말입니다. 성도가 병들었을 때 믿음으로 낫는다고 가끔 보면 약도 안 먹고 병원 치료도 거부하고 금식 기도원이나 소위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성경적으로 볼 때 옳은 일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분명 좋은 약도 먹으며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끔 병을 인과응보적으로 생각하고 성도들을 회개하라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도들도 병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거기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하며 좋은 약도 먹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합니다. 주께서 저를 일으키십니다.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서로 죄를 고하며 병 낫기를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엘리아를 예로 듭니다. 17-18절을 다시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수많은 문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이 말씀을 근거로 종부성사를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이 의식이 없을지라도 신부가 기름을 가져가서는 눈, 귀, 코, 손, 발에 바르면 그 신부의 기름 바름에 의하여 면죄를 받는다는 교리적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되겠습니다만 그렇게 하여 구원 얻을 자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병든 자를 위해 기름을 바르고 장로들이 기도하고 서로 죄를 고하면 죄가 사함을 받고 병도 낫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가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믿음의 기도란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말씀을 카톨릭과 같이 장로들의 믿음이라면 장로들이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란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사람의 죄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요청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문제로 인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죄의 사함을 받았다는 증거로 병에서도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주의 이름으로 바르기에 약용으로 사용하는 기름을 바르면서 주의 이름에 의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주의 이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예로 엘리야의 기도를 든 것입니다. 엘리야의 이 기도는 열왕기상 17-18장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를 하면 하늘이 놋과 같이 되어 비가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신 28:23-24). 엘리야는 이 언약에 기초해서 비가 오지 않아야 된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3년 6개월이 지나고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하고 하나님께 단을 쌓아 제물을 드리고서는 비가 오기를 간구하여 비가 오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기도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다고 하는 것은 그 의인은 누구를 의인이라고 합니까? 구약에서의 의인이란 모든 역경 가운데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의인도 역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가 의인입니다. 이런 자들은 고난 가운데 기도하며, 즐거울 때 찬송하고, 병든 자가 있으면 죄를 알게 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만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19-20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형제 중에서 미혹되어 진리에서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면,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야고보서의 결론입니다. 진리에 서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주의 강림을 전함으로 진리에서 떠난 자를 돌이켜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떠난 자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고난 가운데서도 그 고난을 통해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자기 주제를 파악하며 기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즐거울 때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심을 고백하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진리를 떠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주의 재림을 분명히 증거하며 돌이키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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