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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3:1-5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바울의 기도요청
말씀:데살로니가후서 3:1-5

 
지난주에는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영원한 위로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6-35절에 보면 시므온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시므온 위에 계셨습니다. 메시아를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나아가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 가슴에 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가복음 2:29-32절에 보면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위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자가 누구입니까? 성도입니다. 이러한 위로를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주시도록 기도하고 난 후 오늘 본문에 보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기도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어떤 사람입니까? 얼마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까? 하늘의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자고하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까지 허락되어야 될 정도로 대단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12절에 보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가 얼마나 겸손하였으면 데살로니가 성도들 곧 자신이 전도하여 성도가 된 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되지 않았으면서도 무엇이나 된 것처럼 교만하여 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의 본의니, 오직 십자가 복음이니,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한다고 말로는 하고 있지만 정말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자세가 얼마나 부족합니까? 우리는 바울 사도를 통해 우리 자신들을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15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겸손한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겸손히 기도 요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겸손히 기도 요청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드러내기 싫기 때문입니다. 곧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면서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면 교만하여 넘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되지 않았으면서 된 줄로 착각하고 남을 가르치려고만 한다면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9:30절에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기도 요청을 하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1절에 보면 ‘형제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과 동격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기도 요청을 여러 곳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5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5:30-33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찌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18-19절을 보면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4:2-3절을 보면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위하여 메임을 당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기도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기도 요청할 때 형제라고 부르며 또한 자신의 기도에 동역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기도의 동역 자들이 있습니까? 정말 진지하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 자신들을 볼 때 기도요청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존심 때문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평소에 구하고 있던 것이 나의 정욕을 위하여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아에 기도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까?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기도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들에 보면 어떻게 기도하라고 합니까? 무시로, 항상, 깨어, 힘써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싸움이란 기도 없이는 하나도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해야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힘과 능력과 근거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고 기도 요청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교만한 태도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여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 요청들에서 보면 복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기쁜 소식이라면 담대히 전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는데 두려워할 까닭이 있습니까? 오히려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사람들의 죄를 들추어내어야 하기에 그리고 그들이 평소에 기뻐하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들을 부수어야 하기에 복음을 전할 때 담대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면 우리가 서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본의를 드러내고,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고 하면 서로가 부담이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본의를 드러내고,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면 나의 생각과 욕심이 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속에 감추어져있는 세상을 향한 욕심과 마음의 생각들을 말씀으로 들추어내고, 회개를 촉구할 때 기분좋아할 사람이 몇 명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혹시 그러한 중에 참으로 말씀에 찔림을 받아서 회개하게 되면 그것은 참으로 성령의 감동하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아프고 쓰라리더라도 목사가 하나님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증거하도록 기도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을 좋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저도 망할 뿐 아니라 여러분도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 사도가 무슨 기도요청을 하고 있습니까? 3:1절을 보면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기를”이라고 기도요청 합니다. 바울 사도가 여러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증거되는 것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곧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것처럼 여러 곳에서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 쓸 때가 고린도교회에서라고 봅니다. 만약 학자들의 주장대로 고린도교회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면 아마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어떤 복음의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1:1-10절을 보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내용입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말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증거 되었고, 주님과 사도들을 본받고, 믿는 자의 본이 되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주 예수의 강림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요약하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믿는다고 하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이란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귀신도 알고 떠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참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에 행위를 더하여야 온전한 믿음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이란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행함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속고 있지 않는가하고 자신을 말씀으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아직도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살후 3:2). 그리고 믿음에는 사랑의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말로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수고가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눈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수군거리던 말던 내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용서와 사랑이 너무 크기에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에 대한 인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만 바란다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강림하심을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달음질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도록 기도 요청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나타난 이러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와 같은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로,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라고 기도요청을 합니다. 2절에 보면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했습니다(살후 3:2). 여기서 ‘무리하고 악한 자’란 넓게 보면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자들이 되겠습니다만 오늘 본문의 ‘무리하고 악한 자들’이라는 말씀 앞에 정관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느 특정인을 말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마음에 그러한 자들에게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 요청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그러한 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 따라다니면서 바울 사도를 괴롭힌 자들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그러한 자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무리하다’는 것은 합당한 이유없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트집을 다 잡아가면서 비방을 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unreasonable’입니다. 비합리적이고, 터무니없고, 과도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고린도후서 10:10절에 보면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어떤 자들은 바울의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곧 바울 사도가 외모나 말에는 볼품이 없다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아마 바울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고, 말에는 어눌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 사도를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갈라디아서 4:12-16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육체의 약함이 시험에 들만한 것이었습니다만 그러나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을 업신여기지도, 버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대접한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 줄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일한 바울 사도에 대하여 이렇게 대하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것으로 바울을 대적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복음을 막고자 하는 세력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교회 안에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복음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목사나 장로라고 해서 다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살면서 주님을 위하여 일한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란 그 관심사가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증거되는 것처럼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바울의 기도 요청이 우리의 기도 요청이 되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기도 요청을 하면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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