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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3:6-18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마지막 당부와 인사
말씀:데살로니가후서 3:6-18

 
오늘 말씀은 데살로니가후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3:1절에 ‘종말로’라는 말이 이 편지의 끝을 말하고 있습니다. 1-5절까지 말씀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면서 동시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주의 말씀이 힘있게 달음질하도록, 무리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건짐을 받도록 기도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주님께서 지키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도록 기도합니다. 그런 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의 마지막 당부와 권면이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6절을 보면 “형제들아!”라고 하면서 부드럽게 부르기는 하지만 그 다음에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권위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아주 강한 명령입니다. 군대식의 명령인데 최고 사령관의 명령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명령이 무엇입니까? 6b절을 보면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사령관의 명령치고는 좀 시시하죠?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규모 없이 행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규모 없이 행한다는 것은 어떤 자들을 가리킵니까? 자기 계급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자를 말하는데 11절에 보면 게을러서 일하기를 싫어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무어라고 합니까?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절에 보면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은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조용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에 보면 바울 사도가 친히 본을 보였다고 말합니다. 우선 바울 사도의 본을 보인 것에 대하여 잠시 보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가 개척을 할 때에 자신이 헌신하고 수고하였습니다. 스스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7-9절을 보면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행한 것은 자신이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본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다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9:1-15절을 보면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찌언정 ...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 사도가 자신의 권리가 있음을 아주 길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도가 아니냐. 다른 사도들처럼 할 권리가 없겠느냐’하면서 ‘군사로 부름 받은 자가 누가 자비량하면서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었으면 그 실과를 따먹지 않겠으며,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 일하는 소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이 소를 위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위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육신의 것을 거둔다한들 과하다 하겠느냐. 성전에서 일한 자들은 성전의 것으로 먹었듯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살리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고 하여서 이렇게 하여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하면서 그러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자기가 자랑하는 것이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합니까? 바울 자신이 복음을 자랑하는데 그 복음이 혹시 가리움을 받을까 해서 그러한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본을 보임으로서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에 오히려 게으름을 피우며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하고 또 그런 사람들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는 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형제같이 권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데살로니가후서의 마지막 당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권면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첫째는, 잘못된 종말관으로 인하여 일할 필요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하여는 데살로니가전서 4:1-12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4:11-12절에 보면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13-18절에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시한부 종말론 자들처럼 어느 날자와 시간을 맞추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시면 무엇을 하시다가 주님을 맞이하시겠습니까? 몇 일후라는 날자가 정하여 졌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자세이겠습니까? 회개하고, 헌금하고, 성경보고, 그러겠습니까? 집단으로 모여서 흰옷입고 금식기도하면서 기다리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평소에 주님을 얼마나 기다리지 않고 살았는가 하는 반증일 뿐입니다. 평소에 늘 주님과 동행하면서 산다면 비록 오늘 밤에 주님오신다고 하여도 날 자를 안다고 하여도 평소에 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곧 학교가고 직장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주님과의 사귐이 없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갑자기 준비하느라고 소란을 피우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평소에 예습과 복습을 꾸준히 합니다. 그러므로 시험 날짜가 다가와도 부산을 떨지 않고 평소처럼 차분히 시험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들은 시험 치른다고 밤샘을 하고 요란을 떠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에 있어서도 주님과 바른 관계가 되어 있다면 주님이 곧 오실 텐데 일하지 말자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종말관으로 인하여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바로 이런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바른 관계성 속에서 평소에 준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지런히 일하면서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돕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선한사업에 부요하기까지 일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요하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부하여지도록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정말 일하기 싫어해서 게으른 자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짐이나 지우면서 빈둥거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걸인들이 찾아 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쩡합니다. 얼마든지 일하면서 먹고 살만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육신이 멀쩡한데 왜 일하지 않고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면 얼마나 많은 핑계와 변명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얼마를 주면 대부분 그것을 가지고 술 사먹고 게임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일할 수 있는데 게을러서 일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하여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에게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고 했습니다.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는 말은 일만 만드는 자들에게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자기가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쓸데없이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우리가 들은즉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잠시 보았습니다만 규모 없이 행한다는 것은 군인이 자신의 계급에 맞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분수에 맞게 일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병의 일이 있고 장교의 일이 있는 것입니다. 각자가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에 관한 일화입니다. 나폴레옹이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지나가다가 나폴레옹에 대하여 욕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폴레옹 그놈은 게으르고 말썽만 부리고 하는 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그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자기와 이름이 꼭 같은 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병을 불러다가 너가 이름을 바꾸든지 행동을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규모 없이 행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규모 없이 행한다는 것은 세상의 사람과 구별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란 말 자체가 구별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름에 맞지 않는 것이 규모 없이 사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별되는 것입니까? 삶의 방향성과 목표, 가치관에 있어서 구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대체 어떤 구별됨이 있습니까? 규모 없이 행할 뿐만 아니라 일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두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13절을 보면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참된 과부를 구별하여 과부의 명단에 올리라고 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과부의 명단에 올라간 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말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과부가 있다면 먼저 친척이 그들을 감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과부란 5절에 보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과부에 대하여는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부에게만 주는 권면입니까? 아닙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적용해야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임을 가지든 간에 얼마든지 일만 만들고 망령된 폄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였다하면 주의 은혜를 나누기보다 일만 만들고 누구 누구는 어떻더라고 하며 흉을 보고 판단하고 분란만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에 있어서 주도적인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누가 일만 만드는 자입니까? 주의 은혜를 나누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분란만 만드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일만 만드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을 지목하여 부끄럽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사람이 없지요? 몇 사람 되지도 않는데 다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만약 이러한 일들이 있다면 우리는 엄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교회답게 치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회개치 않고 계속해서 일만 만드는 자는 공개적으로 지목을 하여 사귀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죄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그를 부끄럽게 하여 회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마지막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는 엄청난 내용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주께 소망을 두고 말씀과 기도에 착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가 어디에서, 어떤 모임이 있더라도 주 예수의 은혜 외에는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들이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을 낸다는 것은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현장에서 쓸데없는 폄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심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분에 대한 자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바울은 마지막 인사말을 합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 찌어다”(18).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이 인사말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 되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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