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40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1:1

2011년 야고보서 공부
                                                     야고보의 문안 인사
말씀:야고보 1:1

 

오늘부터 우리는 야고보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야고보서의 저자와 기술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형제요,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였던 야고보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속사도 시대 무명의 사람이 기술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로마서의 이신칭의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 야고보서를 기술했다고 보는 자들인데 로마서가 A.D. 55-57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니까 그 후일 것이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바울 이전 시대에 쓰여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학자들은 야고보의 순교 직전 A.D. 62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다 추정에 불과 합니다. 정확히 그 기술 년도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1:1절에 보면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 대해서도 학자들에 따라 그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그 주장이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야고보의 관할 구역이었던 팔레스틴 지역 밖에 사는 즉 로마제국 전체에 흩어져 사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이라는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일차적인 수신자들이 이들이지만 동시에 모든 기독교인 곧 오늘날 우리도 이에 포함이 됩니다.

 

여러분! 야고보서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는 것일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를 가지고 말로만의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따라야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행함을 강조 해 왔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가 증거 하는 것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여서 행함을 더 보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른 믿음이 무엇인가를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고보서를 공부할 때 이점을 잘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1절을 중심으로 야고보의 문안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이 서신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1절에 보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이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형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종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기에 더욱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자라면서 조금은 다른 면은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성경은 아주 조금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생 때의 이야기, 성전에서의 결례, 12세 때 자기가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러나 조금밖에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이 기술들을 통해서도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면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하나님의 집이다, 내 집이다고 한 것은 분명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하여튼 야고보는 예수님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자신의 육신의 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특별한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아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야 말로 육신의 형으로만 보았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3:21절을 보면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셔서 활동하실 때에 예수님의 친속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붙들러 온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 야고보가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평소에 자기의 형인데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였습니다.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고 자기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이상한 것을 가르치니 미쳤다고 여기고 붙들러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 7:2-5절에도 보면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야고보가 어떻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자기를 종이라고 하게 되었습니까? 고린도전서 15:7절에 보면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베드로와 오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던 것입니다. 야고보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서는, 곧 영광의 주님을 뵙고서는 모든 생각들이 다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합니다.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모든 것이 다 바뀌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다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육체대로 알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는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대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받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받은 믿음은 위로부터 받은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예수님을 형으로 보지 않고 주요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위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위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9절에 보면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먼저 교회의 기둥이라고 하면서 야고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12-21절을 보면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문제로 유대인이 시비를 걸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회의가 열린 것입니다. 베드로가 증거 하고, 바울과 바나바가 증거 하고 나서 야고보가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한바 자기들도 메지 못한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은 그 어떤 행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돌아온다는 것을 야고보가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어떤 행함을 더 추가하여야 되는 문제가 아니라 주께로부터 받은 믿음,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진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야고보가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2장 본문을 보면서 더욱 자세하게 보겠습니다만 오늘 보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기둥이라고 여김을 받고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이라는 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이 고백이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 이 당시의 종이란 노예입니다. 자기의 소유라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인의 소유물이 종인 것입니다. 자기의 뜻대로 살지도 못하고, 자기의 목숨도 자기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자식도 자기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인 것이 야고보의 믿음인 것입니다. 야고보의 이 믿음이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야고보서의 수신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1절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입니다. 우리는 흩어져 있는 열 두지파하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생각나게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열두지파가 되는데 이들이 구약에서도 많이 흩어졌습니다. 구약시대에 흩어진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에 앗수르나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면서 흩어진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또 여러 나라로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야고보서를 받는 사람들이 흩어진 유대인들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이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예수를 나사렛 이단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란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흩어져 있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8:2절을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시작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흩어지게 된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그 벌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이미 사도행전 1:8절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신 것입니다. 그 핍박을 통하여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증거 되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흩어진 열두 지파란 유대인들 중에 예수 믿는 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예수 믿는 자들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베드로전서 1:1-2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성도란 이 땅에서 흩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나그네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때에 각 지역에 흩어진 이유는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진 것이며, 피하여 간 곳에서도 계속되는 핍박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핍박들을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제일 심한 핍박은 유대인들의 핍박입니다. 나사렛 이단의 괴수인 예수를 믿는 무리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핍박들이 닥친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향하여 내 형제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사람을 혈통을 따라 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46-50절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가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가족관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야고보를 만나 주셨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로서 임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야고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종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이 한 형제임을 알고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70 [사무엘상 14장]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느니라 file 사무엘상 14장 손재호 2015-04-15 2390
469 [사무엘상 13장] 망령된 제사를 드린 사울 왕 file 사무엘상 13장 손재호 2015-04-08 3056
468 [사무엘상 12장] 왕을 구한 이스라엘의 악 file 사무엘상 12장 손재호 2015-04-01 2262
467 [야고보서 5장] 기도하고 찬송하라 file 야고보서 5:13-20 손재호 1630
466 [야고보서 5장] 맹세하지 말라 file 야고보서 5:12 손재호 1275
465 [야고보서 5장] 길이 참으라 file 야고보서 5:7-11 손재호 1411
464 [야고보서 5장] 부자들에 대한 경고 file 야고보서 5:1-6 손재호 1524
463 [야고보서 4장] 너희는 안개니라 file 야고보서 4:13-17 손재호 1361
462 [야고보서 4장] 너는 누구관대 file 야고보서 4:11-12 손재호 1175
461 [야고보서 4장]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file 야고보서 4:5-10 손재호 2136
460 [야고보서 4장] 하나님의 원수 file 야고보서 4:1-4 손재호 1211
459 [야고보서 3장] 두 가지 지혜 file 야고보서 3:13-18 손재호 1825
458 [야고보서 3장] 말의 실수가 없으면 file 야고보서 손재호 2096
457 [야고보서 2장] 참된 믿음의 예 file 야고보서 2:20-26 손재호 1112
456 [야고보서 2장] 행함이 없는 믿음 file 야고보서 2:14-19 손재호 1914
455 [야고보서 2장] 긍휼이 심판을 이긴다. file 야고보서 2:10-13 손재호 1447
454 [야고보서 2장]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file 야고보서 2:1-9 손재호 1844
453 [야고보서 1장] 참된 경건이란? file 야고보서 1:26-27 손재호 2072
452 [야고보서 1장]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file 야고보서 1:22-25 손재호 1489
451 [야고보서 1장] 듣기를 속히 하라 file 야고보서 1:19-21 손재호 160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35 Next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