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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1:19-21

2011년 야고보서 공부
                                                           듣기를 속히 하라
말씀:야고보서 1:19-21

 

오늘 본문 말씀은 18절의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는 말씀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저자 야고보는 오늘 말씀을 통해 ‘듣기를 속히 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듣기를 속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기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말씀을 속히 듣기 위해서 “말하기를 더디 하고,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듣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에 심겨진 도입니다. 그러면 그 도가 무엇입니까? 바울 식으로 말하면 십자가의 도가 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1:18절에서 진리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였거나 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도 곧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그 마음에 진리의 말씀이 심겨진 성도들은 그 은혜를 더욱 깊이 누려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당시 잘 알려져 있던 격언을 소개함으로써 오늘 본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이 격언의 배경은 구약과 유대교 문학에 보면 너무도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잠언 15:1-2절에 보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잠언 29:20절에 보면 “네가 언어에 조급한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7:8-9절에도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가 19절에서 이 격언을 인용한 의도는 18절과의 관계로 미루어 볼 때 상당히 분명합니다. 18절에 보면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인간을 구속하는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과 대조적으로 인간의 말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것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고보는 3장에서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지혜의 선물과 얼마나 깊은 연관되어 있는가를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3장 말씀에서 다룰 문제에 대해서 미리 준비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튼 야고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듣기에 속히 하라’고 권면합니다. 듣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를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야고보는 먼저 말하기를 더디 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말이 많거나 말이 앞서는 사람들을 보면 남의 말에 귀를 잘 귀울이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도 말하기에 속하기보다 듣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뢰아 성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늘 묵상하기에 힘썼다고 했습니다(행 17:11).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말하기를 더디 하고 듣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성내는 것을 더디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큰 장애가 되는 것이 성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싸운 경우에 보면 화가 나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성내는 것을 더디 해야 합니다.

 

19절의 격언을 인용한 야고보는 이 격언을 자신의 사상에 확장합니다. 20절에 보면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화내기를 더디 해야 하는 이유는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분냄’은 일상적인 인간의 감정의 표출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의분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은 무서운 죄가 됩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지옥 불에 떨어지게 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사람의 성냄이 곧 그것이 비록 의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특히 야고보는 3:18절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함으로써 20절 말씀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성내는 것을 더디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듣기 위해서 말하기와 성내는 것을 더디하라고 권면한 야고보는 계속해서 권면합니다.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본절이 앞 단락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앞에서 듣는 것을 속히 하고 말하는 것은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람이 성내는 것을 더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곧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듣기 위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버려야 한다’는 동사는 ‘아포티데미’(ajpotivqhmi)라는 단어 인데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옷을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에베소서 4:22절과 베드로전서 2: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삶의 양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4:22절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2:1절에서는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이처럼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그 삶의 양식이 완전히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은 앞에서 언급된 말과 분노를 포함해서 그들이 회개해야 할 모든 종류의 죄악들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곧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부정적인 권면을 했던 야고보는 이제 긍정적인 권면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21b절을 보면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원어로 보면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온유함’은 문장상의 위치로 볼 때 앞에서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성냄’과 정 반대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온유함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혈기왕성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유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은 ‘마음에 새긴 도’입니다. ‘마음에 새긴 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0:38-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에서 식사 섬김을 받을 때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느라 몹시 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분주한데 동생은 예수님의 발밑에 가만히 앉아서 꼼짝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한마디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여러 가지로 분주하다만 그러나 한가지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시면서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긴급하고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 마르다는 자신의 분주함 때문에 마리아에 대하여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곧 자신은 예수님을 대접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마리아는 아무 것도 안 거들고 말씀만 듣고 있으니 너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이 난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말과 성냄이 빨리 나옵니까? 자기 마음에 차지 않을 때에 말이 빨리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성이 나는 것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성이 납니다. 그래서 보면 말이 급한 사람들이 대부분 성도 잘 냅니다. 그런데 마르다의 성냄은 어떤 성냄입니까? 자기는 주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데 마리아는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을 우리는 의분이라고 할 수 있죠. 마치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환전상의 돈 궤를 둘러엎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아버리는 분노와 비슷하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교회 일을 하다가 보면 언제 분노가 일어납니까? 나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조를 맞추어주지 않을 때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든, 집사든, 형제든 간에 열심 있는 자가 분노도 많이 일어납니다. 열심 있는 사람이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자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가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분노는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요나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자기는 성을 내어도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 냄이 과연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분노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의 열심이 어떤 열심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분노의 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라고 분노의 소리를 발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듣고 분노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처럼 분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성 냄과 분노의 중심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들어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데 나에게 복을 주지 않는가 하는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우리의 성 냄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는 의롭고 선한 일을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복도 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에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분노가 아니라 회개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는 사람은 말하기도 더디 하고 성 내기도 더디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속히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 마음에 진리의 말씀이 심긴 자는 반드시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듣기를 속히 하지 않는 것은 무언가 병이 든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젖을 저절로 찾는데 병이 든 아이는 젖을 거부하는 것처럼 됩니다. 베드로전서 2:1-3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버릴 것이 있고 사모할 것이 있는데 버릴 것은 야고보서에서도 말씀하는 것처럼 모든 악한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모하라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갓난아이들이 젖을 사모하듯이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야고보도 ‘도’가 마음에 심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를 받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그 마음에 도가 심겨진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들으라’고 하는 것은 처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새겨진 진리를 온전하고 명철하게 영적인 지식으로 받아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까?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났습니까? 성경이 증거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들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려야지 인간의 성공담이나 긍정의 힘과 같은 것이 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에 빠르고 느리며, 무엇을 무겁게 여기고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속히 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는 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지는 않습니까? 너무나 사소한 일을 가지고서도 나오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러고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물론 이것을 율법적인 잣대로 기준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도 말씀 듣는 일을 속히 하라는 것을 일주일에 몇 번을 말씀 듣는 자리에 오고, 온다면 몇 분전에 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말씀을 듣는 자세가 되어 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심겨진 자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자기를 변명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회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듣기를 속히 한다는 것은 시간상의 말이 아니라 중요도의 문제도 함께 포함이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며, 듣는 것을 속히 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옷 입어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새긴 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속히 받아 그 생명을 풍성히 누려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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