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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2:1-9

2011년 야고보서 공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말씀:야고보서 2:1-9

 

야고보서 2장은 행함을 강조하는 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2장은 단지 ‘행함’을 강조하는 장이라기보다는 ‘참된 믿음’을 강조하는 장입니다. 곧 야고보는 2장에서 행함 그 자체보다도 참된 믿음은 어떤 것인가? 참된 믿음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우선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야고보가 말하는 바는 올바른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믿음이 있다고 말만 하고서 실제로는 행함이 없는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며,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22). 그러므로 야고보서 2장의 전체 주제를 ‘참된 믿음’이라고 보고, 그 믿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은 1-13절과 14-26절로 나눌 수 있는데, 1-13절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서, 14-26절에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곧 참된 믿음은 첫째로 ‘외모로 취함이 없는 믿음’이어야 하며(1-13), 또한 ‘행함이 있는 믿음’(14-26)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야고보와 바울은 믿음과 행함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각각 다른 측면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2장을 살펴보는 가운데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3절에서 야고보는 성도들 상호간에 ‘외모로 취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는 것’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것 곧 사람의 외적인 지위나 상태에 따라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람을 그 본질에 따라 공의롭게 판단하지 아니하고 겉으로 보이는 신분이나 지위를 따라 차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영광의 주,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은 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광의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비참함과 더러움을 발견한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을 세상의 외모로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본성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의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2-4절을 보면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회당에 들어오는데 한 사람은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며, 다른 한 사람은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회당이라고 했는데 아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장소인 교회를 이처럼 회당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를 가정적인 예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대게 이 사람을 귀부인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원문에 보면 이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헬라어로 ‘람프람’인데 그 기본형이 ‘람프로스’- lamprov")도 정확히 번역하면 ‘찬란한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가락지를 끼는 것은 공화정(共和政) 시대에는 ‘기사 계급’에 속한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해당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정(帝政) 이후로는 일반 사람들에게로 일반화 되었습니다. 따라서 ‘손에 금가락지를 끼고 찬란한 옷을 입은 사람’은 당시의 권세 있는 공무원이거나 유력한 부자를 가리킵니다. 이에 비해 가난한 사람은 ‘더러운 옷’을 입고 회당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더러운’이란 말은 헬라어로 ‘뤼파라’(기본형이 ‘뤼파라스’-rJuparov")인데 ‘먼지가 묻은’, ‘정결치 못한’이란 뜻이라기보다는 ‘누덕누덕한’, ‘누추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가난한 사람의 초라하고 보잘 것없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들을 어떻게 구별하여 대하는 것입니까? 3-4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여 대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오는 부자는 환영하며 좋은 자리에 앉게 하고 가난한 자는 멸시하여 아무 데나 앉게 하거나 그냥 구석에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은 서로 구별하여 판단하는 악한 생각입니다. 이러한 차별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와는 정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5절에 보면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너희도 알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것이 어떤 형편에서 부름을 받았는지 알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대우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를 선택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자기 자랑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이 선택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하여 자기 자랑거리가 전혀 없다는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다 구원받아야 한다는 식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언가 그 사람에게서 선한 것이 있어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7:6-8절을 보면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적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지 자기들이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그래도 무언가 다른 것이 있어서 선택을 받은 줄 알고 교만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선택을 통하여 그들의 죄를 다 드러내신 것입니다. 새 언약에서는 그 어떤 민족이나 신분이나 세상의 지위와 상관없이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금가락지를 끼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면 환영하고,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면 차별대우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악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중심으로 교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을 따라 친하게 지내고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라면 그것이 또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직분 자를 세울 때 보면 그 사람의 사회적인 직위와 능력을 교려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장로는 몇 백만원, 집사는 몇 십만원 아에 헌금을 책정해 주고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를 직분 자로 세운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지 않습니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있다면 우리는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광의 주님을 만나 보지도 못한 자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복 주신 자들을 교회가 멸시하고 천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생각이며, 교회의 본질에 위배되는 모순된 행동임을 밝힌 후 이러한 죄악에 대해 강하게 책망합니다. 6-7절에 보면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부자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볼 때 이 말이 진리처럼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이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증권에서 이익을 보았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단계로 돈을 번 사람은 수많은 하부조직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기에 가능한 것이고, 대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수많은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부요하다는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죄악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일컫는 그 아름다운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훼방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누가 훼방하였습니까? 부요한 자들입니다. 세상에 부요한 자들, 종교적으로 부요한 자들, 자기 착함에 부요한 자들, 가난한 사람이라고 자기의 가난함을 청빈으로 여기고 그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것 역시 부요한 자가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선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인간은 일체의 자기 자랑이 나올 수 없게 조치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6-3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선택을 하시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부요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가졌다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착하다고, 의롭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다 철거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는 것은 자기의 자랑이 일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29절에 보면 “이는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영광의 주님 앞에서 입이라도 벙긋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을 입었다고 함으로 주님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야고보서를 인용하면서 설교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어떤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힘이 되는 쪽으로 행함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야고보서는 어느 한 구절도 교회가 힘을 가지게 되는 쪽의 행함을 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대우 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차별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누가 힘이 있느냐로 따집니다. 돈, 권력, 지식, 가문과 힘이 되는 것을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차별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자가 교회에 와서 특별대우를 받고, 가난한 자가 차별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세속에 물든 것입니다.

 

9-10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최고한 법이란 레위기 19:18절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웃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곧 모든 이웃입니다. 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한 법이 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먹고 배부르게 되자 그러한 자격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멸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땅에, 그 율법을 주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가장 가난한 자로 오셨습니다. 약하신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들은 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접하였습니까? 외모로 취급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최고한 법으로 알고 있던 그 이웃 사랑의 법을 주신 분을 살해함으로 그들의 죄악이 다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어떤 조건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서만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로 모인 성도란 일체 세상의 조건으로 차별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인데 무슨 죄가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인을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그 피의 능력을 무시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차별 없이 주어지는 우리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참된 경건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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