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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2:20-26

2011년 야고보서 공부
                                                           참된 믿음의 예
말씀:야고보서 2:20-26

 

우리는 지난 시간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배웠습니다. 17절에 보면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의 전제가 옳음을 18절과 19절에서 논증해 갑니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떤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만 알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참된 믿음에 대한 구체적인 실제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야고보는 참된 믿음의 실제 예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예를 들어서 참된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0-24절을 보면 먼저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임을 알고자 하느냐며 제시하는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근거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다는 것을 이삭을 바치는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공부할 때 배웠습니다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건은 창세기 15장에서 입니다. 창세기 15: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이 연합군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리운 사병을 데리고 가서 기습작전으로 연합군을 물리치고 구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보면 아브라함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해 볼 때 연합군이 다시 보복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근본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을 때의 반응에서 보면 후사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무자 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창 15:2).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습니다. 그러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후사가 될 것입니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후 아브라함은 데리고 밖으로 나가셔서 뭇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은 창세기 22장에 나옵니다. 곧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창세기 15:6절의 말씀의 증거가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바치는 사건으로 확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도 창세기 15:6절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니 창세기 22:12절에 보면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는 이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것으로 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가 누구에게서 나왔으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에 살 때에 믿음이 전혀 없었던 사람입니다. 자기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기에 아브라함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를 부르시고 가나안 땅에 들여놓으시고 약속을 주십니다.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는 약속만 받았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애굽에 내려갔다가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입니다. 믿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왕이 하나님께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과 15장에 보면 연합군을 물리치고 조카 롯을 구해 왔을 때 멜기세덱을 만나서 축복을 받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2:1절에서도 믿음이란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에 대한 어떤 내용의 믿음인 것입니까?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인데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땅에 대한 약속도 후손에 대한 약속도 약속만 주셨지 그 실체를 아직 받지 못한 때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서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자기는 상속자가 없는데 자기 집에서 기른 엘리에셀이 후사가 되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 몸에 날 자가 네 후사라 되리라”고 하시면서 밖으로 데리고 가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내용이란 후손에 대한 약속인데 그것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믿음의 고백과 언약을 체결하고 나서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99세에 하나님께서 다시 약속을 주시고 할례를 행하게 하셔서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처럼 이삭을 낳게 되기까지 믿음이 무엇인지를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100세에 낳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아무른 망설임 없이 바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 일찍 일어나 삼일 길을 가는 동안 수많은 고민과 번민을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망설임 없이 약속을 받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갈등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바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의 결단과 의지가 됩니다.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지만 제물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아브라함은 스스럼없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약속에 대한 신뢰, 그 씨가 죽더라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이 믿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것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의 확정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이 행위란 교회를 위한 헌신이나 순종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착하다고 하는 그런 행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마지못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그런 행함을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목숨과 같은 이삭을 바치는 행위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으로 믿음을 보인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이삭 바치는 행위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의 확증적인 사건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믿음의 행위라는 것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교회에 대한 충성이나 세상에서 윤리 도덕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가 아브라함의 행위인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이 세상에서 착한 일입니까? 그 내용,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순종이 믿음의 행위인 것이지 자기의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의 몸이나 자기 자식을 바치는 것을 믿음의 행위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두 번째 참된 믿음의 예로 라합을 들고 있습니다. 25절에 보면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라합은 기생 곧 창기입니다. 그런 여인이 믿음의 행위를 말하는 예증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행함 역시 세상의 상식이나 윤리나 도덕과 전혀 어울리지 아니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조국을 배신하고 스파이를 숨겨주었습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자기 혼자, 자기 가족만 살겠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조국을 헌신 짝 버리듯이 버리는 것을 믿음의 행위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행위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의 행위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2:8-11절을 보면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은 여리고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내용입니다. 모든 백성이 다 간담이 녹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기생 라합뿐입니다. 이 기생의 행함이 무엇으로 설명이 됩니까? 세상의 윤리와 도덕으로 국가관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과 그가 행하시는 일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은 망해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스파이를 숨겨준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따른 행위입니다.

 

이 세상이 망한다는 소식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 수도 없이 듣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들어왔습니다(마 6:33).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나라는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의를 구하는 것도 역시 나의 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행함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는데 행위로는 전혀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디도서 1:16절 말씀에 보면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믿음이 없었음을 자인하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야고보서는 2:18-19절에서 믿음이 있다는 말만 하지 말고 네 믿음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지식과 말로만 하는 믿음이란 귀신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나의 믿음을 무엇으로 제시하겠습니까? 무슨 카드를 내 밀 듯이 보여줄 믿음의 행위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 곧 예배나 전도와 같은 것들을 믿음의 행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7:21-23절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고, 예수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주여 주여’하는 것이 믿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이 천국에 다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이런 엄청난 행함들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평소에 교회에서 강조하는 믿음의 행위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는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가 핵심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행함들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행함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믿음의 행위를 말하면 교회를 위한 행위, 또는 세상에서 착하게 살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야고보서가 말하고 있는 믿음의 행위에 대하여 예증하는 두 인물과 그 사건은 교회를 위한 행위도 아니고 세상에서의 착한 일로 통하는 윤리나 도덕적인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라합은 인간적으로 보면 착한 행실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한 것은 자식을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라합은 자기 살기 위해 민족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야고보는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아브라함과 라합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참된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들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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