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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삿 19:1-30
성경본문내용 (1)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2)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3)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니라(4)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를 머물리매 그가 삼일을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5)나흘만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어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에 그대의 길을 행하라(6)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7)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첩장인의 간청으로 다시 유숙하더니(8)다섯째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돕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9)그 사람이 첩과 하인으로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해가 저물어가니 청컨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찌기 그대의 길을 행하여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10)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11)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12)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13)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14)모두 앞으로 행하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15)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16)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18)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19)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 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20)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 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26)동틀 때에 여인이 그 주인의 우거한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27)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 두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강설날짜 2012-12-26

2012년 12월 26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사사기 제28강

 

에피소드Ⅱ-도덕적 타락상(1)

 

말씀 : 삿 19:1-30

 

(1)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라는 말은 지금부터 하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왕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말해줍니다. 즉 이 이야기는 왕정제도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왕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면서 이 본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왕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에브라임 산지에 우거하는 한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 여자를 첩으로 취했습니다. 아내로 취한 것이 아니라 첩으로 취했습니다. 아내가 있는데, 따로 자기의 정욕을 위해 첩을 취한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가 워낙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인 풍습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여자는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졌으며, 여러 아내는 자신의 높은 부와 지위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도 여러 아내를 두었고 첩까지 두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율법에서 첩을 두는 것 자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금지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부다처제를 권장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는 일부일처제입니다. 그러나 옛 경륜 아래 있는 백성들에게 타락의 구조 속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허용하셨다고 보여 집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가 충격 받는 것은 그 첩이 음행을 행하고 자기 친정으로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땅히 끌어와서 돌로 쳐 죽이든지 불사르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은 다정한 말로 설득해서 다시 데려와 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첩을 두는 것 자체에 대해서 어떻게 큰 죄를 범했다고 지적할 수 없는데, 그러나 음행한 첩을 다시금 데려오겠다는 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신 24장에 보면 정당한 사유로 이혼했어도, 그 여자의 새남편이 죽거나, 그 여자가 또 다시 이혼했을 때, 그녀를 다시금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지니라”(신 24:4)

 

물론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상황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다른 남자와의 관계로 더럽혀진 아내를 다시금 맞이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임을 잘 보여줍니다. 더욱이 일반 평민들보다 더욱 도덕적인 순결과 가정의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레위인들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따로 구별된 거룩한 백성들로서 성막과 제사장을 섬기고 백성들을 목양하는 일을 감당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거의 제사장급의 거룩함과 순결함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은 아내 말고도 첩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 첩이 다른 남자와 행음하는 큰 죄악을 범했는데도 없었던 일로 해서 넘어가고, 그 여인을 다시 찾아서 데려오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레위인이 지금 그렇다는 것에 본문의 초점이 있습니다. 앞선 에피소드 1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번 에피소드 역시 레위인이 주인공입니다. 이것은 바로 다른 평민들보다 더욱 거룩하고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하는 레위인들이 종교적으로 심히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도덕적으로도 심히 타락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맡은 레위인들이 이렇게 타락했으니, 이스라엘 평민들은 안 봐도 비디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레위인이 첩을 데려오기 위해 나귀 둘과 종을 이끌고 베들레헴의 처갓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다시 한 번 잘해보자...” 그렇게 다정한 말로 설득해서 데려가려고 하는데, 장인이 좀 더 쉬었다 가라고 붙들어 매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베들레헴에 5일간 머무릅니다. 장인의 입장에서는 자기 딸이 행음했기 때문에 미안한 것도 있고, 또 없었던 일로 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했는지, 아주 분에 넘치게 대접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섯째 날 아침이 되어서 가려고 하니깐, 또 장인이 붙잡습니다. “좀 먹고 마시고 가라...” 그래서 먹고 마시고 나서 출발하려 했더니 자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안식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하고 길을 떠납니다. 아마도 해지기 서너 시간 전에 출발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중간에 예루살렘, 곧 ‘여부스 맞은 편’에 이르렀습니다. 예루살렘을 ‘여부스’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베냐민 지파가 예루살렘 반쪽을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읍 이름이 ‘여부스’입니다.


종이 해가 졌으니 여기 여부스에서 하룻밤 묵고 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레위인은 “마땅히 이방인의 성읍에서 유숙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유숙해야 할 것이다. 조금 더 가서 기브아나 라마로 가자.”라고 말합니다. 거기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입니다. 레위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아주 바람직하고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의 도리를 따라 일부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간 것인데, 거기서 그런 험한 꼴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브아 땅에 도착했는데, 해가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들을 영접해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성읍이 아주 악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객이나 손님 접대하는 풍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어도, 이방인들이라도 잘 지켰던 것입니다. 그 당시 고대근동사회에서 여행객들을 접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이고, 이스라엘은 더더욱 하나님이 율법으로 명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방인들보다 더 훌륭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보다 못합니다. 차라리 종의 말대로 그냥 이방인의 성읍에서 유숙할 걸 그랬습니다. 거기서는 분명 이런 대접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을 영접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거민들이 얼마나 인심이 없고 악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졸지에 길바닥에서 자게 생겼는데, 다행히도 자기를 영접해주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16)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

 

이 노인은 베냐민 사람이 아니라, 레위인과 고향이 같은 에브라임 사람인데, 이 기브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노인이 그 여행객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와서 대접해주고자 하는데, 무턱대고 데려올 수 없으니깐,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봅니다. 레위인은 베들레헴에 갔다가 에브라임 산지에 가는 중이라고 말하고서 다시 또 반복해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집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개인 신당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앞에 에피소드의 경우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집에 개인 신당을 차려놓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레위인이 여호와의 집을 언급하는 이유는 자신이 경건한 사람이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없으니 폐 끼칠 일은 없을 겁니다.” 하고 자기들을 받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노인은 “그럴 필요 없다. 모든 필요를 내가 담당하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 데려 와서 손님 접대를 아주 잘했습니다. 발을 씻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되어왔습니다.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 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성읍의 비류들이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위협을 가했습니다. 여기서 ‘비류’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라는 말입니다. ‘벨리알’이라는 말은 사단 마귀에게 완전히 속하여서 그 어떤 선한 것도 없고, 이성 없는 짐승처럼 두려움 없이 죄를 짓는 아주 쓸모없는 인간들을 말합니다. 아주 악한 폭력배들이 와서는 “그 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상관한다’는 것은 그 남자와 성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은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완전한 복사판입니다.


그래서 남색(소도미)이라는 용어가 소돔에서 왔습니다. 지금 소돔과 고모라에서나 있을법한 성적인 타락이 이방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라 이름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아니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그런 성적인 타락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기브아 거민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이 이런 상태로까지 타락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이러한 타락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기브아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만 그 타락의 선두주자여서 먼저 절정에 이르렀을 뿐인 것이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백성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습니까? 정말 기가 막힐 일입니다. 계속해서 상황을 보면, 이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악한 폭력배들이 그 사람을 끌어내라고 위협하자, 이 노인은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 롯이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롯이 자기 두 딸을 내어줄테니 이런 악을 행치 말라고 사람들을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까지(손님의 아내까지) 내어줄테니 이런 악을 행치 말라고 합니다. 롯의 경우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입니다. 일단 롯이나 이 노인이 한 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십시다. 이 말이 올바른 것입니까? 지금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입니까? 어떤 학자는 롯이나 이 노인이나 동일하게 손님을 보호해야 된다고 하는 절대적인 의무감이 자신의 딸들, 또는 아내를 지켜야 할 의무감을 짓눌러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즉 그릇된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상황이 어떤 사람도 해를 당하지 않고서도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신 이 레위인이 그러한 비참한 성폭행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기 딸이나 이 레위인의 첩이 당하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라는... 그런 어쩔 수 없는 차선책으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변명을 제시하든 이것은 우리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내어주지 말고 끝까지 항거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게 딸과 처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비겁하게 레위인 한명 살리겠다고 딸과 첩을 내어주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모범적으로 보였던 에브라임 노인은 이 한마디로 그가 얼마나 그릇된 판단을 하는 자인가 하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레위인의 행동입니다.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나, 오늘 본문의 경우나 동일하게 결국 손님이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천사가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레위인이 자기 첩을 그들에게 붙들어 내어서 위기를 모면합니다. 여기서 “붙들어 내다”라는 단어는 “아주 강하게 잡아서 이끌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왜 강하게 잡아야 했을까요? 이 여인이 나가기 싫어서 벌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자기 아내를 딱 잡아다가 그들에게 내어주었던 것입니다. 이 한 단어가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비춰줍니다. 두려워 떠는 첩을 자기 험한 꼴 안보겠다고 악한 폭력배들에게 강제로 잡아다가 밖으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의 행동입니다. 이 레위인은 자기 첩을 내어주고, 잠들었습니다.

 

(26)동틀 때에 여인이 그 주인의 우거한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27)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이 첩은 밤새도록 성노리갯감으로 욕을 당한 후 새벽 동이 틀 때 놓아졌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문 앞까지 와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은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첩에게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첩을 내준 다음 위험이 사라지자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그 어떤 후회도, 첩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기브아 거민들의 아주 해괴하고 괴악한 행태에 놀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위험을 대처하는 에브라임 사람과 레위인의 모습을 통해서도 놀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이 사람은 선의의 억울한 피해자이기만 하고, 이 사람은 극악무도한 가해자이기만 한 것이라고, 두부 자르듯이 가를 수 없는 도덕적인 판단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사건에서 해괴망측한 일을 벌인 기브아 거민들이 가장 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희생당한 첩은 순전히 피해자이기만 한 것입니까? 이 첩이 사실은 모든 사건의 발단을 스스로 제공했던 것입니다. 행음으로 일어난 자는 결국 행음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레위인을 구하기 위해 자기 딸과 첩을 내어주겠다고 말한 이 에브라임 노인은 과연 아무 책임이 없습니까? 무엇보다도 자기 추한 꼴 안보겠다고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고 나서 태연히 잠든 이 레위인의 행동은 과연 바람직한 것입니까?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기브아 거민들이 영적, 도덕적으로 부패한 상태가 된 것에는 그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치고 언약백성답게 잘 목양의 사역을 해야 할 레위인들이 제대로 자기 사역을 안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책임은 서로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기브아 거민들만 죽일 놈이라고 때려잡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놓고 총체적인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사회를 보면서,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들의 죄악된 삶을 조명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에브라임 노인이 그들에게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주겠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하는 말이 24절에서 너희 ‘임의로’ 하라고 권유하는데, 그것을 원문으로 보면, “자기 눈에 좋은대로(옳은대로) 행하라”는 말입니다. 계속 사사기 끝부분에서 반복되는 말입니다. 왕이 없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삶을 지속할 때, 결국 이러한 해괴망측한 일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 이스라엘이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바 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브아 거민들만의 죄악으로 보면 안 됩니다. 나중에 20장에 보면 이 기브아 거민들을 베냐민 사람들이 싸고돕니다. 유유상종입니다. 베냐민 사람들도 똑같이 타락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사람들만 징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치하십니다. 이것을 다음 주에 살펴볼 것입니다. 기브아 거민들은 다만 타락의 선두주자로서 절정에 이르렀을 뿐이고, 사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서 이런 타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사명, 출애굽의 은혜, 거룩한 하나님의 엄위의 율법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철저히 무시하면서, 그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이방신과 혼합해서 섬기고, 또 이성 없는 동물처럼 성적방종과 쾌락에 빠져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열국 가운데서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부르시고, 거룩한 나라요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부르셨는데, 그들은 철저하게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고, 이방에도 없는 성적인 타락에 빠져서 가증한 백성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형벌이 무엇입니까? 율법에 보면, 이런 그들을 향한 저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2)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23)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24)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 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25)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26)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도 행하지 말라(27)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28)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29)무릇 이 가증한 일을 하나라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30)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을 지키고 너희 있기 전에 행하던 가증한 풍속을 하나라도 좇음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8:30)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다 멸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이러한 가증한 일들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가증한 행위를 따라가면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성적인 타락에 대해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경고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아니하고 철저히 무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에도 없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전체를 완전히 거의 멸족에 가깝게 죽이셨고, 또 베냐민 지파만 징치하신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도 엄청난 사망자가 나오게 하셔서 모두 징치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엄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다 태워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만 명 가까지 죽이셔서 징치하신 분이 우리가 믿고 섬기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두렵고 떨림으로 살고 있으며, 모든 성적인 범죄와 음란죄에 대해서 얼마나 경각심을 가지고 그 죄와 싸우며 살고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나는 음란죄에 면역력이 있고 자유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아니할 때 반드시 이 정욕죄에 빠지게 됩니다.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25)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27)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1-27)

 

남색이라는 성적인 타락은 결국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우상숭배적인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가 왕이 되어서 우상숭배적인 삶을 사니깐, 자연스럽게 그러한 도덕적인 타락으로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우상숭배를 도덕적 타락(성적방종)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5)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6)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엡 5:5-6)

 

여기서 더러운 자, 탐하는 자라는 말은 앞에 음행죄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음란죄와 우상숭배는 연결되어 있습니까? 전에 하나님을 두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것은 곧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허무해서 뭔가 판타시하고 뭔가 말초신경을 자극할만한 그런 짜릿한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성적 쾌락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목표는 성적 쾌락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성적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쁜 여자와 결혼해야 하고, 예쁜 여자를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잡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을 파헤쳐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쾌락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돈과 쾌락을 더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남색의 죄를 안 범했으니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나는 당장 뚜렷하게 보이는 음란죄가 없으니깐 나는 괜찮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1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들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무슨 오늘 본문처럼 그런 가증한 일을 행한 적이 있었습니까? 도리어 그들이 얼마나 주일예배 잘 드리고, 헌금 꼬박꼬박 잘하고, 맡은 직분(교사, 집사, 목사)을 잘 감당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다 형식이었고, 마당만 밟을 뿐이고, 그들 마음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에 그들에게 이런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없다 하더라도 결국은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들이 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우상숭배적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것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그분이 왕으로 계십니까? 그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하루하루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안 계시면, 결국 우리는 자기를 위해 살아가게 되고, 그것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은 것입니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뚜렷한 음란죄가 없어도 결국에는 은밀하게 음란죄에 탐닉하는 데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을 때,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데, 그 육체의 열매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 바로 이 음란죄입니다.

 

(19)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갈 5:19)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지 않을 때 우리는 음란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정말 주님이 내 안에 왕으로 계십니까? 아니면 내 정욕과 욕심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이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도덕적인 부패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음란죄와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하면 이전형편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져버리고 자기 정욕을 따라 살았을 때, 그들은 이방사람들보다 더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역사상 가장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습니다.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 5:1-2)

 

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 음행을 행한 자를 물리치지 아니했습니까? 자기들도 그 정도는 아니어도 비슷한 음란죄에 빠져 있기 때문에 통한히 여기지 아니한 것입니다.

 

“(18)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19)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20)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22)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18-22)

 

하나님께 택함 받지 못한 자는 바로 이러한 성적인 타락에 반복해서 빠지면서 이전 형편보다 더욱 심해지고, 나중에는 탐욕에 연단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데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이렇게 되지 않도록 자기를 살피고 두려움으로 이 죄를 피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싸워 이길 것입니까? 첫 번째로 이 음란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시고 미워하시는지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4)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27)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9)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7-30)

 

성경은 반복적으로 이 성범죄가 얼마나 큰 죄이고 하나님의 크신 진노와 심판을 불러일으키는 죄인지를 자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수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음행죄의 결과에 대해 깊이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15)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6)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17)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18)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5-20)

 

바울이 우리를 책망할 때 하는 말이 “너희가 음란죄를 범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다. 거룩하게 사는 자가 그리스도의 지체다. 너희가 어떻게 살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것인지 창기의 지체가 될 것인지 스스로 택해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선언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지체인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 피로 값 주고 자신의 소유로 사셨다는 것을 먼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체가 되었다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받았는데도 그러한 자기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죄 가운데 살았던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란죄는 결국 중독성이 강한 죄입니다. 중독은 오직 중독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깊이 깨닫고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면 알수록, 주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지고한 쾌락을 누리면 누릴수록, 자연스럽게 그 죄를 싫어하며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중독되어야만 음란죄에 대한 중독을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왕이요 주로 내 마음에 모시고 살 때 우리는 능히 이 음란죄를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착념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착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이 음란죄와 싸우며 살면서 거룩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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