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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3:1-5
성경본문내용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2)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강설날짜 2014-02-26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니


말씀:고린도후서 3:1-5

 

오늘부터 고린도후서 3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본장은 1:12-7:16절까지 이어지는 바울 자기 자신의 사도직 곧 자신의 사도권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일련의 기사의 연속 부분입니다. 1-5절 말씀에서 바울은 사도행전에서와 같이 자신의 사도됨을 직설적으로 변호하지 않고 자신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성도가 된 그 자체가 바로 자신의 사도권을 입증하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1-5). 그리고 6-11절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며, 그에 따르는 영광이 옛 언약의 직분이 가진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18절 말씀에서는 출애굽기 34:29-35절 말씀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사도권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의문에 속한 천거서를 요구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1-5절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어떻게 자신의 사도됨을 증거 하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제일 먼저 무엇을 봅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외모를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의 능력이나 학벌이나 직장, 배경 등을 보면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평가 할 때 그 사람의 중심이 어떤지는 별로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증거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17절 말씀을 보면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고 합니다. 또한 야고보서 2:9절 말씀에 보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또 베드로전서 3:3-4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증거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이미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사가 늘 어디에 있습니까?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외모란 단지 겉모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능력과 조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려면 자신이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자녀를 결혼시킬 때에 보면 압니다. 외적인 조건은 좋은데 믿음이 없는 사람과 외적인 조건은 별로인데 믿음이 있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사는지가 드러납니다. 이처럼 결혼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선택을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고린도교회도 바로 이런 문제에 부닥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중에 어떤 선생이라는 자들이 고린도교회에 왔습니다. 그들은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서를 들고 왔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조건들을 갖추었다는 사람들이 와서는 바울은 사도도 아니며 추천서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의 말을 듣지 말고 자신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을 버리고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끌리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울의 대적자들의 추천서는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본문에서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가장 권위 있는 곳이 어디 입니까? 예루살렘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생들이 가지고 왔다는 그 추천서는 아마도 예루살렘교회의 추천서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24절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자신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이름을 팔며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말로 괴롭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라고 했습니다(행 15:24). 또한 사도행전 15:1절 말씀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는데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볼 때 이들은 예루살렘교회에서 보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예루살렘교회에서 왔다고 하면서 추천서를 가지고 다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그들이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말 하니까 그들의 말에 미혹이 되어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곧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외모에 끌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당시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은 외모에 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4:21-24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옛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속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고 그 속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거나 추천서를 보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을 합니다. 이는 너희가 우리의 편지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다른 사람들의 추천서를 들고 와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지만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됨의 증거는 바로 고린도교회 성도들 바로 너희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복음을 모르고 이방의 풍습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아 살다가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새 사람을 입게 되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고린도지역은 우리가 고린도전서에서 보았듯이 죄악이 만연한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타락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이 가득 찬 곳이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온갖 죄악에 물든 자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서 주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공부하면서 보았듯이 고린도교회 안에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생명의 냄새를 맡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로,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로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지역에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방향과 목표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그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서 다른 삶의 목표와 방향을 가지게 된 것을 마치 주변의 사람들이 편지를 보듯이 읽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입니다. 우리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함께 장단을 맞추고 살면 그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 다 썩어지고 더렵혀지고 쇠하여지고 멸망할 것이라고 하면서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면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기로 작정된 자들은 우리의 이러한 말이 생명의 냄새로 여겨질 것입니다. 반대로 멸망 받기로 작정되어 있는 자는 우리의 이러한 말이 사망의 냄새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래서 배척할 것입니다. 성도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날 것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날 것입니다. 교회란 이처럼 모든 사람을 좋게 하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오직 생명을 얻을 자들에게만 생명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지 못할 자들에게서는 사망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고 합니다. 곧 사망의 냄새를 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과 고난이 따른다는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복을 받고 죽어서도 좋은 곳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망의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가짜 향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장차 멸망할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곳에서 더 안정되고 발전된 삶을 축복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넓은 문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말씀대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 홍수 때와 같이 단 한 가정이 구원받고 나머지는 다 심판을 받을지라도 그대로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한 가정도 제대로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그 성은 유황불로 불살라버린 것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이 그 시대에 사망의 냄새로 난 것입니다. 멸망당하는 자들이 생명의 냄새를 맡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종말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고 주의 택한 자들이 다 돌아오게 되면 역사의 막을 내려버리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생명의 냄새와 사망의 냄새가 동시에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고, 믿으며, 그렇게 말하고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인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을 듣고서 믿는 자들이 나왔다는 것이 바로 바울이 사도임을 증거 하는 편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추천서는 먹으로 쓴 것이지만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믿는 자들이 나온 것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먹으로 쓴 추천서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된 것을 다시 한번 대비하면서 돌비와 마음의 심비에 새긴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3b). 여기서 돌비에 새긴 것은 율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돌비에 새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 언약을 주실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먹으로 쓴 추천서는 그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기 자신들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합니다. 그들은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의 심비에 새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돌비에 새긴 것으로는 안 되고 마음의 심비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돌비에 당신의 법을 새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지만 그 돌비에 새긴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을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 돌비에 새긴 것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었고, 도리어 정죄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돌비에 문자로 기록된 것은 죽이는 것이며,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영으로 증거 하여 마음에 새겨지는 영으로 된 것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돌비에 율법을 새겨서 주기 전에 이미 인간의 마음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예레미야 17:1-2절을 보면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그들의 자녀가 높은 메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고 했습니다. 유다의 죄가 금강석 끝 철필로 그들의 마음판과 단 뿔에 새겨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돌판에 쓴 율법을 받아보니 이미 마음 판에 죄가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우상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를 몰라보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 주인이 세상에 왔건만 주인을 오히려 싫어하여 배척하고 죽여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이미 사람의 마음에 죄가 금강석 철필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증거가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거나 개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에는 인간을 교육시키고 환경을 바꾸면 선해 질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 판에 죄가 새겨져 있는 인간을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3:23절 말씀에 보면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바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 한다는 것은 사람의 능력과 실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증거 하여 믿는 자가 나왔다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임이 증거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믿게 된 것은 새 언약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확신과 만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자신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 같은 죄인이 복음을 듣게 되고 믿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곧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믿으며,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까? 죄악된 우리 인생들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지 뿌리칠 수 없이 끝까지 따라붙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의입니다. 죄악된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옳다고, 선하다고 여기며, 잘 해 오던 일조차도 다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실제로 복음을 듣는다고 하는 자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은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입니다.

 

4-5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확신과 만족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 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모든 만족이 우리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셔서 된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만족은 결코 채워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면 어떤 형편에 있든지 자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그리스도가 강하게 되심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자족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나의 외적인 만족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오늘도 자기 백성을 간섭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시고 도장을 찍어주셔서 빈틈없이 인도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만족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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