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3 08:47

[레위기 1장] 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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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레 1:3-17
성경본문내용 (3)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4)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5)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6)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7)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8)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9)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10)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11)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12)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13)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14)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15)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16)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17)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강설날짜 2014-04-02
레위기 2강

번제

말씀 : 레 1:3-17

우리는 지난주에 희생제사의 예물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희생제사를 통해서 죄사함의 은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와 더불어서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여 드리는 감사와 헌신의 예배를 드렸음을 배웠습니다. 모든 희생제사에는 감사와 속죄의 의미가 함께 있는데, 그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속죄가 우선 희생제사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그 은혜 위에 감사와 헌신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배울 4가지의 모든 희생제사에 있어서 핵심 포인트는 속죄에 있는 것입니다. 번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번제에 속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번제나 화목제, 소제의 경우에는 속죄의 의미가 전혀 없을 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속죄를 뺀 희생제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레위기 1장 2-4절에서 잘 나타납니다. 우선 2절을 보십시오.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 1:2)

하나님은 제사를 드릴 때는 아무 동물이나 드릴 것이 아니라 반드시 소, 양, 염소, 비둘기중의 하나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맛이 까다로워서 그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배려하신 것입니다. 희생제사는 동물을 선물로 주는 의식이 아니라, 동물을 죽이는 의식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은 첫 번째로 반드시 잡을 때 공격성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열거된 동물들은 죽을 때 공격성이 없는 동물들입니다. 그리고 동일시를 위해서는 사람과 친숙하고 사람이 기를 수 있는 동물이어야 합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는 모두 집에서 기르는 가축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지속적으로 속죄함을 받아야 하므로 구하기가 쉬워야 하는데, 이 동물들 모두 구하기가 쉽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3)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4)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3-4)

여기 보면 다섯 가지 제사 중의 첫 번째인 번제의 규례가 나옵니다. 번제는 ‘올라’라는 단어로 “올려드린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그 이름처럼 다른 제사와는 달리 제물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불태워 올려드립니다. 그래서 소위 ‘올림’제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이 번제의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것은 속죄입니다. 속죄라는 단어의 원어는 ‘카파르’인데, 그 뜻은 ‘덮는다, (죄를) 속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번제의 일차적인 목적은 죄를 속하는 것이고, 속죄의 개념을 빠트린 번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은 번제가 속죄가 되도록 하기 위해 지켜져야 할 두 가지 필수요건인 흠 없는 수컷으로 드려야 한다는 점과 안수해야만 한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흠 없는 제물은 일반적으로 최상의 제물을 의미하며, 암컷보다 수컷이 더 비쌌기 때문에 흠 없는 수컷은 흠 없는 제물 중에서도 최상급의 제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흠 없는 수컷은 단순히 최상의 제물로 드려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 없으시고 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9)

죄인은 다른 사람의 죗값을 지불할 자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중보자는 반드시 죄가 없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번제는 속죄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흠 없는 수컷으로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속죄가 되기 위하여 안수해야만 합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

‘안수’라는 단어는 원어로 보면 ‘싸마크’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단순히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있는 힘껏 누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예배자는 자신의 온 몸을 그 소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수하지 않으면 그냥 동물이지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안수를 통해서만 이 동물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희생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수는 대리속죄를 위한 죄의 전가이며, 이 제물이 자신을 대표하고 자신과 동일시되었음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것을 부정합니다만, 그러나 구약의 용례를 살펴보면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9)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10)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들에게 안수케 한 후에”(민 8:9-10)

장자재앙이 내려질 때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사망의 형벌을 면했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초태생을 자신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출 13:2). 그리고 모세는 그 장자들 중의 몇 사람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도록 했습니다(출 24:5).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시내산언약을 맺는 과정에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우상숭배를 행했고, 회개치 아니한 자들을 처단하는데 레위인들이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레위인들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그들을 자신의 것으로 거룩히 구별하여 취하신 것입니다. 

”(18)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레 8:16-18)

바로 그러한 대리의 의미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중들이 모여서 레위인들에게 안수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을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하여 드린 것은 곧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신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대리의 의미에 포함되어 있는 대표 및 동일시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수의 대리의 개념에는 죄의 전가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안수할 때 예배자는 손으로 제물의 머리를 누르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면 그 죄가 제물에게 전가되어 이제 제물이 대신 형벌 받음으로 자신의 죄 값을 다 치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수는 한마디로 대리의 의미가 있는데, 여기에 동일시(대표)의 의미도, 그리고 죄의 전가의 의미도 함께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리, 동일시, 죄의 전가... 이 모든 개념은 따로따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속죄사건의 다양한 측면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한 대속의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이러한 의미의 안수 받으셨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이 바로 구약의 안수식의 성취인 것입니다. 세례 받은 즉시로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공생애는 한마디로 하면 세상 죄를 지고 형벌의 장소로 나아가는 희생제물로서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백성들이 제물에 안수한 것은 바로 대리, 동일시, 죄의 전가의 의미가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안수 의식이 모든 희생제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희생제사는 기본적으로 속죄의 개념을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죄의 강조점이나 그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므로 번제를 드릴 때 예배자는 소의 머리에 안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철저히 자각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고, 안수의 의식을 통해 자신의 죄를 이 제물이 대신 짊어졌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물이 희생당함으로써 자신의 죄값이 다 치루어졌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자의 생각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서 그 제물이 형벌당해 죽을 때에 자기 자신도 또한 함께 형벌당해 죽는 동일시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이 희생제사의 대부분의 의식절차를 예배자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잘 나타납니다.

1. 희생제사는 제물의 죽음 안에서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이다

5절을 보십시오.

“(5)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레 1:5)

예배자 자신이 기른 소를 가져다가 제단 앞에서 잡아야 합니다. 칼로 소의 목을 쳐서 피를 흘려 죽게 합니다. 그때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서 단 사면에 뿌립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데, 그 피가 단 사면에 부어짐을 통해서 제물이 자신을 대신하여 온전히 죽임 당했음을 나타냅니다. 곧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이 의식이 모든 희생제사에 있다는 것은 모든 희생제사에, 심지어는 화목제에도 속죄의 개념이 있음을 또한 증거합니다. 이렇게 제사장이 피를 단에 뿌린 후에 6절을 보시면...

(6)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7)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예배자는 소의 시체를 성막 가장자리로 끌고 와서 거기서 본인이 직접 가죽을 벗기고 조각을 냅니다. 그 동안 제사장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는 일을 합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참 쉽지만, 제물을 잡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조각내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끔찍한 절차를 예배자 본인이 다 합니다. 짐승을 길러 본 사람은 누구나 그 동물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할 때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살 떨리는 것인지 압니다. 이 모든 과정을 본인이 직접 하도록 한 것은 희생제사를 드리는 예배자로 하여금 그 희생 제물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감정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니 여러분이 지금 자신이 애지중지 기른 동물을 잡아서 각을 뜬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한 상황입니까? 우리가 레위기를 읽어갈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제사에 대한 규례를 읽어가기가 쉽고, 때로는 지루하게 여기면서 읽기 쉽습니다. 성경 1독을 시작해도 많은 사람들이 레위기 1장에서 그만 포기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본문의 상황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생하게 읽어간다면 충격적인 광경으로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배자는 떨리는 손으로 자기가 애지중지 키운 소의 목을 쳐서 죽입니다. 소는 찔리는 순간 움찔하면서 고통으로 울부짖고 피를 쏟아내면서 신음하며 죽어갑니다. 그리고 싸늘하게 죽어있는 소의 시체를 가져다가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조각냅니다. 만일 가축을 죽이고 도축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 경험은 아마도 예배자에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경험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칼을 들고 소의 시체를 파헤치면서 온 몸과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예배자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속전으로 바쳐지는 이 절차를 본인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예배자는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깊이 깨닫고 진심으로 참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소는 24조각을, 양과 염소는 12조각을 내는데, 유대전승에 의하면 그렇고 조각낼 때 예배자가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머리를 자르면서 “하나님, 내 교만을 자르나이다.” 가슴을 도려내면서, “죄악을 품었던 내 가슴을 도려내나이다.” 다리를 자르면서 “악을 향해 달려갔던 내 다리를 자르나이다.” 엉덩이를 자르면서, “불의와 오만의 자리에 앉았던 내 엉덩이를 자르나이다.” 내장을 물로 닦으면서, “내 속의 시기질투 미움을 닦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 실제로 이렇게 고백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제물을 조각낼 때의 예배자의 마음과 자세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조각난 제물은 이제 제사장 손에 넘겨져서 불에 태워집니다.

“(8)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9)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8-9)

가죽을 제외한 모든 조각들과 씻은 내장들이 남김없이 불에 살라집니다. 여기서의 불은 하나님의 소멸하시는 불을 상징하며(신 4:24), 예배자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의 형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물이 죽임당하고 조각난 채 불태움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예배자는 본인이 죽고 조각나고 불태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배자는 거기서 제물과 함께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죄의 대가를 다 치르고 형벌받아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지금 살아있는 자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대속의 은혜로 새로이 덤으로 주신, 선물로 주신 새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는 그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한 헌신의 표현을 예물로 하나님께 헌신하여 드리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주에 살펴본 예물의 의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향한 모든 진노를 거두시고 그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의미로 이 희생제물의 냄새를 흠향하십니다.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이것은 마치 옛날에 노아가 홍수심판이 끝나고 방주에서 나와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의 향기를 흠향하시고 근본 죄악된 인간에 대한 진노를 가라앉히시고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에게서 궁극적으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예수님의 희생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충족되었다는 하나님의 만족을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 그리고 심지어는 일평생 싸워가야 할 우리의 죄성까지... 그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예수님께 다 풀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신자가 죄를 지으면 마치 부모가 잘못한 자녀에게 분노하고 때리듯 그렇게 신자를 징계하시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정죄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로 방종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에서 예배자가 제물과 동일시되는 체험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과 동일시되는 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덤덤한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날 위해 죽으셨음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참된 십자가 체험이 아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제물을 잡고 각을 뜨는 것처럼, 십자가 은혜는 그렇게 생생하게 우리에게 체험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자신의 죄가 바로 예수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였음을 깊이 깨닫게 하실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악한지, 그리고 그 죄에 대해 지옥으로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어떠한지를 깊이 깨닫고 참회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면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주시고 새인생을 살게 하신 주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임당하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쏟아 부어짐을 경험하신 것을 생생하게 체험한 신자는 더 이상 계속해서 죄를 고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체험을 통해 신자는 그야말로 옛사람과 단절하고, 이제는 주님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어떠합니까? 십자가를 생각해도 무덤덤하거나 냉냉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 은혜를 잊어버리고 죄를 사랑하며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진정한 참회 없이,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진정한 감사 없이 매주 꼬박꼬박 교회 나오면서 예수님 부르고 십자가 부르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1장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사 1:11-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과의 동일시되는 체험 없이 희생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손에 피가 가득한 삶을 계속 살면서 안식일과 절기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열심히 제사 드려 봤자, 하나님 앞에 가증할 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패하고 죄악된 삶을 고집하면서 십자가 부르고 예수님 부르는 것이 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가증한 예배를 그치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십자가 체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즉 내 옛사람이 죽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만일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산 체험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고 사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죽고 산 체험을 한 사람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죽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1-3)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사망신고한 사람입니다. 죽고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마치 이 땅에 살지 않는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처럼 살아야 하고,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형적은 다 지나가기 때문입니다(고전 7:29-31). 우리는 이 땅에 살아있는 자처럼 세상의 더러운 물욕을 따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더럽고 부정한 세상의 물욕과 욕심을 다 버려야 합니다. 잠간 있다가 불타 없어질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그리스도와 그의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추구하면서 매일매일을 경건에 이르기를 날마다 연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이를 위해서는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한번 죽었으면 끝이 아니라 날마다 죽여야 합니다. 처음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도 십자가 체험으로 되는데, 이후에 남아있는 옛사람의 잔재를 날마다 죽이는 것도 동일한 십자가 체험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십자가의 은혜에 잠겨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은혜 안에서 죽고 사는 체험이 날마다 재현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자의 삶입니다.

지난번에 배운 것처럼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가 성화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성화가 무엇입니까? 성화는 절대로 도덕적인 개선이 아닙니다. 몇 가지 잘못된 행실들을 고치고,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선한행실을 하나 더 하는 것이 성화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성화는 기독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화는 절대로 그러한 도덕적인 개선이 아닙니다. 성화는 오히려 도덕적으로 자기를 개선하려는 내가 죽는 게 성화입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탐심을 따라 사는 나도 죽어야 하지만,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려고 하는 나조차도 죽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해서 기쁘게 해드려야 되겠다고 하는... 여전히 자기 자아가 행위의 중심이 되어 있는 모든 체계와 구조가 깨트려지고 그런 내가 죽어버리는 것이 성화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아가 죽으면, 더 이상 자아는 없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의 나, 주님의 몸된 지체로서 나, 곧 자아가 아닌 교회아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성화입니다. 물론 이렇게 살 때 이전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도의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그 마음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는 변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성화는 날마다의 참된 십자가 체험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체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날마다 이 십자가 은혜 안에서 정과 욕심을 못 박고 주님께 자기 자신을 헌신하여 드리는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신 하나님

마지막으로 양과 염소, 그리고 비둘기 번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0)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11)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12)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13)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10-13)

제물만 다를 뿐이지 다른 모든 부분에서 소의 번제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비둘기로 드릴 경우에는 절차상에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14)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15)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16)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17)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14-17)

비둘기를 번제로 드릴 때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경우와는 다르게, 안수만 예배자가 하고, 그 다음부터는 제사장이 다 하게 됩니다. 제사장은 예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비둘기를 손으로 잡아 머리를 비틀어 죽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단 곁에 흘린 후에 새의 꼬리와 항문, 그리고 똥이 있는 내장부분을 제거한 후에 껍질을 벗기지 않고, 날개 쪽을 약간 찢어서 껍질 채 번제단에 불태워 드립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입니다.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이 드리는 예물인데, 그 크기가 작습니다. 안 그래도 작은데 껍질까지 까버리면 얼마나 작겠습니까? 거기다가 성막 모퉁이에 가서 새를 조각을 내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초라합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의 입장을 난처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서, 번제의 대부분의 과정을 생략하고 비둘기의 껍질을 까지 말고 통째로 드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집권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터부시하거나 무시하거나 무관심하지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더 큰 자비를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재판장이시고,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를 핵심적인 요소로 제시하고 있는 율법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힘 있고 가진 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것을 드림에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배려하시고, 또 소를 드린 경우와 동일하게 향기로운 냄새로 열납하십니다. 번제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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