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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4:13-18
성경본문내용 (13)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15)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18)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강설날짜 2014-04-16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말씀:고린도후서 4:13-18

 

우리는 지난 시간에 7-12절 말씀을 통해서 고난 가운데서도 복음전파에 매진하는 바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를 우리의 질그릇에 가졌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것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 고난 가운데서도 복음전파에 매진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사망이 바울 안에서 역사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있었습니다(12).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13-18절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전파에 매진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구약의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6:10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116:10절 말씀을 보면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16편은 다윗의 노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서 양치는 목동의 지팡이를 왕의 홀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윗은 이 믿음으로 사울왕의 핍박과 같은 많은 고난을 견디어냈으며, 기도와 찬송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뢰곤 하였습니다(시 116:4, 12). 바울 사도는 다윗의 이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도 다윗과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이름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믿는 고로 말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8-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하면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 때문에 현실에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환난과 핍박을 당할 뿐 아니라 죽음조차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죽음도 상관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더나아가 죽음을 반기며 도리어 빨리 죽고자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8절 말씀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하는 자들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며, 질그릇에 보배가 담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2절 말씀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평소에 소망하는 것을 바라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바라본 믿음의 내용은 이 세상의 보이는 것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바라본 믿음의 실상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었다면 죽어도 좋다는 것이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8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의 본향을 생각하면서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았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버렸습니다. 애굽의 모든 금은보화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기를 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거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신약의 사람들이 아니라 구약의 사람들입니다. 흔히 구약은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복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믿음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소망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믿음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한다고 하면 누가 믿으려고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교회가 믿는 고로 말한다고 하면 이런 것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누가 교회로 오겠느냐고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으로 믿음이 없는 소치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믿음을 말하지만 그 믿음의 내용이 눈에 보이는 것과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그 믿음은 엉터리 믿음입니다.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기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고로 말한다’고 하는 것을 바울 사도는 시편 116:10절 말씀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116:15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이 말씀은 심히 곤란을 당하다가 구원받은 경험이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하게 보시기에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하지 아니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내가 살아남는 것이 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위해서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심지어 죽이는 것까지도 정당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진리라고 여기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적자생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더 평화롭게 만들어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는 단절되고 새로운 세계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세상이란 것이 인간이 상상하거나 노력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 해치는 현실에서 다시는 해함과 상함이 없는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말한 것입니다. 이사야 11:6-9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적자생존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해함과 상함이 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까? 사람의 노력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되면 이 세상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그런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지식이 충만한 그 거룩한 산이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이사야 11:1-5절 말씀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온다’는 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고로 말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 보면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시편의 기자만 믿는 고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믿는 고로 말하고 너희도 믿는 자라면 이 말을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믿는 자가 하는 말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14절 말씀을 보면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는 것이 믿는 자의 할 말입니까?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안에 성도가 함께 포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다 그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가 말하는 것이요, 믿는 자의 소망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0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다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살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할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하심에 성도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할 말은 하루라도 빨리 몸을 떠나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가 믿음으로 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믿음의 내용이 과연 이러한 것입니까?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면 믿는 자는 세상에서도 만사 형통하다고 합니다.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은 이미 확보하여 놓았으니 세상에서 믿음으로 복을 받아서 예수를 믿는 것이 이렇게 복을 받는 것이라고 내세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려고 교회로 몰려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귀에서 속고 있는 증거입니다. 결코 믿음으로 말하면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함은’이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나처럼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연약함과 주림과 사형선고를 받은 자처럼, 세상의 찌꺼기 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상관이 없는 것은 믿음의 세계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 앞에 설 영광의 날 곧 부활의 세계가 없다면 믿음으로 사는 자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이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오는 거짓 선생들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안에 들어있는 성도는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그 나라를 사모하며 기다리기 때문에 결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썩어지고 사라지고 없어질 영광이 소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예하여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는 것이며, 이런 은혜가 많은 사람에게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 죽어도 상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죽음을 환영한다고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절 말씀을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쉰다고 합니다. 이는 저희 행한 일이 따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을 위하여 살았는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위하여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늘 보이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하고 생각하고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 장차 불살라 없어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그 해함과 상함이 없는 그 나라를 얼마나 바라보고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 없기에 무엇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16-17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치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이 후패하게 됩니다. 환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가벼운 것입니다. 더 중한 믿음의 세계,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잠시 환난에 넘기시는 것입니다. 그 잠시 받는 환난이 어떤 사람에게는 오랜 세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길어도 70-80년 안에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영광에 비추어 보면 그 환난이란 밤의 한 경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믿음으로 말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로마서 8:18-25절 말씀을 보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영광을 소망하는 자는 현재의 고난을 참고 기다리며 인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영광을 믿음으로 소망하며, 어떤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믿는 고로 말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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