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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5:11-15
성경본문내용 (11)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12)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13)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15)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강설날짜 2014-05-07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말씀:고린도후서 5:11-15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의 소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바울 사도의 소원은 할 수만 있으면 속히 자기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이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오직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데 힘썼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게 될 그 영광을 소망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온 힘을 썼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후서 5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주의 두려우심’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앞의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에 보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만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주의 두려우심’이란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장차 심판의 주로 재림하실 그리스도께 대하여 바울이 가졌던 경건한 두려움, 즉 경외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거하든지 떠나든지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에 힘썼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울 사도가 가졌던 그 두려우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심판의 주로 오실 우리 주님을 경외하며, 거하든지 떠나든지 곧 죽든지 살든지 오직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 말씀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따라 한 주간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셨습니까? 아니면 자기만족과 자기 기쁨을 위해서 사셨습니까? 우리가 장차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오직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두려움을 알지 못하면 주님의 용서와 사랑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주의 두려움을 알겠습니까?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시편 90:7-12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진노 중에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분노와 두려움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의 분노와 두려움을 아는 자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생각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지혜로운 자인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두려움을 바울 사도가 안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장차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우리 주님에 대한 두려움을 알았기 때문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권하고 지금 우리를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다시 보면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복음 전하는 자로 하나님께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양심에 알려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곧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복음이 바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떠난 뒤에 고린도교회에는 거짓 선생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자기를 자랑하며 바울 사도를 비난했습니다. 곧 바울의 사도됨을 부정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을 변개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 사도가 지금 다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2-13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새 번역으로 보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또다시 우리 스스로를 치켜 올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쳤다고 하면 하나님을 두고 미친 것이요,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다고 하면 여러분을 두고 온전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다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곧 유명한 자들의 추천서를 내밀며 자신을 대적하며, 자신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는 거짓 선생들에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할 뿐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5절 말씀에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12:9절 말씀에도 보면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절 말씀에도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또한 고린도후서 4:7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에게만 있음을 증거 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바울 사도가 이처럼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약할 때에 주님의 강하심이 드러나기에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10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약하여 지는 것이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내가 강해지고, 잘 되고, 성공하고자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가 주님을 믿는 표시로 주님의 능력을 내 손에 쥐고서 행사하고 싶은 것입니다. 누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저주를 받는 것이 눈앞에 보이고, 누가 내 말을 들으면 복을 받는 것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속에도 다 들어있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과 저주를 당근과 채찍으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외모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복을 받았고, 누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말을 듣고서 그들에게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들도 역시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다가 잘 못 믿어서 자식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거나, 사업에 실패 했다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마귀에게 매여 일생 동안 죽음의 종노릇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이런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지금도 이런 자들이 아닙니까? 이처럼 일생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는 우리 인생을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2:14-17절 말씀을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으면 안 돼! 실패하면 안 돼! 이것이 두려움인데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이 세상에서 실패하는 것이나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판단은 외모로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실패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였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과 그 은혜를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발로 차 버리는 것이 바로 심판인 것입니다.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죄와 부족을 아는 사람은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왜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권면하는지를 알겠습니까? 우리도 얼마든지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1-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엄중하게 권고하는지 바울 사도는 삼중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와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왜 바울 사도의 말을 버리고 외모를 자랑하는 거짓 선생들에게 끌리는 것입니까? 그들이 사욕을 좇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욕을 좇을 때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울 사도는 무엇을 증거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사도됨을 증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떻게 세상의 영광이 아닌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도 역시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습니다. 율법에 대한 열심히 특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주님을 만나고 나니 배설물에 불과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볼 때는 여전히 저주받아 죽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은 바울의 실력이 아니라 바울을 사랑하셔서 만나주신 주님으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님, 세상에서 아무런 힘도 줄 수 없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강권하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4-15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권한다’는 것은 강제로 권한다는 말인데 난 하주에 보면 ‘끄는 도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여기에 있다 받아가라’는 식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받아갈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권하시는 것입니다. 새 번역에서는 ‘휘어잡는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아 당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힘없이 돌아가신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게 끌리듯이 우리의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사랑입니다.

 

주의 이 사랑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신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멸시함을 받은 십자가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제 자기를 위하여 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직 주를 위하여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주의 사랑에 강권된 자는 왜 자기를 위해 살 수 없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써 커다란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삯이 치러졌습니다. 주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에 강권된 자는 자기를 위해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의 사랑에 강권된 후 구주이실 뿐 아니라 심판주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그도 온전히 성도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 주님의 사랑에 강권되어 그들을 사랑으로 섬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산 자를 위하여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산 자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떠합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주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의 삶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삶이라면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해 살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맛보게 되면 우리는 더욱더 그 사랑을 흠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가운데서 행하게 될 것입니다. 죄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종노릇하는 삶을 그만 두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강권하시는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린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에 강권될 때에 자기의 목숨마저도 기꺼이 주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주님의 사랑에 강권되어 주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헌신한 것입니다. 참으로 바울 사도는 참된 사도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의 강권 하시는 이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그 강권하시는 사랑에 사로잡힌바 되어 온전히 주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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