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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5:18-21
성경본문내용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19)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20)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강설날짜 2014-05-21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말씀:고린도후서 5:18-21

 

지난 시간에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은 육체대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6-17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이란 처음 지어진대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롭게 창조 되어진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 언약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을 육신의 잣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던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나서는 완전히 세상을 보는 관점이 새로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잣대, 즉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과 함께 불살라지기 위하여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7절 말씀을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헛된 영광, 곧 세상의 능력과 세상의 축복이라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다고 합니다. 세상에 지음 받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이 누구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까? 골로새서 1:13-17절 말씀을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나 모든 만물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여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기본인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그런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다 자기를 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죄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죄입니다. 이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다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담의 후손이기에 아담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도, 교회도, 환경도, 이 나라도, 심지어 신도 나를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적그리스도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온 세상이 누구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주를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의 상황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족이고, 친척이고, 이웃이고, 교회고, 신이고 간에 자신의 원수로 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죄악이 관영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하나님은 원수라고 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본질상 이러한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면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이 임하여 자신의 죄를 아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복음입니다.

 

로마서 5:8-1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입니다. 우리가 범죄 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죄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것이기에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나아갈 수조차 없게 된 것입니다. 그저 진노와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한 원수요,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편에서 먼저 화목제물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화목제에 대한 말씀이 출애굽기 20:24-25절 말씀입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4-25).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십계명을 받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때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데 제물을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로 단을 쌓을 때는 정으로 쪼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것은 부정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단을 쌓을 때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말라고 하셨지만 새 언약에서는 화목제물조차 사람이 마련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죽어 있는데 어떻게 스스로 준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요한일서 4:10절 말씀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원수 된 자를 위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신 그 사랑의 확정이 바로 그 아들을 화목제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인 되고 원수 된 자를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제로 보내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물을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는 것은 율법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산에 올라갔습니다. 아들을 잡으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산을 ‘여호와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이레 그러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줄때에 여호와 이레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것은 화목제물이었던 것입니다. 아들을 잡아 바치라는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아픔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그 고통 속에 참여 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 그것도 약속을 받은 자식을 단절시키면 약속이 단절 될 터인데도 절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 극단적인 단절은 하늘과 세상과의 단절입니다. 그 어떤 연결점도 없습니다. 지상에서 하늘로 가는 계단은 없는 것입니다. 그 단절을 자신의 죽음보다 더한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제물을 인간이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에서 짐승으로 화목제물을 드렸지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못됩니다. 짐승의 피로 원수 된 죄인의 죄를 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로 온전하고 완전한 제물이 하나님 편에서 마련되어 진 제물이 바로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다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는데 무엇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는 또한 우리에게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이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신다고 하십니까?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데서 하나님을 찾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화목하게 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이 대신 고난과 채찍을 맞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4-6절 말씀을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3:13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사도들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권면합니다.

 

그러면 그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복음을 증거 한다는 것은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서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말씀드린 하나님과의 원수 된 상태를 역시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며,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 마땅한 자인 것을 증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화목제물의 의미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알게 될 때에 화목제물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결코 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이제는 내가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는 필요 없고 내가 스스로 의로운 행동을 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나선다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러한 짓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율법을 알고 지켰기 때문에 의롭다고 스스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보고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자기 의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함정에 빠지기 쉬운 모습이 바로 이런 바리새인과 같은 의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파당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고린도전서에서 봤듯이 나는 너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를 의롭게 여기려는 본능입니다. 이것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우리의 죄악된 욕구입니다.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를 때는 죄인임을 고백하다가도 돌아서면 또다시 내가 누군데 네가 감히 나를 그렇게 대하느냐며 쌍심지를 켜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화목제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 믿을 때 한 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유일한 화목제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셔야 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요, 참된 음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롭다 함이 있고,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화목제물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 놓으시고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마태복음 26:26-28절 말씀을 보면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요한복음 1:29절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이 소개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잔을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언약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공로를 힘입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 까지 이 복음을 증거 하는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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