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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6:11-13
성경본문내용 (11)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12)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13)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강설날짜 2014-06-11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말씀:고린도후서 6:11-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진정한 하나님의 일군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바울 사도는 진정한 하나님의 일군은 세상의 평가에 마음이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직 영원하신 주님의 평가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고린도후서 6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1-13절 말씀을 보면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입이 열리고 마음이 넓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입이 열렸다’는 말은 숨김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어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모르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바울 사도에 대하여 마음이 좁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녀들에게 이르듯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자녀가 부모에게 보답하듯이 그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기 때문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바울은 부모와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고린도교회가 바울 사도에 대하여 마음이 좁아진 것입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 사도에 대하여 마음이 좁아진 이유는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고 다른 곳으로 간 후에 거짓 선생들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와서 전하는 내용이 바울 사도가 전하는 내용과 다른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 내용은 한 마디로 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전한 내용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만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세상에서도 승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외모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십자가 복음을 증거 하는 바울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선생들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교회 교인은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가 전한 복음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 마음 속에도 외모를 자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누가 더 좋아 보입니까? 설교시간마다 인간의 죄를 이야기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증거 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발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 것이 좋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나서 나의 삶이 만사형통하게 잘 풀리면 그것이 예수 믿는 증거가 분명한 것입니까? 예수 믿고 나서도 여전히 어려움을 당하고, 때로는 믿지 아니할 때보다 더 어려움과 고난이 닥치면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아닌 것입니까? 한때 유행하였고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삼박자 축복에 대해서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입니다. 영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물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복음에 열광하는 것입니까? 왜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떨쳐버리기가 힘든 것입니까? 우리 속에도 그런 욕망이 다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복음을 따라 사는 자의 삶이 어떠하다고 증거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그리스도의 사도요, 셋째 하늘까지 올라갔다 온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4-5절 말씀을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라고 했습니다(고후 6:4-5). 고린도후서 11:23-27절 말씀에도 보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환영할 만하고 영접할 만 한 모습입니까? 아니면 가까이 하기에 너무나 부담이 되는 모습입니까? 솔직히 부담이 되는 모습이 아닙니까? 어떻게 하든지 멀리하고 싶은 모습이 아닙니까? 그래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모습을 보고서 어떻게 저런 자가 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일군이냐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군이라면, 네가 그리스도의 사도라면 능력을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의 유혹은 예수님에게서만이 아니라 바울 사도에게도, 오늘날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다 주겠다고 마귀가 유혹한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종교적인 기적, 세상의 영광에 대한 유혹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광이 좋은데 성경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고 하니 성경을 멀리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들도 멀리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가까이 하고 싶은 것입니까? 십자가와 고난을 자랑하는 자 입니까? 아니면 외모를 자랑하고 육신을 자랑하는 자 입니까?.

 

그러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어느 정도로 거짓 선생들을 가까이 하고 영접하였습니까? 고린도후서 11:19-20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찌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영접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외모를 자랑하고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자고하다고 뺨을 쳤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들을 용납 하는 것입니다. 왜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의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까봐서 두려운 것입니다. 또 그들의 말을 잘 들어서 축복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고린도후서 11:18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고후 11:18). 바울 사도는 육체를 자랑하는 그런 자랑이라면 나는 너희들보다 하나도 못하지 아니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육체를 자랑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21-31절을 보면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울 사도 만큼 엄청난 희생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왜 바울 사도를 멀리하고 거짓 선생들을 영접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울 사도가 세상의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함만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자꾸만 바울 사도에 대하여 마음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받는 자 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자란 무언가 소유가 많은 것을 부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소유가 많은 것을 부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20:35절 말씀을 보면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엇을 주려고 하면 내가 무엇이 있어야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부자가 되어서 많이 구제도 하고 선교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것입니다. 소유란 것이 이상해서 어느 정도 소유하게 되면 점점 더 소유하고 싶은 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답변을 들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13-21절 말씀을 보면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생명이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부자를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 부자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늘 밤에 우리 영혼을 하나님이 도로 찾으시면 그것이 누구 것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란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면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것이 세상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을 잊지 않고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자가 바로 말세에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가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살다보니 복음만으로는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의 종이라는 자들이 와서 바울 사도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라면 세상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힘과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합니까? 오늘 본문 11-13절 말씀을 다시 보면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7:2절 말씀에도 보면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말을 해야 할 정도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의 마음이 복음에 대하여 좁아질 대로 좁아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복음에 대해 좁아졌습니까? 아니면 넓어졌습니까? 복음을 듣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언제 더 마음이 넓어졌습니까? 우리가 복음에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 아닙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도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어떤 방향으로 넓어져야 하는 것입니까? 3-10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했습니다(고후 6:3-10). 바울 사도의 근심이 무슨 근심이었습니까? 교회를 위한 근심과 염려였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근심이었습니다. 이런 근심은 세상의 근심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7:9-10절 말씀처럼 세상의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기에 후회할 것이 없이 회개에 이르게 하여 궁극적으로 기쁜 것이 됩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9-10).

 

예수님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아무 것도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자들에게 부요하게 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가난 하였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였습니다. 무엇으로 부요하게 한 것입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불살라져 없어져 버릴 것이 아니라 영원한 복음으로 부요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이 복음으로 부요하게 하는 일에 마음이 넓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세상에서 볼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생명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36절을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넉넉함이 저와 여러분에게 넘쳐서 우리의 마음이 더욱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복음을 날마다 더 깊이 알아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더욱 넓어져서 바울과 같이 복음을 인하여 고난 받는 자들을 존중하며 귀히 여기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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