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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레몬서 1:4-10

2007년 빌레몬서 공부
                                                             믿음의 교제
말씀:빌레몬서 1:4-10

 

세상은 점점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교제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교제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교제를 인간관계 속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간의 교제는 이런 일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예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요 강의에서 진정한 친교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친교란 성령 안에서의 친교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믿음의 교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날 교회에 문제가 많고 회복되어야 할 것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믿음의 교제가 시급히 회복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는 농부, 예수님은 포도나무, 성도는 그 가지라고 합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붙어 있지 아니하면 말라지고 버려져서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가지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가지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란 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러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인하여 어떤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환경에서 나오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미워한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우신 것을 알고 믿는 자는 세상의 원리와는 반대이기에 미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로 인하여 믿는 자는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열매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는 구호나 마음을 굳힌 의지적 결단이 아니라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가지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이 성령의 열매들인데 그 열매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를 빌레몬서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빌레몬서를 보면서 믿음의 교제와 그로인한 열매들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인사말에서 감옥에 있는 바울사도가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혜의 결과가 평강인데 감옥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을 누리면서 믿음의 형제들에게도 그러한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인한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은 빌레몬서를 직접 받는 빌레몬과 바울이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과연 이러한 열매들이 있는가를 점검하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열매가 없다면, 농부가 열매 없는 빈 들판을 바라보는 그 안타까움보다 더한 안타까움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4절을 보면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 고백에 보면 사도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위해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의 제목 속에 늘 빌레몬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빌레몬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까? 5절을 보면 바울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하고 오래 있지 못하고 떠나 왔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소식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믿음과 사랑, 이것은 늘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노라고 하면서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한 것입니다. 빌레몬은 노예를 거느리고 살만큼 부자였습니다.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신분적 차등이 많았기에 개인의 노력과 능력보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많이 물려받아서 부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재산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당대에 다 털어 먹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부자 삼대 가기 힘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이 부자로 있다는 것은 그가 믿음이 성숙한 사람일 뿐 아니라 재산 관리도 잘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연보하는 삶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7절에서 보면, 바울 사도는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하여 여러 성도가 평안함을 얻고 바울 자신도 빌레몬의 사랑으로 인하여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 성도가 평안함을 얻었다는 것은 가난한 성도들이 여러 가지 생활고에서 도움을 받아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단지 말로만 위로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들의 어려움을 해결하여 준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주 예수와 성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들이 더 풍성하게 되기를 바울이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원은 바울만의 소원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6절을 보면 바울은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교제로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교제가 풍성할수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을 더욱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을 알수록 믿음의 교제가 풍성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교제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신령한 복들입니다. 이러한 복들을 알아가는 것이 믿음의 교제입니다. 이런 교제를 인하여 모든 것이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물질로도 형제를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교제가 힘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우리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기를 나는 빕니다”고 했습니다. 표준 새 번역에서는 “그대가 우리와 더불어 누리는 믿음의 사귐이 효력을 내어서,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갈 때에 우리가 받게 되는 복이 무엇인지를 그대가 충분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했습니다. 개역 판 성경보다는 내용이 좀더 분명합니다. 성도의 교제란 믿음의 교제입니다. 믿음의 교제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이 무엇인지를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바울과 부자인 빌레몬의 교제나 바울과 노예인 오네시모의 교제가 나중에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교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분과 지위를 초월할 수 있는 믿음의 교제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하여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믿음을 통한 참된 교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가운데 서로 사랑하는 역사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증시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8절부터 사도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신이 편지를 쓴 목적을 본격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8절에서 ‘이러므로’라고 시작합니다. 즉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빌레몬이 복음을 받아 서로 믿음의 교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도로서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인하여 간구한다고 합니다.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명령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겠습니까? 간구하는 것이 효과적이겠습니까? 세상은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부드럽게 나가고 부탁하는 식으로 하면 만만하게 보고서 명령을 잘 듣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믿음과 사랑의 교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여도 그 부탁보다 더 많이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21). 이렇게 함은 어떤 일이라도 억지로 하지 아니하고 자원함으로 하게하려는 것입니다(14).

 

9절을 보면 바울은 사랑을 인하여 명령하지 아니하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나이 많음과 감옥에 있음을 이야기 하면서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구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도 안에 있는 믿음의 교제입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보고서 얼마든지 바울이 명령할 수 있지만 오히려 사랑을 인하여 간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그 어떤 능력을 행하여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관계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회로서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며, 하나의 도구입니다. 생사여탈권이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형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복음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곧 이런 것이 믿음의 교제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교제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과연 믿음과 사랑의 교제가 있습니까? 같은 은혜를 받았다면, 같은 주를 섬긴다면, 같은 성령을 받았다면 바울과 빌레몬, 바울과 오네시모, 나중에는 빌레몬과 오네시모와의 관계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의 열매가 나올 것입니다. 주인이든 노예이든 간에 은혜를 입은 자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살지 못하는 자임을 아는 사람은 믿음의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몇 가지 교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2:42절에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제는 사도의 가르침으로 교제하는 교제였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으로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서로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24절에 보면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로마 교회가 바울의 복음 전하는 일에 물질로 함께 하는 것을 교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한 것들도 역시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5절에 보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 안에서 교제함을 인하여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1절에 보면 성령의 교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9절에서는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했습니다. 근원적인 교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심으로 주님과 교제케 하십니다. 이 신실한 하나님의 교제케 하심으로 인하여 주어진 그 놀라운 복들을 알면 알수록 더욱 믿음의 교제가 풍성하여 질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를 주셔서 오늘 우리 안에서도 이러한 믿음의 교제가 풍성하여 지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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