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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1:15-17

2008년 골로새서 공부
                                                             그분을 위하여
말씀:골로새서 1:15-17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소요리문답 제1문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저 이 땅에 태어났으니 보이는 세상의 풍습에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자기 마음과 육체의 원하는 바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현실이 전부인양 그렇게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얻은 것을 성경은 썩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9:24-27절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육체미를 자랑하기 위하여 온갖 스포츠가 발달하였습니다. 그들이 절제하며 열심히 운동하여 면류관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은 썩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한 종류는 썩을 것을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이고, 한 종류는 썩지 아니할 것을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중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썩을 것에 위해 달려가는 사람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심고 있습니까?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심고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심든지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도 거두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거두게 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돈이나 권세나 명예를 원하면 그런 것을 거둘 수가 있지만 그런데 그런 것은 썩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둡니다.

 

그러면 썩지 아니할 나라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골로새서 1:12절을 보면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기업을 얻은 성도는 썩지 아니할 기업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골로새서 1:13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만이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을 구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고 오직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9절을 보면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사람에게 들어와야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지혜서입니다. 지혜가 천지를 창조하였고, 이 지혜가 소리를 내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지혜는 결코 사람이 가질 수가 없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스스로 활동하여 사람에게 들어와야 참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8:1절을 보면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부릅니다. 잠언 8:22-31절을 보면 이 지혜는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이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시는 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요한복음 1장에서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1-5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지혜요, 말씀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누가 창조하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들이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 안에 생명의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절에 이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이 사람의 빛인데 이 빛이 사람에게 비추어지는데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속에 참된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혜도 없고 말씀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기도하는 내용이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들은 그 복음 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채워져야 신령한 복과 그 세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신령한 지혜를 가지고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창조가 누구를 위하여 창조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이 범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 한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창 3:19). 아담이 곧 흙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낳은 자식은 아담의 형상입니다. 창세기 5:3절을 보면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아담의 형상이기에 천년을 가까이 살아도 죽었더라는 것입니다. 즉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은 흙에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흙에 속하였다는 것은 땅에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땅에 속하였다는 것은 즉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흙에서 태어나서 흙에 속한 것을 먹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전부인양 알고 살기에 오직 땅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하늘에 속하신 분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두가 아담의 형상이기에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사람만 알아보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5절을 보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사람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쳐두고 하나님을 논하는 것은 다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9-11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자신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 신이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3-6절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7절에 보면 우리는 질그릇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흙으로 된 그릇인데 이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진 것입니다. 그 보배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제 소속이 달라진 것입니다. 전에는 흙에 속한 형상만 입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두운데 빛이 비취라고 하신 그 창조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실체로 들어나게 되는 날은 부활의 날입니다.

 

고린도전서 15:45-49절을 보면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형상은 아들의 형상입니다. 로마서 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봤듯이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런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도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면 어떻게 피조물이 피조물을 창조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먼저 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16-17절을 보면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다 예수님에게서 창조되고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다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라고 하는 것도 다 예수님이 창조하셨고 또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한 것입니다. 만물이 유지되는 것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3절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고, 예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붙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믿습니까? 잘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 잘 믿어지지가 않는가하면 세상 만물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이 천지 만물의 창조가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예수님을 위하여 지어진 것인데 이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만물의 주인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말씀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다 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늘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까?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까?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상한 말로 들립니까? 구원받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받는 자는 주의 긍휼이 얼마나 큰지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을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의 풍성함을 찬양하는 자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평생 자기만 위하여 살다가 지옥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9:11-13절에 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복중에 있을 때에 그들이 아직 나지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바로 왕을 강퍅케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어떤 그릇이든지 만들 권한이 있습니다. 로마서 9:20-21절에 보면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1:36절에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기에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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