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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1:21-23

2008년 골로새서 공부
                                                        터 위에 굳게 서서
말씀:골로새서 1:21-2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거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21절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무슨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마음으로 원수가 되어있기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있다고 합니다. 골로새 지역이 이방인의 지역이기에 멀리 떠나 있다는 표현을 하지만 그러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롬3:9). 죄 아래 있고 죄 아래 태어났기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성경 말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1:16절을 보면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온 우주만물의 창조의 근원이시며, 유지자시며, 주관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온 세상 만물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곧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비밀을 세상은 알 수가 없고 오직 교회만 안다고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우리 자신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다 천지창조의 중심이며, 만물을 그리스도로 통일하시는 그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기에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이렇게 사셨는가 하는 말입니다. 제 자신의 지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볼 때도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살기보다 내 마음과 육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하면서 살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로는 예수님이 주이심을 고백하지만 실제 삶은 내가 주인이 되어 주인노릇을 한 것입니다.

 

잠언서 30:21-23절을 보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서너 가지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견딜 수 없는 것이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견딜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이 주인 되고 계집종이 주모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마가복음 12: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포도원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비유의 주인처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자신들의 잘 못을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주인의 아들이신데 예수님을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편 118:23절에 보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2:10-12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저희가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버려두고 가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고 해서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인간이 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지를 밝히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으로 원수가 되어있기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있다는 것이 이런 모습입니다.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인줄 알고 살뿐 아니라 온 세상이 자기가 주인인줄 알고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증거를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야고보서 4:4절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중에 싸움과 다툼과 요란함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우리 지체 가운데서 나오는 정욕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 정욕이란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있다는 것을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간에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습이 세상의 중심을 자기에게 두고 사는 것과 또한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모습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있는 것이며, 악한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이 어떻게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화목하게 될 수가 있습니까? 22절을 보면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역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버렸는데, 도리어 그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화목의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20절에서는 십자가의 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죄가 가장 궁극적으로 드러나는 그 십자가 사건이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의 현장이 된다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18-25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으로 원수가 되어 악한 행실을 할 수밖에 없던 자들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된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5:14-17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신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기를 위하여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집을 부리며 나를 위하여 살려고 하여도 가만히 두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을 어떻게 다루시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5:18-21절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신 것입니다. 그 화목이란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피로 이루어진 비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이 함께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인 것입니다.

 

시편 85편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의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 행하며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셔서 야곱의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은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고 저의 모든 죄를 덮으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달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구원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면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 방식입니다. 진리와 의대로 하면 심판을 해야 하는데 그 심판의 장소에서 긍휼과 화평이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22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또한 원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았다는 유대인들은 율법이 있고 할례와 안식일이 있다고 그래서 이방인과 다르다고 여겼습니다. 율법을 통하여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하는 것인데도 자기들은 이방인들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되어 있었지만 이 둘을 십자가의 피로 한 새 사람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한 몸을 만들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한 복음의 내용이며 터가 됩니다.

 

이렇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22절에 나옵니다. 골로새서 1:22절을 보면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서려면 어디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의 육체의 죽음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 안에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이며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터를 흔들려고 하는 자들이 골로새 교회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23절에서 바울사도는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듣고 믿는 복음이 바른 복음임을 전하면서 흔들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은 복음의 풍성함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온 우주적인 내용으로 선포하면서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이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23). 

 

그러면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너희가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소망이란 1:5절에 하늘에 쌓아둔 소망입니다. 땅에 쌓아둘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지금도 성도들이 무엇에 흔들리는가 하면 하늘에 간직된 소망이 아니라 땅에 마음을 둔 소망 때문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가? 그러나 이런 흔들림 속에서 무엇이 흔들리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버리고 자기의 의로운 행위를 챙기기 위해서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증거 한 터란 한 가지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일조차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1:6절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굳게 서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흔들리지 말며, 복음의 일군으로 충성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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