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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3:5-11

2008년 골로새서 공부
                                                        새 사람을 입었으니
말씀:골로새서 3:5-11

 

지난주에 우리는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땅에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기에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면서 사는 것이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과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엡1장).

 

그러면 과연 내가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땅의 것을 찾는가, 아니면 위엣 것을 찾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는 다니는데 생각하는 것과 삶의 방향과 목표가 오직 땅의 것 만이라면 그 사람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전혀 땅의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하늘의 것만 생각하고 하늘의 것만 사모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됩니까? 과연 우리가 그러합니까?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계속하여 땅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런데도 왜 땅의 것은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거듭나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내용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곧 어떻게 위엣 것을 찾는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다시 살리심을 받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9-10절에 보면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이제는 새 사람을 입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이미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미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전과 지금이 있는 것입니다. 전과 지금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라고 하면 반드시 ‘내가 전에는 이러이러하였는데 지금은 이렇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과 지금이 없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5-6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전에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좇던 자들이었습니다. 곧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죄 가운데서 살면서 이런 것이 죄라는 것도 모르고 그저 당연하게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골로새 교회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문제들이 결국은 탐욕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음란이나 부정, 사욕, 악한 정욕과 같은 성적인 탐욕만이 아니라 지금 세계적인 경제문제도 탐욕으로 야기된 것입니다. 전쟁과 군비경쟁도 탐욕으로 야기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명예와 권력에 대한 탐욕도 다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18-23절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임한다고 합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곧 우상 숭배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먼저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그대로 내버려 두시면 어떻게 됩니까? 로마서 1:24-32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5-6절을 확대한 것이 이런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란 이런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이런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새 사람을 입게 하셔서 간섭하여 나서시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죄악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의 욕망을 채울까만 생각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서로 옳다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세상의 사람들을 욕할 것은 못되는 것입니다. 그들과 똑같은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별하셔서 새 사람을 입혀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새 사람을 입고 보니 그런 것들이 죄인 줄 드디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더러운 욕망과 탐욕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5a절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사지백체만 우리 몸의 지체가 아니라 우리의 탐심들이 우리의 지체처럼 들어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지체들을 어떻게 해야 죽이는 것입니까? 8절을 보면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지체를 죽인다는 것은 다른 말로 벗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고 하는데,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고 합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고 벗어버리는 일에 먼저 말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9절에서도 거짓말을 말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또 말이란 이상해서 마음에 가만히 있는 것들을 말로서 격동을 시킵니다. 마치 말이 뇌관과 같이 마음의 탐욕을 터뜨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6절을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다시 종합해서 말씀하는 에베소서 5:1-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새 사람을 입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사랑을 입었다’고 합니다. 사랑을 입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입었기에 너희도 그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전과 지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이 다 날아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의 것이 더 이상 주장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영역에 들어온 것이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전과 지금을 표현합니다. 전에는 죽었던 자이고 이제는 산 자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옛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새 사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 여전히 옛 사람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 이 권면을 하고 골로새 교회에도 권면을 하고 오늘날 우리도 이 말씀을 읽고 보면서 권면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이런 책망을 받는 것이 비록 듣기에는 괴로울 지라도 이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빛으로 나타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3절을 다시 보면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의 책망을 달게 받을 수가 있다면 그것은 빛으로 드러납니다. 말씀의 책망이 싫으면 아직도 어둠에 속하여 어두움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엡베소서 5:14절에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의 모습이 말씀을 통하여 드러나게 되는 것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히브리서 4:12-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보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은 수술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몸에 암 덩어리가 있다면 수술하여 도려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들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으려면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으면 됩니다. 그저 수양이나 하고 도나 닦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절에 가셔도 얼마든지 좋은 말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탈에 이르려면 어떻게 바르게 수양해야 하는지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우리의 모습을 책망하고 이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새 사람답게 살라는 말씀이 불교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바울서신을 보아도 앞부분은 복음을 말하고 뒷부분은 복음을 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기에 이제 새 사람을 입었으니 새 사람답게 살자고 하는 것이 무엇이 잘 못 되었는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러하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은 반쪽밖에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까지는 내가 이루어 내었고 그 다음에 믿고 바르게 살면서 천국까지 오기는 너의 책임이라고 한다면 반쪽 복음인 것입니다. 아니 그래도 골로새서만 보아도 1장부터 2장까지는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끄집어내어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장부터는 그러므로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하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답변은 골로새서 3:10절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롭게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수동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서는 새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죽었다고 복창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골1:15)를 본받도록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누가 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죽이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탐욕을 위하여 살다가 그 탐욕의 무덤에 들어가겠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이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잘라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죄 인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이 다 새롭게 하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11절을 보면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기는’ 새 사람을 입은 자들이 모인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의 분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헬라인과 유대인이 차별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선민이라고 여기는 자기들과 짐승 중에도 부정하게 취급되는 개나 돼지와 같다는 말이 됩니다. 야만인이나 문명인의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종과 자유인의 구별이 있을 수가 없는 곳이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는 예수 그리스도만 만유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유라는 말은 모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인 사람에게 더 이상 분별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 되도록 만들어지는 사람이 새 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을 덧입은 자임을 늘 인식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아가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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