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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3:18-4:1

2008년 골로새서 공부
                                                         주께 하듯이 하라
말씀:골로새서 3:18-4:1

 

골로새서 3:1-5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지 않았다면 이 말씀은 그 사람에게 해당이 되지를 않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었고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질문을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것입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는 지난주에 골로새서 3:5-17절까지 말씀에서 보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이 말씀을 간단하게 한 번 더 보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5절에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죽여야 할 땅에 있는 지체는 무엇입니까?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이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또한 죽여야 할 땅에 있는 지체는 분과 훼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과 옛 사람의 행위입니다. 8-10절에 보면 이런 것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는 것입니다. 곧 다른 말로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4절을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에베소서 4:17-2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들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감각이 없는 상태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없으니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을 어디서 듣겠습니까?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씀을 듣겠습니까? 학교에서 이런 말씀을 듣겠습니까? 국회에서 이런 말씀을 듣겠습니까? 오직 교회에서만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마저 땅의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면 교회도 땅에 속한 곳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에스겔서 8장에 보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신에 이끌려 예루살렘의 성전을 보는데 성전 안에 우상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이 망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전인데 우리 안에 위엣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말씀드린 세상의 것들이 가득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5절을 보면 “너희도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는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2-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5:3).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5:4).

 

우리가 지금까지 본 모든 말씀들이 다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곧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말씀이 읽혀지고 들려지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이며, 탐심이 많은 사람인지를 이런 말씀을 통하여서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사람은 새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이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지만 주님께서 보시니 그들은 가련하고 벌거벗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희고 깨끗한 옷을 사 입으라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18절을 보면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더러운 자임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사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깨끗하다고 하면 주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2-17절까지 말씀이 다 교회의 생활 중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혼자서 사막에 가서 도를 닦는 것 같으면 서로 용서도 사랑도 필요가 없습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면 됩니다. 혼자 있을 때는 다 용서할 것 같고 사랑할 것 같지만 막상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이것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함께 부닥치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3:18-4:1절을 보면 가정생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아내와 남편 또는 부모와 자녀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3:18절을 보면 먼저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합니다. 아내 되신 분들에게 묻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십니까? 오늘 골로새서 본문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말씀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회의 원리를 가정에도 도입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간단하게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기심을 받은 성도들이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곧 다시 살리심을 받고 위엣 것을 찾는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위엣 것을 찾는 아내라면 이 말씀에 아멘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6절을 보면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단장은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지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말도 되지 않는 요구를 하였을 때에 사라는 남편의 말에 주라고 하며 순복하고 복종하여 자기를 단장하고 그의 딸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고, 남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고전11:3). 그래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 즉 위엣 것을 찾는 여인의 마땅한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19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히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과 아내를 말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22-25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보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만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신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만 ‘주’라는 말씀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무엇이든지 주께 하듯이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부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순간부터 불행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씀은 보이지 않고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말씀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적용하게 되겠습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자 자기에게 주신 말씀을 바라보지 않고 그 반대로만 본다면 곧 남편은 아내에 대한 말씀만 보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말씀만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싸움밖에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은 복종하라고 할 것이고, 아내는 당신이 뭘 사랑했느냐고 나를 괴롭게만 하였다고 하면 이것은 천국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씀도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저 말씀은 누가 들어야 하고, 저 말씀은 누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기는 항상 의인이 되고 남은 다 죽일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표는 곧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곧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하셨습니다(21:18).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요한을 보고서는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21:21).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21:22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만나겠지만 늘 관심사가 어디에 가야 하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남의 말만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아내가 내게 복종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를 사랑하고 괴롭히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들도 남편이 비록 나를 사랑하지 않고 괴롭힌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남편을 주라고 고백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실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힘써 이런 삶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우리는 주님의 종이고,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힘쓰고 애써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합리화시키지 말고 근본 주님께 순복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주님의 긍휼을 덧입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골로새서 3:20-21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와 자녀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자녀들에게 말씀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부모의 역할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서의 부모입니다. 구약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길에 갈 때나 앉았을 때에나 누웠을 때에나 언제나 주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6:4절을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부모는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비들은 자녀들을 격노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자녀들이 어떨 때에 화를 냅니까? 주의 교양과 훈계를 멸시하는 자는 마땅히 매를 들어서라도 징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녀들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시켜서 그 자녀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가 격노할 뿐 아니라 낙심케 되는 것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는 어떤 것입니까?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곧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 것입니다.

 

골로새서 3:22-4:1절은 종과 상전에 대한 말씀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에게 순봉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골로새서가 쓰여질 당시는 그야말로 노예와 주인의 관계인데도 종이 육신의 상전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업이란 유산을 말합니다. 하늘의 유산을 받는 것입니다. 그 유산이란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상전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라고 합니다. 이 당시에 종이란 거저 가정의 가재도구나 집안의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 세대에 주인에게 종들을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고 하는 것은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하늘에 상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5절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습니다. 종이라고 무시하고, 상전이라고 특별히 대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던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사느냐하는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심을 받고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이라면 삶의 원리는 하나입니다.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종들에게만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께 하듯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생활하면 하늘의 유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자기 삶의 우선순위에서 첫째가 아니라 꼴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예배에도 지각하고 결석하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이런 식으로 가정과 직장생활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욕이나 돌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자리에 예수님이 주가 되는 삶이 먼저입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보아도 우리는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5절에 보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첫 자리에 예수님이 주가 되게 하시고, 모든 일에서 주께 하듯 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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