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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한삼서 1:5-8

2008년 요한삼서 공부
                                                       진리를 위한 수고
말씀:요한삼서 1:5-8

 

시편 90:10절에 보면, 사람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많이 있을 텐데, 왜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앞뒤의 말씀을 보면 인간이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범죄 한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티끌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3:19절에서도 범죄 한 우리 인생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아무리 수고하여도 흙으로 돌아갈 인생이기에 ‘우리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천년이 밤의 한 경점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잠간 자는 것 같고, 아침에 돋는 풀과 같아서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 벤바 되어 마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주의 분노 중에 날아가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주의 분노 중에 수고와 슬픔으로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 사람들의 수고와 무거운 짐들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는 율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킨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실상은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었습니다. 겉과 속이 일치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들의 의가 있다고 여겼기에 주님의 초청을 거부하였습니다. 또 다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부터 죄인취급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가난하여 율법을 지킬 수도 없는 자들과 장애인들과 세리와 창기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중적인 짐들을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의 짐, 사람들로 죄인 취급받는 짐을 지고 사는 인생들입니다. 이들 중에서 예수님께 나아와 쉼을 얻는 자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결코 다는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신의 고침을 받는 것으로 또는 육신의 배부름으로 그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병 고침을 받고, 떡을 먹고 배부름을 얻었지만 거기에 그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로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참된 쉼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무엇을 주시고자 부르신 것입니까? 요한복음 8: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통해 자유를 주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자유란 진리로 말미암는 참된 쉼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때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자유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이 왜 자유가 없고 쉼이 없는가 하면 죄로 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종이기에 아들이 자유케 함으로 자유를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죄의 종을 아들이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진리로 자유케 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나는 자유다.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되신 예수님의 권세아래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서 진리의 종으로, 사망의 종에서 생명의 종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진리가 우리를 이끄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주가 되셔서 자기 백성을 이끌어 가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주님을 더 사랑하고 감사하는 일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로 자유케 된 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진리로 자유케 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리로 인한 자유를 맛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온갖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스트레스에 쌓여 사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진리로 자유하지 못한 인생입니다. 찬송가 474장에 보면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과 똑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사망에 이르는 근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아직도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일평생 수고를 하였는데도 그 수고가 사망을 위한 수고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역시 수고를 하지만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수고가 무엇을 위한 수고인지 돌아보려고 합니다. 요한삼서 5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라며 또다시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왜 장로가 가이오를 이렇게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까? 4절에서 보았습니다. 4절을 다시 보면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곧 진리에 행하는 것을 보고서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가운데 일어나는 관계입니다. 진리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 가운데 행하는 자를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사랑하는가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사랑하는 내용들이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사람들도 다 원하는 것들입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로 진리 가운데 행하게 하시고 진리로 기뻐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어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란 저주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그 앞에 인생이 맞닥뜨려지지 않고서는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실존의 궁극적인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았다고 하면서 온갖 의미 있다는 활동을 합니다. 생로병사, 관혼상제, 진선미를 추구하면서 살지만 우리가 목숨처럼 여기는 것들이 과연 죽음 앞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세상의 명예, 부, 권력, 영광 등 우리 인생들이 목숨을 걸고 얻고자하고 누리고자 하는 이런 것들이 죽음 앞에 의미가 있습니까? 죽음 앞에 인간의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 인간이 의미 있다는 것이 모두가 다 절망으로 허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로소 새로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염려하고 근심하면서 이루고자 한 나의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이루어진 다른 세상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받고 나니 이제부터 다른 진리체계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진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가 얼마나 허무한지 직접경험 해 보고야 후회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는 지혜와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왜 사랑하는 자라고 하면서 진리가운데 행하는 것을 듣고서 그렇게 기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진리가운데서 행하는 내용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5-6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진리 가운데 행하는 내용이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신실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그네 된 자란 순회전도자들을 말합니다. 이 순회 전도자들이 각 지역으로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은 자들에게도 말씀을 증거 하면서 다니는 중에 가이오에게서 여러 가지 대접을 받고서는 장로가 속한 교회에 와서 선교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행한 것처럼 계속하여 하나님께 합당하도록 저희를 전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순회 전도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영접하고 신실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 여러 이방의 신들을 소개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이들 이방인의 신들을 전하는 자들과는 다르게 오직 복음을 전함으로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내실 때에 아무 것도 없는 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로 보내셨는데도 그들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세상의 다른 것을 보고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만 보고서 받아들이게 하시는 예수님의 전도 방법입니다. 사실 아무 것도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전하면 누가 그들을 영접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영접하는 자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리 가운데서 만나는 교제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순회전도자들은 거의 대부분 거지 행색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면 먹고 안 주면 굶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도자들을 자기 집에 받아들이고 먹이고 입히고 여비까지 마련하여 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가이오는 신실함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교회에서 일어난 일로 보자면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들 영접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영접하는 사람을 교회에서 쫓아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환대하는 일이 바로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일은 다만 접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를 옳게 분별함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서 10-11절을 보면 바른 교훈을 가지지 않고 오는 자들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합니다.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단지 순회전도자라고 해서 아무나 다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전하는지를 알아보고서 참된 진리를 전하는 것을 보고 형제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저 자신을 보아도 얼마나 진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지를 늘 실감합니다. 이로 인해 공예배 설교 때나 수요 강설 때에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이 늘 깨어 제가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7절을 다시 보면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구원의 이름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사람들에게 미련하고 어리석고 거리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다들 배척하기에 바쁘지만 그러나 구원받기로 택정된 사람들은 그들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들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영접한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단을 영접하는 것은 그들의 악한 일에 참예하는 것이 됨을 요한이서에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바른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그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길에 어떤 사람은 나가서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후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책을 만들어 보내기도 합니다. 전도지를 만들어 보내기도 합니다. 기도의 지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교헌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일에 참예하는 것은 다 진리를 위한 수고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4:3절과 18절에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복음의 진리에 수고한 자들에게 대하여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고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것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안에서 일어나는 성도의 교제를 이렇게 받아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살아도 수고의 삶을 삽니다. 썩을 것을 위하여 평생을 수고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위하여 평생 수고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나의 수고가 진리를 위한 수고입니까?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위한 수고입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시고 이제 남은 삶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순회 전도자들과 같이 복음에 대한 열정을 회복시켜 주사 복음 전도에 힘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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