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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한삼서 1:9-15

2008년 요한삼서 공부
                                                               으뜸 되기
말씀:요한삼서 1:9-15

 

요한삼서에서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지금까지 본 대로 가이오입니다. 이 사람은 진리 가운데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장로가 가이오를 축복하면서 계속하여 진리 가운데 행하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나그네들을 잘 영접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가이오와 정 반대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디오드레베입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다고 합니다. 이 요한삼서 외에 다른 편지를 보냈는데 디오드레베가 그 편지를 받고서도 그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장로가 보낸 편지와 사람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은 곧 장로를 영접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 장로란 사도 요한입니다. 그러면 사도를 영접하지 아니한 것은 결국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0:40-42절에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보낸 자를 영접하지 아니한 것은 요한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 되고, 요한을 사도 요한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내신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하면 마태복음 10:34-39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도행전에서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은 언제나 소동과 요란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염병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기꺼이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목숨이라도 대신하고자 하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이 그 성중에 있었다는 말씀의 성취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사도의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하여 지지 않으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요한일서와 요한이서를 미루어보면 진리 안에 거하기를 권면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요한일서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을 보내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는 형제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결코 자기의 위대함을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교회에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9절을 다시 보면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대접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디오드레베는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도의 권면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종이 되어야 하기에 사도의 권면을 좋아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접대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사도들을 망령되이 폄론하였습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형제들을 접대하고자 하는 자들을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고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가서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대접치도 아니하고 대접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도 현재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더 나아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끝없는 경쟁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으뜸이 되기를 원하기에 피곤한 것입니다. 지고는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요란한 것도 모두가 으뜸이 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치권을 보면 대선에서나 총선에서나 모두가 으뜸이 되고자 합니다. 왜 으뜸이 되고자 하는가 하면 정치는 독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으뜸이 되고자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으뜸의 자리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기에 내려오는 길 뿐입니다. 그러니 내려오지 않으려고 또 발버둥을 치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세상의 싸움은 언제나 이런 싸움인 것입니다. 끝없이 으뜸이 되고자 하고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에도, 교회에도, 학교에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으뜸이 되고자 다른 경쟁상대를 밟아 누르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회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교회 안에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이런 다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지체가 잘되면 축복해 주고 함께 기뻐하기보다 시기하고 배가 아픕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고, 대접을 받고자 합니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서도 항상 다툼과 반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죄를 보게 됩니다.

 

이런 으뜸이 되고자 하는 근원적인 죄의 모습은 역시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다 아담의 후손들이기에 이런 죄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무엇입니까?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으뜸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의 으뜸은 양에 차지 아니하여 창조주의 으뜸의 자리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이 정치를 하거나 경제를 하거나 종교를 하거나 간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정점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것입니다. 이 범죄로 인하여 지금 모든 인간이 탄식과 고통과 죽음에 허덕거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 사회만 탄식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만물이 다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 탄식과 울음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서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세상의 으뜸이 되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와는 다른 또 다른 으뜸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높아지고 성공하는 으뜸이 되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리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일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도 있습니다. 다른 교회는 몰라도 우리교회는 바른 교회다. 다른 단체는 몰라도 우리 단체는 바른 진리를 전한다고 하는 으뜸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따라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교회를 세워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 교회만 바른 교회다. 우리 교회만 바른 진리를 가르친다는 헛된 자만과 자부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으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이처럼 개인이나 단체나 교회까지도 이런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은 타락한 인생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복음을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는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악을 행하는 자란 디오드레베인데, 이 사람이 교회의 중직을 맡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뵙지도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교회에서 목사가 되고 장로와 권사와 집사가 되어도 하나님을 뵈옵지도 못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여도 자기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적극적인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소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듣고 지적을 받아도 자존심이 상해 못 견딥니다. 이런 것도 엄밀히 보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본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에 기초해서 내게 이런 요소가 없는지 잘 살펴야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라고 5장에서만 6번을 외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나니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이 망할 자임을 알았습니다. 이사야 6:5절에 보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고백했습니다.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있으면서 거룩한 하나님을 보았기에 이제 죽었다는 것입니다.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문둥병자가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고 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배경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입니다. 웃시야 왕이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라가 심히 강성하여 집니다. 그러자 교만하게 되고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분향하고자 성전에 나간 것입니다. 성전에서 분향하는 것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교만하여 제사장이 말려도 왕의 권력으로 물리치고 성전에서 분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향로를 잡는 순간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여 쫓겨나 평생 문둥병자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 해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는 자신도 문둥병자처럼 부정한 자임을 알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 고백 후에 제단의 숯불에 그 입술이 지져지고 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다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자란 자신이 문둥병자임을 아는 사람이어야지 자신이 의롭다거나 으뜸이 된다거나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삼서 11절을 다시 보면 선한 것을 본받고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 실천력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에게 속한 것이라면 또다시 으뜸의 다툼이 나올 것입니다. 나는 선한 것을 본받는데 너는 왜 악한 것을 본받는가 하는 다툼이 또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훌륭해서 선한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거룩을 만나지 못하였기에 자기의 으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것이 나오는 사람은 결코 자기의 으뜸을 자랑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사도가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고 자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거룩한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을지라도 자신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무슨 자신의 으뜸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뵈올 때에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무엇이 선을 행하는 것인지 무엇이 악을 행하는 것인지 이렇게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장로는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를 추천합니다. 이 사람을 잘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디오드레베가 반대한다 할지라도 이 사람을 추천하는 이유는 뭇사람에게 증거를 받았고,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기에 우리도 증거 한다고 합니다. 진리 가운데 행하는 자임이 증거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리에 속하였기에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오는 데메드리오를 잘 영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13-15절은 마지막 인사말로서 속히 얼굴로 보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여러 친구가 가이오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이오에게 각 친구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사도 요한과 믿음의 동역자들이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라고 합니다. 교회는 형제와 자매로 되는 공동체인데, 디오드레베는 주종관계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교회가 친구 곧 형제, 자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참으로 으뜸이 되시는 분이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8절에 보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고 했습니다. 앞뒤의 말씀을 보면 교회의 머리만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자요,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아는 곳은 교회뿐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전에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떠나 있던 모습과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십자가의 피로 화목케 되었는데 그 으뜸인 머리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 디오드레베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서도 누가 으뜸인지 알게 하시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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