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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엘서 3:1-8

2008년 요엘서 공부
                                                      하나님의 국문(鞠問)
말씀:요엘서 3:1-8


지난주에 우리는 요엘서 2장을 통해서 말일에 되어질 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일에 성신을 부어주심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심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여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동시에 땅과 하늘의 징조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이 온 세계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며, 이러한 심판 가운데 주의 백성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말일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심판의 내용이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가 심판의 대상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인지가 점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심판의 대상으로 알게 된다면 회개하여야 할 것이고, 자신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백성이라면 그러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마침내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과 세계의 다른 민족들을 벌하신다는 것, 이 두 가지 주제가 여기서 한데 어우러져 나타납니다.

 

1절에 보면 구원이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며, 2절에서 심판이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을 헤친 이방민족들을 국문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국문이라고 하는 단어는 임금님이 친히 죄인을 심문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친국이라고도 합니다. 요즘 사극이 유행합니다. 사극에서 보면 임금님을 모함하거나 세자를 모함하거나, 반역을 꾀하였을 경우에 보면 임금이 친히 국문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때 보면 죄를 자백하게 하는 많은 고문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면서 심문을 하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임금이 친히 나와서 죄인을 심문하는 것이 국문이요, 친국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일에 행하시는 심판에 있어서는 자백하라고 고문을 행하며 국문하시지 않으셔도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입으로 죄를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누가 무슨 변명이 필요하며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10-12절 보면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무릎이 하나님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송사하지 않아도 스스로 직고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국문하시는 것입니까? 2절에 보면 여호사밧 골짜기입니다. 역대하 20:1-30절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 때에 암몬과 모압과 세일이 연합하여 유다를 치러 올라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이 기도합니다. 온 백성들로 금식하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브라함의 언약을 말하며 기도합니다. 그러자 연합군이 서로서로 치게 되어 다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하였다고 해서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고 합니다. 5-13절의 기도의 내용만 보면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성전을 향한 언약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을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멸하지 아니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공격하오니 보시옵소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기업에서 쫓아내고자 하는 저들을 인하여 여호와만 바라봅니다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적들로 서로 서로 치게 하여 모두 죽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따라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국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판결골짜기라고 합니다. 요엘서 3:14절에 보면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라는 말자체가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열국을 모아 국문하시는 장소가 여호사밧이라고 하여 지금도 지역적인 그 장소에서 심판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장차 온 세계와 열방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우시는 하나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국문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본문에서 몇 가지로 나타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어버리고 하나님의 땅을 나누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과 기업으로 삼으셨기에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국이 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어버리고 그 땅을 나누어 버린 것은 여호와를 대적한 것입니다. 3절과 6절에서는 자기 백성을 제비 뽑아 취하여서는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고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시고, 노예로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한 것입니다. 고대 전쟁에서 수많은 전리품 중의 하나가 전쟁포로들 입니다. 그러니 적들이 쳐들어와서 많은 포로로 잡아가서 노예시장에 팔아서 자기들의 쾌락의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인간에 대한 모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대 전쟁이란 신들의 전쟁으로 보기에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는 자기들의 신이 이긴 것으로 여기기에 그 백성들을 학대하고 팔고 죽임을 통하여 그 나라의 신까지 모독을 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의 금과 은을 취하여서는 그들의 신궁에 가져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외국에서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과 은을 취하여 갈뿐 아니라 바벨론 같은 나라는 성전의 금과 은의 그릇까지 빼앗아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를 빼앗아 간 것을 여호와께서 나의 금과 은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의 여러 나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침략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인해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의 나라들은 하나님의 몽둥이와 채찍으로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구들인 열방이 교만하여져서 자기들이 잘나서, 자기들의 신이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이긴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국문을 하시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차원입니다. 이스라엘에 계시하신 여호와 외에는 달리 다른 신이 없음을 알리시는 차원에서 자기 백성들이라고 하여도 범죄 하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방의 교만도 함께 심판하심으로 여호와만이 홀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지만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복이 부분적이고 모형입니다. 장차 모든 열방에서 주의 택한 백성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이 때는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하나님의 국문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때의 심판의 기준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국문하시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엘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백성을 헤친 자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간구처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기업을 침략하러 온 적들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지금의 혈통적인 유대인들이나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기준으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까? 일부에서는 그렇게 보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새 언약이 완성된 상태에서 혈통적인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종말에 회개하고 돌아올 자들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움직임이 계시가 아니라 성경에서 약속된 것이 전부인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어떻게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여호사밧의 기도에서 보았듯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기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성경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성경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이라고 합니다(창 15:1-7).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브라함을 따라서 이방인이 받을 복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에게 자동적으로 하늘나라의 기업에 상속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16절을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3:1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백성과 기업됨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이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어떠한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국문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그것은 곧 주님을 대접한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한 것이 단지 이스라엘의 국가나 백성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격한 것으로 보시듯이 오늘날 예수 믿는 아주 미미한 한 사람을 공격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을 때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행 9:4)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심판을 스스로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1:28-30절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까지 심판을 받겠습니까? 말과 행동과 마음의 생각까지 입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로 난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에 이르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죄인인줄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회개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백하면 용서하시는데 자백이란 자기가 아는 죄만 죄로 여기지 모르는 것을 어떻게 자백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자 만이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이란 목록을 정하여하는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지은 죄들도 있는데 그것을 자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야 합니다. 이미 죽은 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 들어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어떠함을 드러내시면서 갈라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30장처럼 백성들이 진리를 말하지 말고 거짓말로 아첨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아플지라도 바른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는 것이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말씀 앞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국문을 받고 회개하는 자리가 성도에게는 심판의 자리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의 친국 앞에서 우리 의가 없기에 주님만을 사모하게 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말일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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