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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1:9-14

2008년 골로새서 공부
                                                           아들의 나라로
말씀:골로새서 1:9-14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곧 천국의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이후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들의 나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3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전에 살던 흑암의 권세 즉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던 나라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곧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나라로 옮겨놓으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라가 달라졌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방향과 목표도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지난주에 본 말씀에 의하면 은혜와 평강의 나라이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나라입니다. 바울은 이 나라를 주신 것에 대하여 먼저 감사를 한 것입니다. 이 나라에 대한 소식이 복음이며, 이 복음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그 나라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의 믿음이며, 같은 믿음의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열매가 나타나는 것은 그 아들의 나라 곧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들의 나라로 소속이 옮겨졌기에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도록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9절을 보면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과 사랑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그치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첫째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주어져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 나라 곧 아들의 나라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을까요? 골로새 교회가 에바브로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는 교회인데 이곳에 여러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서 예수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나 신비적인 체험이나 금욕적인 주장을 하는 자들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자기들의 가르침을 따르면 훨씬 더 믿음의 성장이나 고급한 신앙에 이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23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 사람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 다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자들이 실체를 붙들고 있는 자들을 폄론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겸손함을 떠는 것입니다. 천사 숭배함과 그 본 것을 의지하여 육체의 마음을 좇아 과장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초등학문에 속하는 것과 같이 의식적인 문장에 순종하는 것과 육체적인 금욕들이 지혜있는 모양으로 보이지만 육체 쫓는 것을 금하는 데 조금도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는 모든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모양을 내는 육체적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주장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신앙으로 보고 고급한 신자가 되려면 방언을 해야 하고, 신비적인 체험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 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자들만이 아니라 삼박자 축복, 4단계 회개를 해야만 영적인 깊이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합니다. 수많은 교회성장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면서 자기들만이 이 시대에 허락한 진정한 교회성장 프로그램이라는 식으로 선전합니다. 옥성호 목사가 지적한 대로 한국교회는 온갖 마케팅에 물들어 있고, 심리학에 물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의 능력을 부정하는 세미 펠라기안과 알미니안 사상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것을 추구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 것처럼,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부흥인 것처럼 추구하고 신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는 이천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자람과 열매와 충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자람과 열매와 충만은 골로새 교회의 거짓 선생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람과 열매와 충만함에 대한 것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마치 통과 의례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하고 그런데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예수님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같아 보여도 끝에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크게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다른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이란 ‘끝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이 최종 방향이며, 목표인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첫째로 기도한 내용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때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의 본의를 알기 위해 힘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두 번째 기도는 무엇입니까? 10절에 보면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두 번째 기도의 내용입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지면 주께 합당히 행하며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자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서신을 쓰는 바울 사도가 과거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살펴봤듯이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바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잡아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율법을 잘 지켰으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행한 바로 그런 그의 행동이 도리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됩니다. 그때 범사에 어떻게 행할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근심은 세상을 최종목표로 여기는 근심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의 뜻에 최종목표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으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세 번째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다시 보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선한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진선미를 가지고 선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만물보다 부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패한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것도 선한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나오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이런 모든 선한 열매들이 나오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열매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의 결과를 자기의 자랑으로 돌리는지, 아니면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열매는 본인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네 번째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10b절에 보면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본 것이 그 보내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쳐두고 다른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다 가짜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8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의 다섯 번째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11절을 보면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영광의 힘이란 2:15절의 말씀에 보면 십자가의 힘입니다. 십자가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겼기에 승리요, 영광의 힘인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에베소서 1:19-20절에서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신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에베소서 2:5-6절에 보면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 백성도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앉히신 것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5-6). 이러한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만물의 으뜸이 되심을 골로새서 1:18-20절에도 증거 합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바울의 여섯 번째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11b절을 다시 보면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견디고 참는 것은 편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과 고난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환난과 핍박 중에 우리가 어떻게 기쁨으로 견디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에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주님의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곱 번째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면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도록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미 얻게 하셨기에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골로새 교회는 복음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교회를 향하여 바울의 간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자라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은 자라고 인정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 나라의 내용을 증거 하면서 알게 해 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의 기도제목을 이렇게 일곱 가지로 나눈 것은 하나님께 이렇게 하여 달라는 부분을 나누어 보니 일곱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한 가지씩 설교를 하면 일곱 번을 해도 부족한 내용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 설교 집을 보면 골로새서 1장만해도 책이 한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기도들이 우리의 삶에 무슨 보탬이 되는 기도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해 달라거나, 자녀들의 취직을 위한 것이거나,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거나, 세상의 영광을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습니까? 14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른 나라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오면 시골에서 농사짓던 것 다 버리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농사짓는 도구들이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차이는 이와는 비교도 할 수없는 차이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죽자 살자 좋아하고 추구한 것이 그 나라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배설물이요, 쓰레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아들의 나라에 배설물과 쓰레기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1서 1:5절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 빛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아들의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것은 다 지나간 것입니다. 계시록 22장에서는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있으며, 그 얼굴을 볼 것이며, 다시는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흑암의 권세 곧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들의 나라 곧 빛의 나라의 기업을 얻게 된 것입니까? 14절을 보면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즉 십자가의 피로 해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썩어질 기업을 받아도 그 기업의 경영을 알기 위하여 회장의 아들이라도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하물며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받은 자들이 그 나라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아들의 공로로만 들어가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더 많이 알아가는 것이 자라는 것이며, 충만함이며, 열매인 것입니다. 이 소식을 바울사도가 전하는 것은 그의 받은바 사명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6:17-18절을 보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런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여 우리도 그 나라를 자랑하며 증거 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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