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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3:1-5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미쁘신 주님
말씀:데살로니가후서 3:1-5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하여 달라고 기도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은 같은 본문을 통해서 특히 3-5절 말씀을 중심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는 바울의 간구를 배우고자 합니다.

 

천지가 창조된 이래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우리가 정확히 모르지만 지금도 이렇게 우주 만물이 질서 있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신실하게 지금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절에 보면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감사하고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해맞이를 한다고 정동진이나 해운대로 몰려들 갑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데 도리어 죄로 인해 가리워져 있기에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고 밝히 알아듣도록 해석합니다. 무려 일주일간이나 집중적으로 말씀을 읽고 강해를 합니다. 오늘날로 하면 일주일간 사경회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기간이 초막절이어서 온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서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내용이 느헤미야 9장의 내용입니다. 느헤미야 9:6-8절을 보면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9:1-3절에 보면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낮 사분지 일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고 이러한 일을 일주일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내용을 보면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자신들의 신실치 못함을 교차적으로 자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앞에서 읽은 느헤미야 9:6-8절 말씀에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존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 내시는 주의 의로우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언약대로 출애굽을 시키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데 얼마나 많이 반역하고 또 반역하는지를 자복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얼마나 많은 반역들이 일어나는지 그러한 반역들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사시대와 포로로 잡혀간 것까지 모두 고백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범죄하였사오나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어 내심으로 오늘 우리가 남아 있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오늘 본문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주는 미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쁘다’라는 말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믿음직하다’, ‘미덥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진실하다’, ‘참되다’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미쁘다’라는 말은 ‘신실하다’라는 말입니다. 요즈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미쁜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다보니 이런 말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쁘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1-2절과 연결하여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바울 사도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요청하는 기도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나타난 것처럼 말씀이 달음질 하도록 기도를 부탁하고 또 한 가지는 무리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건지옵소서라고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무리하고 악한 자들이 넓게 보자면 복음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이 되겠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당시의 특정한 방해세력들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력들이 교회 밖의 세력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살후 3:2).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교회에 오는 사람과 오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도 구별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교회 나오고 있으면서도 무리하고 악한 자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들의 의지와 결단과 열심이 주를 위하여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믿음으로 행한 것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것은 그 행위의 공로를 누구에게로 돌리는가를 보면 아는 것입니다. 말로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자기의 영광으로, 자기의 보람으로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성경은 은사라고 합니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의 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공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은 것이 누구로 말미암았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선물로 받았다면 선물을 주신 분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것은 미쁘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구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면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고 합니다. 1-2절에서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던 바울 사도가 여기서는 오히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곧 ‘굳게 하시고’와 ‘지키시리라’입니다. 그런데 누가 굳게 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입니까? 미쁘신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배반하나 주님께서는 신실하게 일하심으로 우리가 오늘도 주님을 믿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에서 구하여 주시고 지키시는 것이 우리 주님의 신실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였고 여러 가지를 명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행하고 행할 줄로 확신한다는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실함을 믿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주 안에서 확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형제들을 볼 때에 이러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 안에서 주님께서 일하심을 보고서 주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형제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조금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형제에게서 분명한 주님의 일하심을 따라 믿음의 반응이 나타난다면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서 그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복음에 대하여 반대하고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오래 참으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서는 떠나라고 합니다. 6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들에게서 떠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을 받지 않고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았지만 아직도 연약하여 넘어지는 자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용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안에서 주님께서 신실히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6절을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기에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얼마나 엉터리 같습니까? ‘이게 무슨 예수 믿는 모습인가?’하는 생각이 우리 스스로 자신을 볼 때도 얼마나 많이 생깁니까?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파렴치한 놈! 자기 배를 위해 사는 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나 다른 사람이 우리들을 보고 판단할 때나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부족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안 돼! 어쩔 수가 없어!’하고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야겠지만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신실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처럼 변덕이 죽 끓던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신실하게 일하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가 확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보다 지나친 자기 확신에 붙들린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열심과 자기의 결단과 자기의 의지를 믿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이제 내가 이만큼 신앙생활 하였으니 그 정도는 내가 해 낼 수 있다. 내가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도움이 없이도 내가 그 정도는 행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넘어지기 쉬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란 끝까지 주를 믿고 신뢰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들어갈 자가 사실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인내하신 그 인내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하시는 것입니까?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리에게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오직 미쁘신 주님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몇 곳의 말씀을 보고 마치고자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24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이미 본 말씀입니다만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온전히, 거룩하게, 흠 없이 보전되는 것은 오직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신실하심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9절에 보면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만 사귀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불러서 세상과 사귀지 말고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도록 불러주신 것은 역시 미쁘신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에서 이기고, 그것을 감당해 내는 것도 역시 미쁘신 하나님께서 감당하게도 하시고 피할 길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곳만 더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12-15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알고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이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바울 사도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 들어가면 다른 것이 부러울게 없는 것입니다. 미련이 없는 것입니다. 아쉬움이 없는 것입니다. 한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실패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그 사랑 안에서 안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돌아볼 때 얼마나 허덕이면서 살아 왔습니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자신을 닥달하면서 채찍질 하여 왔습니까? 경기가 불안하고, 기업이 부도의 소식이 들리고, 정치가 오리무중이고, 도대체 믿을 만한 게 없어 보이는 이 세상에서 오직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다짐하면서 마땅히 돌보아야하고 마땅히 베풀어야 할 자리까지도 애써 외면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러한 우리의 마음이 미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미쁘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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