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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2:1-13
성경본문내용 (1)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3)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5)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6)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8)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1)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12)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강설날짜 2014-11-05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말씀:고린도후서 12:1-13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후서 12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12장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3절과 14-21절 말씀 입니다. 1-13절 말씀에서는 10:1-12:13절까지 계속되는 바울 사도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말씀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리고 14-21절 말씀은 바울 사도가 세 번째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1-13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부득불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말하지 아니한 것을 할 수 없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들어 온 거짓 선생들이 자신들은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며, 바울이 전한 복음조차 왜곡하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자기 자신이라고 하지 않고 완전히 객관화 시켜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후 12:1-5).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안다고 합니다. 그가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신다고 하면서 그 세째 하늘에 이끌려가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사람이 가히 이를 수 없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은 사람의 말로 다 표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무언가 비슷한 것이라도 있어야 비교해서 말을 할 텐데 비교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경험한 세째 하늘은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면서 그 보고 온 것을 책으로 출판을 합니다. 그들의 책을 보면 천국은 금은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말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자랑하고자 함입니까? 아닙니다. 헛된 자랑들을 막고자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14년 전의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5절에 보면 결론적으로 자기에 대한 자랑은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5).

 

6절 말씀을 보면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랑을 하여도 자신의 말은 참말이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의 말씀처럼 어떤 사람들이 자기들이 본 것을 의지하여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여 그리스도의 머리를 붙들지 못하게 하는 자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골 2:16-19). 그러나 자신을 지나치게 생각할 까봐서 그만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체험이 있으면 침소봉대하는데 바울은 우리와는 오히려 거꾸로 말하면서도 자신을 주목할까봐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계시를 받았다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도 엄청난 능력으로 나타나야 제대로 된 주의 종이라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많이 속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이라면서 왜 그렇게 못나고 약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여기십니까? 그것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8:23-28절 말씀을 보면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에 복음을 전하는데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인용한 말씀이 이사야 6:9-10절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6:9-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보고 들어서 깨달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겠지만 결국 믿기로 작정된 자만 믿게 되는 것이기에 주의 종들이 약한 모습, 겨자씨의 모습, 밭에 감춰진 보화의 모습으로 땅 끝 까지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10절을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째 하늘까지 보고 온 바울 사도에게 능력을 베푸시기는커녕 오히려 사단의 가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만 어떻든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치명적인 고통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단의 가시를 제거하여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는데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들이나 우리가 평소에 원하는 능력들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주셨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이단의 교주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우리의 처한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러나 약할 그때에 온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아니 약한데 어떻게 온전하여지는 것입니까? 약한 것이 극복되고 강하게 되어야 온전한 것이지 어떻게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모습이 온전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비밀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오늘도 온전해지기 위하여 온갖 인간적인 노력을 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내가 약하여도 예수님의 온전하심 때문에 온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신앙적인 영웅이 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이루심을 성령으로 자기 백성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천국의 완성상태를 보고 온 것입니다. 세상에서 비록 약한 모습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당해도 천국의 기쁨을 빼앗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루라도 빨리 죽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 기쁨을 우리도 맛보기를 소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약할 때에 그리스도가 온전함이 드러나고, 자신이 약할 때에 그리스도가 강하기에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의 출신과 자신의 경력과 자신의 수고를 말한 것입니까? 그것은 바울 사도 자신을 대접하여 주지 않기에 더 나은 대접을 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사도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면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이 손상을 입을까를 염려한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아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물의 찌끼 같이 여김을 받고 온갖 곤란과 궁핍과 능욕을 받아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되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로 복음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증거 하는가 하면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하여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7-8절을 보면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확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복음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표이며,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 자신도 이 복음에 배치되면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하여 겸손과 헌신과 충성된 모습으로 증거 하고 있는데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 나타나서는 바울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울이 증거 한 복음마저 배척을 받게 되기에 어리석은 자랑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랑을 하게 된 것은 바울이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보면 고린도 교회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빠졌기에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자랑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의 사도된 표는 무엇입니까? 11b절을 보면 자신이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합니다. 지극히 큰 사도들이란 스스로 큰체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그들보다 자신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어리석은 자랑을 통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참된 사도의 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탈락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직접 배운 자들 중에서 한 사람을 제비뽑아 추가합니다. 왜 12둘을 꼭 채워야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에서 남은 자가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21-22절을 보면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된다는 것을 시편을 인용하면서 사도를 뽑는데 어떤 자격인가 하면 세례요한의 때부터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여기의 자격에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시는 것은 이방인을 위하여 택하신 나의 그릇이라고 합니다(행 9:15). 그러니 이방인의 사도가 바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인 중에서 택함을 입어 나온 자들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사도의 표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표된 것은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회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참음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바울에게 나타났지만 고린도 교회에서는 많이 행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복음 전함이 바울의 지식이나 바울의 능력 때문이라고 할 까봐서 심히 두렵고 떨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자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모두 주님의 은혜에 돌리고 자신은 숨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도의 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짜들은 어떻게 합니까? 조그마한 것들을 과장해서 자기의 경건과 능력으로 나타난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참된 주의 종이기에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결국은 사람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아서 사로잡아 먹는 가짜들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무슨 표적이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고 하는 사람은 가짜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설교를 한다고 해서 그 설교하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신분이 다르거나 그렇게 할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엉터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린도전서 4:7절을 보면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사도의 직분도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은사들도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받지 않고 자기의 능력으로 하는 것처럼 왜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특징은 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그렇게 오래 참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면 형제에 대하여 참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표이며, 주의 종의 표인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다른 교회와 다르게 하였다면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교회들에서는 연보를 받았는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연보를 받지 않았다면 이것이 공평치 못한 것이니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린도 교회보다 어려운 교회에서는 연보를 받았는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연보를 받지 않고 자신이 수고하고 또 다른 교회의 연보의 도움을 받으면서 고린도에 복음을 전한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아직 감당할만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사는 풍성하였지만 아직 어린 아이인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연보를 하게 하였다면 연보하는 것이 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난 체 하는 모습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를 보내는 지경에야 비로소 연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입니다. 무조건 바치면 복 받는다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연보를 받지 아니한 것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오히려 어떻게 생각한 것입니까? 바울이 사도의 자격이 없으니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을지라도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자기 사람 만든다고 하는 비판들이 나온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17-18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라고 반문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익을 구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구제역사에 디도와 함께 교회에서 추천하는 신실한 자를 함께 보내었습니다(고후 8장).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의 자랑이 우리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능력이 약한데서 오직 주님의 온전함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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