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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5:1-7
성경본문내용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2)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3)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4)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6)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강설날짜 2014-04-23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우리가 믿는 고로 또한 행하노라


말씀:고린도후서 5:1-7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믿는 고로 말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 이지만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보이지 아니하는 믿음의 내용이란 4:14절의 말씀인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부터 고린도후서 5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지난 시간에 살펴본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하는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믿음으로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믿음에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고로 또한 말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즉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으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자기가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아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만을 위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눈에 보이는 것을 삶의 목적과 목표로 삼고 살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약속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목숨을 걸지 않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교회로 모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잠시 잠간 있다가 사사질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까? 베드로전서 1:23-24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인생이 풀이며, 그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인생이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곧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닙니다. 썩지 아니할 씨로 되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를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여질 것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은 산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산 소망이란 땅에 있는 썩고 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간직된 영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듣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말씀입니까? 이 말씀이 진정 위로가 되시는 분은 지금 우리의 삶이 무언가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듣기 싫은 사람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착착 이루어져서 무언가 세상에서 희망이 있는 사람은 듣기 싫은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기 좋거나 듣기 싫거나 간에 이 세상은 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사는 것을 성경은 믿음으로 행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장막집’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무너져도 곧 우리의 몸이 죽어도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왜 ‘만일’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의 재림을 아주 임박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정말 오늘 오실까 내일 오실까 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둘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이 지나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부활이 없다는 사람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믿는 자가 죽게 되어도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땅에 있는 자의 장막이 무너진 것을 곧 죽음을 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자들도 홀연히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미 증거 한대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53-54절 말씀을 보면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의 몸을 입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영광의 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에 들어가신 그런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늘에 속한 장막 집은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가 없는 집입니다. 우리는 평생에 자기 집을 짓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렇게 수고하여 새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그 집은 새집이기에 온갖 유해성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몇 년이 못되어 낡아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은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가 없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집이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집이 우리의 산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천국에 갔다가 왔다는 사람의 간증을 들어보면 땅에서 재료가 올라오는데 그 재료로 천국에서 죽고 나서 자기가 살 집이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면 그 한 것만큼 집이 넓어지고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평생 전도 한명도 못한 사람들은 자기 집도 없고 합숙소 같은데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거짓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그러면 노아도 합숙소에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간증들은 다 거짓된 것입니다. 이런 간증들이 얼마나 세상의 인과율로 말하는 것입니까?

 

마가복음 15:58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9절 말씀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그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발하면서 하는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손으로 지은 성전 곧 예루살렘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을 죽여야 할 죄목으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손으로 짓지 아니하는 다른 성전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손으로 짓지 아니한 그 성전이 무엇입니까? 자기 몸으로 세울 성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자기 몸으로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기 몸을 성전이라고 한 것을 제자들이 나중에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오순절 성령을 보내셨을 때에 제자들이 비로소 그 말씀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기에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처소를 준비하러 하늘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처소가 준비되면 자기 백성을 데리려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처소는 성령을 보내심으로 마련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지 아니할 집입니다.

 

베드로전서 2:6-8절 말씀을 보면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건축자로서 자기 인생의 집을 설계하고 지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성공을 위하여 여러 가지를 주워 모았는데 쓸모없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버린 돌이 하나 있는데 그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싫다고 버린 그 돌을 가지고 새로운 집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집이란 인간의 죄를 드러내면서 만들어진 집입니다. 사람이 거들어 드릴 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에 버린 돌로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집을 지으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런 내용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알고 믿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보면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믿는 자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는지 탄식하면서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덧입는 것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벗은 자’란 하늘의 처소를 입지 못한 상태를 벗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나타난 반응은 벌거벗은 줄을 알고 부끄럽고 두려워서 숨고 가렸습니다. 그 아담의 후손들이라는 증거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은 가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착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선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평생 자기를 치장하면서 살지만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의롭고 바르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벌거벗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치장한 이 더러워진 것을 벗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를 닦고 선행을 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내 속에서 나오는데 무슨 수로 벗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벗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덧입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벗고자 합니다. 곧 욕심을 버리자고 합니다. 스스로 깨끗하게 되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스스로 벗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바울 사도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핍박하는 것인 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믿고 나서는 이제 어떻게 살았습니까? 이제는 탄식도 없고 그저 평안하고 행복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온갖 핍박과 환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소망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소망한 것입니다.

 

시편 90:1절 말씀을 보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입니다. 모세는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할 처소가 주님의 품입니다. 그 품에 돌아가기까지 우리는 탄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18-25절 말씀을 보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들까지도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무너질 집! 이제 그만 수리하고 꾸며도 되지 않겠습니까?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하늘의 장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하늘의 몸을 덧입게 되면 이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리라는 말씀이 응하게 됩니다(사 25:8). 그러나 이 약속을 인간이 스스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보증이 되셔서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7절 말씀을 보면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증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보증이 되셨다는 것은 반드시 이 약속을 이루시고야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무너질 장막만을 영원한 것인 양 붙들고 있기에 성령은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너질 장막이 아니라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하늘의 장막을 사모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과 답답함을 주시는 것은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담대히 행해야 합니다. 그 행함의 내용은 우리가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것인 줄 알고 차라리 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늘에 간직한 영원한 하늘의 장막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무너질 장막을 붙들고 살지 않게 하시고 무너지지 아니하는 하늘에 간직한 장막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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