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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8:9-15
성경본문내용 (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10)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11)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12)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13)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14)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15)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강설날짜 2014-07-16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평균케 하려 함이니라


말씀:고린도후서 8:9-15

 

고린도후서 8-9장은 연보에 대한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게도냐 교회가 힘에 지나도록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연보하는 은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연보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은 특히 본문 말씀을 통해서 평균케 하는 연보의 의미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연보의 원리에 따라 힘에 지나도록 연보하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가운데 평균케 하는 은혜의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성도가 연보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란 단순히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연보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셔서 성도들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세상에서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나누어 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를 하는 그 자체가 복이며, 은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연보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특권입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일에’라는 말은 연보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연보하는 일에 바울 사도가 뜻만 보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도로서 연보 하는 일에 명령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뜻만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 교인들 스스로 이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 해 주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연보는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합니다. 왜 연보를 하는 것이 유익한 것입니까?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보면 두 사람은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창 4장).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왜 동생의 것은 받아주고 자기 것은 받아 주지 않는가?’하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항의 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가인이라면 우리도 그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아니 바치지 않는 것이 문제지 바치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며 항의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인과 아벨의 이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해석이 나오는가 하면 아벨은 ‘정성으로 바쳤다. 첫 예물로 바쳤다. 양을 바쳤다’ 등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보면 그 어떤 예물 바침의 기준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사람은 다 자신이 수고하여 수확한 것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아벨의 것은 받아 주시고 가인의 것은 받아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4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했는데,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더 나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믿음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못 알아듣는 말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내용이 무엇 이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신 저주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나의 결단입니까? 아닙니다. 또한 이 믿음이 내가 지식적으로 알고 동의하고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창세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신 자들만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은 오직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벨이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벨을 은혜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생각은 왜 내 것은 받아주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드렸다는 말을 우리 입장에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즉 범죄 한 이후에 낳은 자식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의 것을 받으실 까닭이 없습니다. 받지 않으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받아 주셨다는 것은 이미 용서 하셨기에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용서 하시고 받아 드린 사람은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 죄 아래 오셔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받으심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함께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연보를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받아들여 주셨다는 은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감사하고 연보를 하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죄인이기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가인처럼 내쳐져야 마땅한 우리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니 이것이 연보에 참예하는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이 연보에 대한 뜻만 보이는데 이 연보를 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연보를 하는 것은 사랑을 입은 자요,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10-12절 말씀을 보면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찌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연보를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면서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으니 이제 성취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것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연보의 원리 몇 가지를 보게 됩니다. 첫째, 마음에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만 압니까? 하나님과 본인만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있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없는 것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좀 넉넉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후하게 헌금하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르는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학개서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학 2:8). 은과 금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이 다 주님의 지으신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가난한 자들의 연보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나님은 돈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마음에 감사하여 자원함과 기쁨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담기지 않는 돈은 억만금을 바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3:1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 23:18).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다보니 무조건 돈만 많이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연보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사도들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아무도 못하는 것입니다. 없으면 안하면 되는 것입니다. 있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있는 대로 한다고 하니 내 쓸 것 다 쓰고 나서 있으면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마게도냐 교회에 주신 은혜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자원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해서 연보하는 복에서 빼어버릴까 싶어서 간절히 청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란 돈이 아니라 마음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은 돈 많은 어떤 사람이 내가 다 할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다 은혜로 참예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재정 형편상 어려움 가운데 있는 많은 교회들과 은혜를 많이 나누지는 못하지만 몇몇 곳과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또한 매월 첫 주에 구제헌금을 따로 하여 이 은혜에 참여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욱 이일에 힘써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6:21). 연보는 단순히 돈을 나누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연보는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이요,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대로 우리도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과 같이 힘에 지나도록 이 은혜에 참예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평균케 하는 것입니다. 13-14절 말씀을 보면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연보를 하는 것은 여유 있는 자로 하여금 곤고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평균케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케 하라고 합니다.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은 후에 저희가 여유 있으면 또 너희에게 보충하게 하여 서로 평균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균케 한다는 것이 여러분은 좋습니까? 싫습니까? 어떤 재벌 회장이 ‘한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두자는 것입니다. 평준화하면 하향 평준화가 되어서 다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난 사람 잘난 대로 대접하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대접받게 하는 것이 자유주의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연보의 정신은 평균케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공산주의도 아니고 무엇을 평균케 하자는 것입니까? 그런데 공산주의는 법으로 평균케 하려다가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무엇으로 평균케 하는 것입니까? 주의 성령이 임하여 은혜로 평균케 되는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보에 담긴 뜻입니다.

 

그 은혜의 현장이 사도행전에서 이미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43-47절 말씀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4:32-35절 말씀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성령 받는다고 하면 무슨 능력을 많이 받아서 능력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성령의 은사를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게 하시는 성령을 받기를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평균케 하는 은혜의 역사는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출애굽기 16:16-20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고 했습니다. 만나가 신령한 양식입니다. 그러니 많이 거둔 자도 적게 거둔 자도 되어보니 남거나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둔 것입니다. 모세가 아무든지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루분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주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여 남겨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보니 벌레가 생기고 썩어 냄새가 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 하루분만 거두어 왔을 것이고 많이 거두어 온 사람은 적게 거둔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만 지나면 썩어버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15절 말씀을 보면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출애굽기의 이 은혜의 사건이 성도의 연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성도 안에서 이런 은혜의 일이 나타난 것을 사도행전에서 확인하였는데 바울 사도는 이런 은혜가 계속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은 비교적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쌀도 너무 오래 두면 벌레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양식이 매일 썩는다고 하면 우리는 하루 양식만 두게 될 것입니다. 정말 좋은 양식은 방부제 없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에는 상온에 몇 시간만 두어도 상해 버립니다. 그래서 냉장고를 개발하여 음식을 보관합니다. 김치도 김치냉장고를 통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계속하여 많이 쌓아두도록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이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20절에 보면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그 쌓은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죽음 앞에서 모두가 평균케 됩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떡되신 우리 주님께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이 참된 양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생명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썩어질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우리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오늘 밤에 우리의 영혼을 도로 찾으신다는 그 주님 앞에서 종말론적인 인생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진 것으로 힘에 지나도록 연보하게 하시고, 성도들 간에 평균케 하는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은혜의 역사가 우리 교회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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