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14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0:7-11
성경본문내용 (7)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8)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9)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10)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11)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강설날짜 2014-09-03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주께서 주신 권세는


말씀:고린도후서 10:7-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진을 파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후서 10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의 훌륭한 외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자신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내세움으로써 바울 사도를 상대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고 육체대로 행하는 사람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7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찐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7).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라고 하며 대적하는 자들에게 ‘너희는 외모만 보는 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믿지 않느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것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맞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남들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지를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 속했는지 속하지 않았는지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외모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나타난 지식과 은사들을 가지고 자랑하였습니다.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곧 자신들은 무언가 받을 만한 것이 있어서 받았다는 자기 자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그 무엇을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달리 소망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1:30절을 보면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자랑할 것이 없어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까? 그러면 바울은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자신이 약할 그 때에 그리스도가 강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2:10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본성상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강하고 잘 됨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못되고 실패하고 연약해지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를 보십시오.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 사도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이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강하시다고 합니다. 곧 자기가 약할 때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증거 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4:7절을 보면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구별하여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라면 모든 것이 다 받은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무언가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자기 자랑이 나온다면 그것은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도 바울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고린도전서 4:9-13절을 보면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이런 모습을 보고 누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여기겠습니까? 도저히 사람의 이론과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런 모습의 하나님의 종들을 환영하시겠습니까? 아니 자기 자신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환영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론과 생각을 다 부수어버리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고린도후서 10:5절 말씀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아담의 후손들이 하는 모든 이론과 생각이 어떠한 것입니까?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보다 더 높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죄악된 욕망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롬 1:21-23).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모든 우리 인생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 부수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신 것은 바로 이를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반발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다 부수어버리시기 위해 오셨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을 다 부수어버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는데 이 세상은 그 독생자를 어떻게 하였습니까? 자신들을 높여주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이미 멸망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무너뜨리고 부수어버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10절을 보면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면서 보내십니다. 그가 할 일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다”고 합니다.

 

또 이사야 2:11-17절 말씀을 보면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여호와의 날이 어떻게 임하는 것입니까? 모든 교만한 것들을 다 굴복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산이나 나무나 망대나 성벽이나 모든 아름다운 것들까지 높아질 만한 것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어서 보기 좋다는 것들, 훌륭하다는 것들,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불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위엄에 차고 영광스러운 여호와 앞에 누가 굴복하지 않겠습니까? 유대인들도 메시아가 이런 모습으로 왔다면 다 굴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참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영광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모두가 저주스럽다고 고개 돌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고린도후서 10:5절 말씀을 보면 “모든 이론과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영광스러운 여호와 앞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깨어지지 않고 교만한 모든 인간을 벌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겠습니까? 예수님의 부르심과 초청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에 함께 죽는 길로 부르신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마귀가 자기에게 절하면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절하지 않고 예수님께 엎드려 굴복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란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곳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자신이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의롭다 진리다 옳다고 여겨온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전부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앞에 복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사람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마 19:26).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 것입니까?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임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복종합니다. 자신의 모든 이론과 생각이 파하여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6:9-16절 말씀을 보면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에 행하여야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가다가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께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의 기원이며, 바울의 사도직의 기원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지고 나서 세움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자신의 자랑과 의는 모두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며, 자랑임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하여 자신은 늘 무능력자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복종된 자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무너지고 깨어지고 나서 새롭게 세워진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우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5절 말씀에 보면 모든 것을 다 파하고 무너뜨리고 복종하게 한 것이 먼저입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5). 주께서는 모든 것을 파하고 무너뜨린 후에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서 무너지고 나서 세움을 입었던 것처럼 지금 고린도 교회의 모든 높아지고 교만한 생각들을 무너뜨리고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권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권세란 십자가를 증거 하는 권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무너지고 세워져야 하는 것을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무엇을 잡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려갈 뿐이라고 합니다. 땅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을 소망한다고 합니다. 빌립보서 3:13-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9-11절 말씀을 보면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바울의 편지는 중하고 힘이 있는데 그 몸으로 대할 때에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외모가 보잘 것 없었습니다. 키도 작았고, 늘 병마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글에 비해 말을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와 같은 바울의 외모를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편지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편지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주님께서 주신 권세에 순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권세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높아진 우리의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파하여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증거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30 [골로새서 3장] 주께 하듯이 하라 file 골 3:18-4:1 손재호 1614
329 [하박국 3장] 부흥케 하옵소서! file 하박국 3:1-15 손재호 1617
328 [데살로니가후서 3장] 마지막 당부와 인사 file 살후 3:6-18 손재호 1619
327 [오바댜 1장] 오바댜에게 임한 묵시(에돔의 멸망) file 오바댜 1:1-14 손재호 1620
326 [야고보서 5장] 부자들에 대한 경고 file 야고보서 5:1-6 손재호 1624
325 교회론 특강(교회의 표지-권징의 바른 시행) file 1626
324 [레위기5,6장] 속건제 file 레 5:14-6:7 최상범 2015-08-09 1626
323 [빌레몬서 1장] 믿음의 교제 file 빌레몬서 1:4-10 손재호 1627
322 성경적 인간관(6) file 1628
321 소요리문답 제 39-42 문 file 1634
320 사도신경 10강 보충강의(진정한 친교의 실제) file 1634
319 성경적 교회론(1) file 1638
318 호세아 보충강의(7) file 1639
317 2007년 사도신경 서론 file 1640
316 [야고보서 1장] 듣기를 속히 하라 file 야고보서 1:19-21 손재호 1640
315 [레위기 6-7장] 제사장을 위한 지침 file 레 6:8-7:38 최상범 2015-08-26 1644
314 교회론 특강 '교회의 사명' 1647
313 [야고보서 1장] 시험을 참는 자 file 야고보서 1:12-18 손재호 1653
312 [에스더 6장] 왕이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다 file 에 6:1-14 손재호 2016-04-06 1653
311 소요리문답 강설(제13문) file 165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