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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0:12-18
성경본문내용 (12)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13)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14)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15)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16)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17)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강설날짜 2014-09-10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말씀:고린도후서 10:12-18

 

지난 시간에 우리는 주께서 주신 권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고후 10:7-11).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파하고 무너뜨린 후에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 다시 세움을 입었던 것처럼 지금 고린도 교회의 모든 높아지고 교만한 생각들을 무너뜨리고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권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세란 십자가를 증거 하는 권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십자가 앞에서 무너지고 세워져야 하는 것을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8절에 보면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후서 10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비교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헤아리고 비교하는 기준을 객체에 두지 않고 주체에 두는 곧 자화자찬하는 지혜가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자화자찬하는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자기를 칭찬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난 뒤에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떠난 뒤에 고린도 교회에 선생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추천장을 가지고 온 자들 입니다. 그들은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는 남을 깎아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사도답지 않다고 여러 가지로 트집을 잡으며 깎아 내린 것입니다. 사도라면 어떻게 저렇게 고난을 많이 당하고 비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됨을 부정함으로써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를 칭찬하고 자랑하는 자들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좀더 알기 쉽게 번역한 새 번역으로 보면 “우리는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 축에 스스로를 끼어 넣거나 그들과 견주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가 만든 척도로 자기네 스스로를 재고, 자기네가 세운 표준에다가 자기네 스스로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생들이 자기를 비교하는 기준은 자기들이 만든 척도, 자기들이 만든 표준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기준으로 자기들 스스로를 재고 비교하고 있으니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어리석은 자들이 오늘날은 누구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곧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의 모든 인간들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가 더 선한가를 비교 합니다. 누가 더 아름다운가를 비교 합니다. 그런데 그 비교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제각기 다 다른 것입니다. 다 자기 자신의 기준에 근거해서 생각하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목이 길어야 미인 대접받는 미안마의 빠따웅 족은 목에 링을 끼워서라도 목을 늘립니다.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방송에 보면 아마존의 어떤 부족은 입술을 뚫어서 막대기를 끼웁니다. 우리가 볼 때는 너무 흉측하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어떤 사람이 미인 대접을 받습니까? 일단 날씬해야 미인대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계란형이어야 하고, 쌍꺼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이런 모습으로 성형수술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나라는 뚱뚱해야 미인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세상의 기준들과 척도들을 다 부수어 버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모든 높아지고 교만한 생각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을 부수어 버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부수어지고 깨어진 자는 다시는 자기를 남과 비교할 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 하기를 잘합니까? 도토리 키재기를 잘하는 것입니다. 누가 더 잘했는가 못했는가를 따지는 것입니다. 성과급을 나누는 모습이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14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외모를 따라, 육체를 따라 자랑하는 자들은 자기를 기준으로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종은 그 기준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눠주신 분량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량대로 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고린도지역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한 것일 뿐이지 자신이 많이 개척하고 늘렸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7-9절 말씀을 보면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 자기의 세력을 확대하거나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한계를 따라 행한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일에 사용하신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한다고 합니다. 로마서 15:17-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다고 합니다. 로마서 15: 20-21절 말씀을 보면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전한 것은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는 또한 주의 소식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전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15-16절을 보면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새 번역으로 보면 “우리는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남을 따라 우리의 활동 범위가 여러분 가운데서 더 넓게 확장되어서,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지역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요, 남들이 자기네 지역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남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자기의 공로인양 자랑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남의 수고를 가지고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 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분량 밖에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곧 자기 분수를 넘어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까? 무언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이면 자기의 공로를 부각시키면서 남의 수고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책망 받을 일 같으면 자기의 잘못은 최소화하고 남의 잘못을 더 크게 부풀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사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늘 일어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17-18절을 보면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놓고서 주님의 이름만 부른다고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그 십자가만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불순종하고 자기만 자랑하고 자신만을 기준으로 살았는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 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이방인 백부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런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를 개가 먹듯이 자신이 개와 같은 자임을 아는 모습이 바로 주님이 칭찬하시는 모습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중에 나사로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입니다. 만물의 찌끼와 같은 대접을 받은 사도 바울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남과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일체 자기의 자랑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우리는 자신이 늘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자기를 부인하기 보다는 언제나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좋게 보는 것이 우리의 본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준을 자기를 중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내가 우선인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조차도 나를 좋게 해주어야 좋은 주님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모든 기준을 자기를 중심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은 율법을 기준으로 살고 있다고 하면서도 율법에만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를 하니 다른 사람이 잘 못하고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9-14절을 보면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리새인이 누구였습니까? 바울 사도 자신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비교하면서 자기를 자랑하지만 바울 사도는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 그것도 율법에 충성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선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완전히 부수어지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바울 사도는 남과 비교 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을 자랑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피곤하게 삽니까? 남과 비교를 하면서 살기에 피곤한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족하면서 살면 되는데 늘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보기 때문에 늘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주님을 만나고서는 삼일 동안 장님이 되었다가 아나니아라는 주님의 제자가 주님의 지시를 받고 안수합니다(행 9장). 그러자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보게 되고 주님의 말씀대로 성령으로 충만케 됩니다. 이때부터 남과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바리새인으로 얼마나 남과 비교하면서 살았겠습니까? 율법을 알면서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나 율법을 알지도 못하는 자들은 저주 받은 인간으로 취급하였는데 이제는 이방인들의 사도가 되어서 이방인들보다 더 낮은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방인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1-5절을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남에게 판단 받는 것도 매우 작은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집에 있을 때는 대충입고 있으면서 밖에 나갈 때는 왜 꾸며서 나갑니까? 남을 의식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남과 비교를 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아십니까? 바울 사도는 남의 판단이 너무나 작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나도 나를 판단치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고전 4:3).

 

우리가 남은 의식하지 않아도 늘 자기 속으로 자기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늘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늘 그 일은 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스스로 판단하고 비교하고 자책하고 합리화합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자신을 의로운 자로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신을 자책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주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판단은 모든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실 주님께 맡길 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비교와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삶이 오직 우리 주님만을 자랑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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