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4 08:23

[레위기 3장] 화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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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레 3:1-17
성경본문내용 (1)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2)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3)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4)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5)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6)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7)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8)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9)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10)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11)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12)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13)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14)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15)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16)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17)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강설날짜 2014-09-24

레위기 4강


화목제


말씀 : 레위기 3장


1. 화목제란? 단어의 의미


화목제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물론 번제와 소제도 개인이 드릴 때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이지만,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아침저녁으로 항상 드려져야 하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전적으로 우발적으로 드려지는 제사로서 예배자가 드리고 싶을 때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목제는 원어로 “제바흐 쉘라임”이라는 단어입니다. ‘제바흐’는 희생제사를 말하고, ‘쉘라임’은 그 뜻이 확실치가 않습니다. 어떤 단어의 복수형임에 틀림없는데, 그 단어의 원형이 무엇인지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보답하다, 완성하다, 화친의 언약을 맺다”의 뜻을 가진 ‘샬람’이 이 단어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평안, 번영’의 뜻을 가진 ‘샬롬’이 이 단어의 어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는 ‘샬롬’이 결국 ‘샬람’에서 왔기 때문에 두 어근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한글성경은 ‘샬람’을 어근으로 보고 “화친의 언약을 맺는 희생제사”라는 의미로 ‘화목제’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번역본을 보면 아래와 같이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1) 평화제, 화목제(KJV, ASV, RSV등 대부분의 번역본) - a sacrifice of peace
2) 평안제, 번영제(NRSV) -a sacrifice of well-being
3) 친교제(NIV), 나눔제(NEB) - a sacrifice of fellowship


대부분의 영어번역본은 ‘sacrifice of peace’, 곧 ‘평화의 희생’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간혹 ‘친교제’와 ‘나눔제’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예배자와 그 가족, 그리고 온 이웃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배자가 희생제물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희생제사가 바로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이를테면 온 이스라엘이 함께 하나님 앞에서 불고기 파티를 하는 식탁교제입니다. 그래서 NIV나 NEB가 화목제를 ‘친교제’ 또는 ‘나눔제’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화목제 단어 자체의 의미를 따지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충 평화와 친교를 위한 희생제사라고만 정리하면 충분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의식이 어떠하고, 그 의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2. 레위기 3장의 구조


화목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레위기 3장의 전체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 3장은 아래와 같이 크게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5절 : 소 드리기
6-11절 : 양 드리기
12-16a절 : 염소 드리기
16b-17절 : 기름과 피에 대한 규례(레 7:22-27)


양과 염소 화목제 단락은 사실상 소 화목제의 반복이고, 마지막에 기름과 피에 대한 규례가 간단히 언급됩니다. 이 점은 나중에 7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되는데,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습니다.


3. 화목제 의식의 특징


먼저 1-5절까지의 소 화목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화목제의 희생을 위한 제물은 암수 구별 없이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른 희생제사의 경우는 수컷만 드리든지, 또는 암컷만 드리든지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제시되고 있는데, 유독 화목제의 경우는 희생제물에 대한 요구사항이 다른 희생제사의 경우보다 느슨합니다. 암수 구별 없이 드릴 수 있으며, 심지어 화목제의 한 종류인 낙헌제의 경우는 흠 있는 것으로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레 22:23). 이처럼 화목제가 암수로 드릴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찬양제이며, 또 함께 음식으로 나누기 위한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암컷 수컷 따지지 않죠. 마찬가지로 화목제 역시 그 희생제물을 함께 먹는 것이 핵심 포인트이기 때문에 암수를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목제의 의식이 어떠합니까?


(2)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먼저 예배자가 소를 회막문에 가져와서 소의 머리에 안수한 후 도살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소의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그릇에 담아서 그것을 단 사면에 뿌립니다. 이것은 앞서 배운 번제의 의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즉 화목제 의식에서도 속죄가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습니다. 사실 화목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드리는 것이며, 이웃을 섬기고 이웃과 함께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데 그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 화목제에도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감사와 찬양, 그리고 우리의 사귐과 친교에도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덧입혀져야 함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행위에는 여전히 죄의 찌꺼기가 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 하는 모든 행위는 죄가 됩니다.


이렇게 예배자는 속죄를 위한 희생절차를 밟은 다음에 그 제물을 성소 가장자리로 끌고 와서 번제와 마찬가지로 가죽을 벗기고 제물을 여러 부분으로 각을 뜹니다. 먼저 예배자는 제물의 기름부분과 콩팥과 간을 각을 떠서 제사장에 갖다 줍니다.


(3)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4)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우리는 기름하면 액체만 생각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기름을 내장주변에서 암만 찾아봐야 없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지방덩어리를 의미합니다. 제물의 내장을 덮고 있고 또 내장에 붙어 있는 모든 지방덩어리, 곧 내장지방과 복막을 취합니다. 그리고 두 개의 콩팥과 콩팥 옆에 힘줄에 붙어 있는 지방과 간을 취합니다. 한글성경에서는 “간에 덮인 꺼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간 말고 다른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간 그 자체를 말합니다. 간과 콩팥을 적출하여 바치는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간과 콩팥은 곧 감정과 생명의 중심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시 7:9; 애 2:11). 이러한 콩팥과 간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는 것은 곧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자가 이러한 기름부위와 간과 콩팥을 적출하여 제사장에게 갖다 주면, 제사장은 이미 드려진 번제물 위에 올려서 화제로 태워 드립니다.


(5)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여기서 보는 것처럼 화목제는 단독으로 드려지는 경우가 잘 없고, 자주 다른 희생제사, 곧 번제나 속죄제 속건제와 함께 드려졌음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렇게 기름부분과 콩팥과 간을 태워드릴 때, 그 연기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향기로운 냄새란 번제나 소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 예배가 열납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11절과 16절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됩니다.


(11)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16)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양의 화목제 단락의 11절과 염소의 화목제 단락의 16절에서는 단순히 향기로운 냄새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에 덧붙여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라고 말합니다. 식물이란 음식을 말합니다. 곧 화목제의 희생제사는 하나님께 최고의 음식대접을 해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제사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인데, 특별히 화목제가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화목제는 하나님만 식사하시는 자리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더불어 식사하는 식탁교제임을 잘 보여줍니다. 즉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가지고서 다 함께 식사하는데, 부위별로 나누어서 식사하는 것입니다. 기름과 간과 콩팥은 하나님이 드시고, 가슴부위와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이 먹고, 예배자와 그의 가족과 이웃은 그 나머지 부분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제란 불고기 파티인데, 하나님과 제사장과 예배자와 모든 이웃들이 함께 사랑의 식탁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식사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먹고 마심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식사하는 것은 단순히 하루하루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맛있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즐거움과 기쁨과 만족을 얻는 일종의 행복한 잔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분복입니다(전 3:13). 그런데 이러한 기쁨의 잔치를 아무나 초청해서 누릴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아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만 초청해서 식탁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같이 식사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하나로 섞인다는 것인데, 유대인이 부정한 이방인과 함께 섞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서 눈치 보다가 그 자리를 일어나 피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행위는 단순히 밥 먹다가 그냥 식사 자리를 옮긴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는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강하게 그를 책망했던 것이죠. 이렇게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언약적 사귐을 의미하며 사랑으로 연합한 긴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온 이스라엘이 화목제의 희생제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사귐과 연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화목제의 정신은 신약에서 성찬으로 성취됩니다.


참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양식으로 주셔서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영위해가도록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과 연합하고 무한한 희락 가운데서 주님과의 깊은 사귐을 가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온 회중들이 함께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 성도들 간에도 친밀한 영적인 사귐을 가지며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성찬식은 구약의 화목제보다 훨씬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는데, 구약에서는 피와 기름진 살이 금지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모든 살을 먹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림자와 실체 사이의 분명한 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어서 6-11절까지의 양 화목제 단락을 보겠습니다. 6-11절까지 읽어보면 소의 화목제 의식과 거의 동일합니다. 다만 9절에 독특한 부위가 등장합니다.


(9)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레 3:9)


여기서 “미려골에서 벤 바 기름진 꼬리”는 척추 뼈에서 베어낸 양의 꼬리부분을 말합니다. 팔레스틴의 양은 7kg이 넘는 무게의 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꼬리부분에 양질의 기름진 지방질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꼬리와 기름부분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12-16절까지 염소의 화목제 역시 소의 화목제와 거의 동일합니다. 그리고 화목제의 중요한 특징은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비둘기나 곡물로 대신 드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목제는 자원해서 드리는 것이지 의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형편이 가난하면 화목제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편이 안 되는데 화목제로 감사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 화목제드릴 때 함께 참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제의 핵심 포인트가 나눠먹는 것인데, 비둘기 가져와서 나눠먹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화목제는 최소한 나눠먹을 것이 있는 양염소 이상의 제물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16-17절의 피와 기름에 대한 규례입니다.


(16)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17)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16절에 보면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기름과 피를 먹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특히 여기서 아주 중요한 규례를 말씀하실 때 자주 사용되는 관용구인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지켜야 할 보편적인 규례라는 뜻입니다. 레위기 7장 22절 이하에는 이러한 규례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3)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24)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달리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 말지니라(25)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희생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26)너희의 사는 모든 곳에서 무슨 피든지 새나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27)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 7:22-27)


여기 보면 피와 기름을 먹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고 하는 무서운 경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피와 기름을 먹지 말아야 합니까? 우선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이미 창세기에서 노아에게 명해진 바 있습니다.


“(3)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5)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6)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3-6)


여기서 하나님은 동물을 식물로 허락하시면서 피 채 먹지 말도록 명하시고 아울러 살인을 금하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사람이 동물을 먹으려면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동물을 자꾸 죽이다보면... 부패한 인간이 생명을 경시하는 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기야 생명을 먹기 위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 죽이는 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가 결국 사람의 생명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부패성을 아시고 피를 먹지 말도록 엄히 명하신 것입니다. 피는 그 짐승의 생명을 의미하므로 피 채 먹는 것은 곧 짐승의 생명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음식은 짐승의 생명이 아니라 짐승의 생명이 만들어낸 고기덩어리입니다. 더 나아가 피 채 먹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생명을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답게 짐승을 먹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짐승들은 짐승을 잡아먹을 때는 피 채 먹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 없는 짐승처럼 먹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답게 짐승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선지국 먹으면 안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의미 없지만, 그 정신을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를 먹지 말라 하신 것이고, 그리고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에 피를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희생제사에서 피는 죄를 속하는데 다 사용되어야만 합니다.


한편 기름부분을 먹지 말도록 하신 것에는 분명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방덩어리가 몸에 안 좋아서 먹지 말라고 하셨다고 그러는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지방부분을 먹지 않음으로써 결과 되는 건강의 유익을 우리가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난센스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오늘날처럼 기름진 음식이 풍부한 시대가 아니라, 아주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름 부분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한 부분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부위로 여겨졌습니다.


“(14)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신 32:14)


지방이 우리 몸 전체에 중요한 구성요소로 퍼져 있는데, 하나님이 금지하신 지방은 지방으로만 구성된 부분들... 즉 내장지방만을 금하셨습니다. 동물의 지방질은 식물로 치면 열매부분과 같습니다. 식물에게 열매란 땅속에서 빨아들인 영양분과 수분을 먼저 줄기와 잎과 뿌리를 만들고 자라게 하는데 사용하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쓰고 나서 남아도는 영양분을 갖다가 그 엑기스만 모아서 맺는 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나무 스스로의 생존이나 자라남에 직접적인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본질적으로 농부나 다른 동물들, 곤충들을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나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면, 대부분은 자신의 살과 뼈로 만들어서 자라가는 데 쓰고, 또 활동하는 에너지로 사용합니다. 그러고 남은 영양분은 지방에다 저장해놓는 것이죠. 오늘날 지방덩어리는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몰리지만, 가난하고 배고팠던 옛날 시절에 지방덩어리는 부와 번영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방덩어리는 말하자면, 식물로 치면 열매부분이고, 가장 귀한 부분이고, 또 맛있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기름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말씀은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 귀한 부분은 제사장에게로 돌아갑니다. 가슴부분과 우편 뒷다리는 기름 부분 다음으로 가장 비싼 부위입니다.


“(2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9)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화목제의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 희생 중에서 그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가져오되(30)여호와의 화제는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31)그 기름은 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릴 것이며(32)또 너희는 그 화목제 희생의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33)아론의 자손중 화목제 희생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우편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라(34)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레 7:28-35)


그 다음 나머지는 예배자에게 돌려집니다. 십일조의 개념도 이러한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모든 소산물 중의 가장 귀한 부분을 십일조로 레위인들에게 줍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그 받은 십일조 가운데서 최상품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접대의 기본원리는 상대방의 지위와 높음에 따라 서비스의 품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서비스를 받는 상대방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 가장 존귀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릴 서비스는 최상의 서비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제물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귀한 부분인 기름부분을 하나님께 바쳐드립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그 다음에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우리 모두가 다 대제사장보다 더 뛰어난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소를 존경하고 높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최상의 섬김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4. 7장 11절 이하 부분


그러면 화목제를 왜 드리고, 하나님께 화제로 드린 나머지 부분들은 예배자에게 어떻게 돌아가며, 또 어떻게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내용이 레위기 3장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내용은 레위기 7장에 나옵니다.


사실 레위기 1-7장은 다섯 가지 제사법(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다섯 제사의 의식과 규례는 두 번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제사를 드리는 백성의 관점에서 소개가 되고(1:1-6:7), 이어서 제사장의 관점에서 제사의 규례가 소개됩니다(6:8-7:38). 이러한 사실은 이 단락들이 시작되는 서두에 나타난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첫 번째 단락인 1:1-6:7 단락에는 1:2에서처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라는 표현과 “누구든지”라는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면, 두 번째 단락인 6:8-7:38에서는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6:9,25)라는 표현과 그와 비슷한 표현이 자주 나타납니다. 따라서 각각의 제사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이 두 단락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사법:백성의 관점에서(1:1-6:7)

제사법:제사장의 관점에서(6:8-7:38)

1. 번제(1장)

2. 소제(2장)

3. 화목제(3장)

4. 속죄제(4:1-5:13)

5. 속건제(5:14-6:7)

1. 번제(6:8-13)

2. 소제(6:14-23)

3. 속죄제(6:24-30)

4. 속건제(7:1-10)

5. 화목제(7:11-36)

6. 요약(7:37-38)



특히 화목제의 경우는 더욱 이 두 부분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5. 화목제의 종류


“(11)여호와께 드릴 화목제 희생의 규례는 이러하니라(12)만일 그것을 감사하므로 드리거든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고(13)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리되(14)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15)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16)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17)그 희생의 고기가 제 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18)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 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레 7:11-19)


7장 11절 이하 부분을 보면 화목제에는 세 가지 종류의 제사가 속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감사제와 서원제, 자원제(낙헌제)입니다. 이 세 가지 모든 제사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평안,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조금씩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감사제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낫게 되었다든지,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 그 구원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며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찬양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특별한 서원을 하지 아니한 경우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공적으로 언약갱신을 하거나 왕을 임명하거나 성전을 봉헌할 때도 이 감사제를 드렸습니다(삼상 11:15; 왕상 8:63-66). 특히 솔로몬이 성전봉헌식할 때, 소와양, 염소 수십만 마리를 화목제로 드렸는데, 이것은 많이 바쳐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성전봉헌식 때 모여 있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두 풍족한 고기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많이 드린 것입니다.


반대로 똑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해서, 하나님께서 그 서원을 들어주셨을 때,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바로 서원제입니다. 예를 들면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하나님이 그 서원을 들어주심으로 다시금 나중에 야곱에 벧엘에 와서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 바로 이를테면 서원제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가 아들이 없는 가운데서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는데, 하나님이 그 서원을 들어주시자 한나가 세 마리의 수소와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로 서원제를 드렸습니다. 엄청난 양의 제물은 한나의 남편인 엘가나가 부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나의 감사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줍니다. 서원제는 특별한 서원을 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렇게 서원제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빌었던 소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을 때, 그 은혜를 갚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았는데도, 서원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은혜이지만, 그러나 은혜 받은 인격은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목숨을 드려 갚으려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편 마지막으로 자원제 또는 낙헌제는 역시 구원의 은혜나, 하나님이 베푸신 선하신 은혜를 깨닫고 드리는 자발적인 제사를 말합니다. 이것은 추수하고 나서 풍성한 곡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드리거나, 여러 가지 축제나 축일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드리거나, 또는 원수의 손에서 건짐 받았을 때 그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신 16:10; 시 54:6-7). 사실 내용상 감사제, 서원제와 비슷하기는 한데, 감사제보다는 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제사였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감사제에 비해서 제물의 요구수준이나 의식이 매우 간소했기 때문입니다.


“(23)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낙헌 예물로는 쓰려니와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레 22:23)


무엇보다도 이러한 감사제와 서원제, 낙헌제로서 화목제는 그 자체로 단독으로 드려지는 제사가 아니라, 항상 복합적으로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졌습니다.


“(12)만일 그것을 감사하므로 드리거든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고(13)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리되(14)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레 7:12-14)


감사제를 드릴 때는 소제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화목제와 더불어 소제를 드릴 때는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요리된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제는 그날 함께 다 먹고 마시고 하루 만에 끝나는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특징은 누룩이 없는 무교병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유교병도 드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교병은 맛이 없고 먹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잔치하는데 맛없는 거 갖다 놓고 먹으라고 하면 고문이지 잔치가 아닙니다. 그래서 잔치의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 맛있는 유교병이 허락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리는 소제와 유교병에서 각기 하나씩 하나님께 거제로 드립니다. 거제란 제사의식 중의 하나가 아니라, “기부, 선물, 봉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님께 봉헌하여 바치고, 그것을 제사장에게 소득으로 돌립니다. 이것은 제사장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제의 희생은 그날 당일에 다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고기가 부패하기 때문에 위생상 하루 만에 먹도록 하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눠주는데 인색하거나 구두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감사제는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축제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본성상 귀한 고기를 집에 쌓아놓고 두고두고 먹고 싶은 유혹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방지하시기 위해 하루 만에 다 먹도록 하셨고, 남아있는 것은 다 불태우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한편 서원제나 낙헌제는 이틀까지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서원제나 낙헌제가 보다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감사제보다 함께 나눠먹는 인원수가 작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서원제와 낙헌제의 희생제물을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나누는데, 사람 수가 작다보니 이틀에 걸쳐서 먹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고기를 먹는 것은 굉장한 사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온 가족끼리 아주 값비싼 호텔의 뷔페집에 가는 것과 같은 식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부자들만 그러한 고기파티를 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온 이웃들과 함께 아낌없이 나누도록 하신 것입니다. 레위기 17장에 보면 누구든지 고기를 먹으려면 무조건 화목제로 드려서 온 이웃이 나눠먹도록 하셨습니다(이 규례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하는 기간에만 유효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는 자세를 드리지 않고도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신 12:15-25].).


“(3)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잡든지 진 밖에서 잡든지(4)먼저 회막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5)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희생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6)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레 17:3-6)


어차피 화목제의 고기는 비축하여 남겨 놓을 수가 없으니, 아낌없이 나누었던 것이고, 때문에 가난한 자들도 화목제를 통해 맛있는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웃과 친척들이 함께 어울려 화목제 식사를 하며 진정한 평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가 그냥 먹고 마시는 잔치가 아니라 그것이 제사의 의식 가운데 하나이고, 예배의 행위였습니다. 화목제는 식사가 종결되어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이 화목제의 제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결해야만 했습니다.


“(19)그 고기가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사를 것이라 그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을 것이니(20)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요(21)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 7:19-21)


부정과 정결예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배울 것입니다. 미리 간단히 살펴보면... 부정한 자는 이 예물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목제의 희생의 고기는 거룩한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으로서 온전히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막의 모든 기물과 희생제물의 고기와 그리고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제사장들)까지도 다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그 성막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정한 것이나 부정한 자가 이 거룩한 성막에 들어오거나, 성막의 기물에 접촉하거나, 거룩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었을 때에는...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한 것이기 때문에 접촉하는 즉시 죽임당하는 것입니다.


레위기에서 부정이란 하나님 앞에서 더러워진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바퀴벌레를 혐오하고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그 바퀴벌레가 생김새가 혐오스럽고 또 실제로 위생상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퀴벌레를 보는 즉시로 발로 밟아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부정한 채로 있게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혐오의 대상으로서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부정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결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사함과 정결함을 얻게 하는 정결예법과 제사제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이 은혜의 방도에 집착하여 때를 따라 돕는 정화의 은혜를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과의 충만한 교제 가운데 살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정결하고 거룩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부정하게 살면서, 그리고 그 부정을 씻을 수 있는 은혜의 방도도 거부하면서, 자신의 죄와 부정을 고집하다가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백성의 총회에서 제명당하는 것입니다. 제명은 곧 저주의 형벌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러한 거룩과 정결의 의미는 신약백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높고 완전한 차원의 거룩과 정결이 요구됩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려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룩의 등급이 있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레위인들이 더 거룩했고, 레위인들보다도 제사장이 더 거룩했고, 제사장보다도 대제사장이 더 거룩했습니다. 대제사장은 가장 높은 등급의 거룩의 지위를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대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에게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과 정결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신약의 백성들은 대제사장들보다 더 높은 등급의 거룩의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완전히 거룩하고 정결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나아간 자들이지만, 우리 신약백성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성령님께서 영구적으로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그림자에 불과한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겼지만, 우리 신약의 백성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성령이 거하시는 참 성전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조금도 부정함이나 죄가 없는 완전히 거룩한 상태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성령의 임재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은혜는 우리가 구약의 백성들보다 더 거룩하거나 뛰어난 것도 아닌데, (똑같은 죄인인데)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재 하셔도 우리가 죽지 아니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느냐 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씻음 받고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히 10:14). 그래서 이 은혜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주님과 동행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은혜는 완전하여 구약처럼 반복해서 제사와 정결예법으로 부정을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 목욕한 자는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이 은혜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주님의 씻으시는 은혜는 우리의 죄책과 신분뿐만 아니라, 우리의 본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이 은혜가 우리에게 미쳐서 우리의 본성이 날마다 변화되어 실질적으로도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욕은 반복될 수 없지만, 그러나 발을 씻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4)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5)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6)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7)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8)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 4:3-8)


곧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모든 음란과 부정한 것을 버리고, 또 때때로 음행죄를 지었을 때는 즉시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붙잡아서 다시 정화되는 은혜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부정한 것을 미워하고, 싸우고, 버리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충만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주님과의 화목제 희생고기 잔치에 참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와 부정의 상태를 고집하는 것은 곧 우리를 거룩함으로 부르신 성령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음행죄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 자꾸 떠나가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주님의 거룩하신 성전을 더럽힘으로써 하나님 그분 자신을 침입해 들어가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피를 믿어 의지해야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모든 더러운 죄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리고, 세속에서 자기를 지켜 깨끗하게 하며, 모든 삶에서 거룩을 좇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주님과의 어떠한 신령한 교제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로 영적으로 각성시켜주셔서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금 돌이킬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화목제의 희생제물 되시는 주님께 날마다 은혜로 참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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