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118
  • 어제방문자 : 
    1,174
  • 전체방문자 : 
    1,415,308
조회 수 2384 추천 수 0 댓글 0
Atachment
첨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레 4:1-5:13
성경본문내용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3)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4)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5)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6)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7)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8)또 그 속죄 제물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할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9)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10)화목제 희생의 소에게서 취함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11)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12)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지니라(13)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14)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15)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16)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17)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18)또 그 피로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는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19)그 기름은 다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되(20)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21)그는 그 수송아지를 진 밖으로 가져다가 첫번 수송아지를 사름 같이 사를지니 이는 회중의 속죄제니라(22)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23)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수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24)그 수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을지니 이는 속죄제라(25)제사장은 그 속죄 희생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26)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희생의 기름 같이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27)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28)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29)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30)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31)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32)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 제물로 가져 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33)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아 속죄제를 삼을 것이요(34)제사장은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전부를 단 밑에 쏟고(35)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의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1)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2)누구든지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부지중에라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3)혹시 부지중에 사람의 부정에 다닥쳤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4)혹 누구든지 무심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5)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6)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7)만일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속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여호와께로 가져 가되 하나는 속죄 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8)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 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9)그 속죄 제물의 피를 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단 밑에 흘릴 지니 이는 속죄제요(10)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범과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11)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인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12)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취하여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13)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한 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강설날짜 2014-10-08
레위기 6강

속죄제(2)

말씀 : 레위기 4:1-5:13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해서 속죄제 의식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까지 우리는 속죄제의 독특한 피 처리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속죄제 제물의 희생의 피가 예배자의 죄와 부정을 깨끗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 예배자로 인하여 더러워진 성막 역시 깨끗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신분에 따라 뿌려지고 발라지는 부분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즉 예배자가 성막의 어느 장소까지 출입이 가능한지에 따라서 피를 뿌리고 바르는 위치가 달라집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죄는 지성소까지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성소는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으므로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에다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휘장은 지성소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휘장에 그룹 두 개가 수놓아져 있는데, 그것은 지성소 언약궤의 뚜껑에 있는 그룹들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소를 대신하여 휘장에다가 뿌립니다. 그리고 향단 뿔에도 바릅니다. 한편 이스라엘 족장이나 평민은 번제단이 있는 성막 뜰에까지만 출입할 수 있으므로 족장이나 평민의 죄는 성막의 뜰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 뿔에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는 조금 독특합니다. 이것은 개개인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고 또 온 이스라엘이 범죄한 경우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대제사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립니다. 이것은 온 이스라엘의 죄가 온 이스라엘의 진영을 더럽히는 행위이므로 지성소까지 더럽히는 죄가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배자의 신분에 따른 차이점이 피 뿌림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고기처리에서도 나타납니다. 우선 대제사장의 속죄제일 경우에는 고기의 기름부분과 콩팥, 간 부분은 화목제와 마찬가지로 번제단에 태워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그 나머지 모든 부분, 곧 가죽부터 모든 고기, 머리, 다리, 내장, 똥 등... 그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태웁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 외에 어떠한 부분도 사람에게 분깃으로 돌아갈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온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족장과 평민의 속죄제일 경우에는 그 나머지 부분을 다른 제사와 마찬가지로 제사장의 몫으로 돌립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대제사장과 온 회중의 죄가 평민이나 족장의 죄에 비해서 너무 크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고기들이 죄로 부정하기 때문에 부정한 진 바깥에 갖다 버리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본문을 잘 살펴보면 타당성이 별로 없는 해석입니다. 우선 진 바깥은 부정한 곳이 맞지만, 성경은 진 바깥의 재를 버리는 곳은 부정하지 않고 정결한 곳이라고 증거합니다.

“(12)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지니라”(레 4:12)

그리고 아무리 죄에 있어서 상대적인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똑같이 죽어 마땅한 부정한 죄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속죄제의 경우 그 죄가 너무 심각해서 먹을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더욱이 예배자로부터 제물에게로 전가된 죄는 죽음을 통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입니다. 피를 흘렸는데도 죽은 제물 안에 여전히 죄가 남아있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음 구절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25)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레 6:25)

모든 속죄제의 희생의 고기는 거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제사를 통해 희생제물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졌고, 이제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선택된 거룩한 제사장마다 반드시 먹도록 하였습니다.

“(29)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30)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레 6:29-30)

그러나 대제사장과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의 희생고기는 예외적으로 먹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성소에 들어가서 피를 뿌리고 발랐기 때문에 먹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다른 본문에서 찾아야 하는데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죄로 부정해서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지극히 거룩하기 때문에 대제사장도 먹을 권한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희생제사 규례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바로 희생제물의 고기는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한 것이며, 그것은 예배자와 하나님 사이를 중보한 중보자에게 돌아갈 몫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보자가 그 희생고기를 먹는다는 것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로 중보의 사역에 전념하는 자들은 기업이 없었으므로 그 중보의 일을 함으로써 나온 고기를 그들의 응식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렇게 희생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자의 예물을 기뻐 받으셨다는 표시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제사장이 그들의 고기를 먹는 의미가 있습니다. 셋째로 또한 그 희생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새생명과 힘을 공급받는다는 표시로 제사장이 예배자를 대신하여 먹습니다.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는 예배자가 먹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예배자에게는 그것을 먹을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대신해서 먹어주는 것입니다. 왜 예배자가 먹으면 안 됩니까? 그것은 그 고기가 지극히 거룩한 제사장의 중보로 하나님께 바쳐진 지극히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은 거룩한 자만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에 거룩의 등급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룩

정함

부정함

사람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이스라엘

이방인

장소

지성소

성소

성막 뜰

이스라엘 진영

진 바깥

시간

대속죄일

절기 및 안식일

월삭

평일

음식

희생제물

화목제희생제물

정한동물

부정한 동물


이렇게 구약은 질서를 따라서 거룩의 등급이 매겨져 있습니다. 여러 등급의 거룩이 있지만, 결국에 따져보면 세 가지 등급이 있죠. ‘거룩-정함-부정함’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룩은 거룩끼리... 정한 것은 정한 것끼리... 부정한 것은 부정한 것끼리 엮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언가가 엮이거나 접촉하거나 함께 있기 위해서는 등급의 일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극히 거룩한 희생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제사장이 지극히 거룩한 성막 안에서만 먹어야 합니다(레 6:25-26; 대상 23:13). 한편 화목제물 중에서 예배자에게 돌아가는 나머지 고기는 그보다 덜 거룩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희생제사에서는 모두 예배자의 예물을 지극히 거룩하다고 표현하면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유일하게 평민에게 돌아갈 화목제물에 대해서는 그런 표현이 없기 때문입니다(레1-7장 참조; 민 18:9-10). 즉 화목제물은 그냥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한 자만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레위기는 이스라엘 평민들 가운데 정결한 사람이면 아무나 먹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화목제 희생을 통해 피가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원리를 우리가 보는데, 바로 정결한 존재는 거룩에 접촉하기 위해서 반드시 희생제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피 흘림을 통해 사함을 받으면 정결한 존재는 거룩하게 되어 거룩의 영역과 얼마든지 접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희생제사

정결예식

거룩

정함

부정

시간의 흐름

피부병,출산,유출

부정과 접촉


그러면 한편 정한 존재와 부정한 존재가 접촉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한 존재가 부정 타게 됩니다. 부정이 그 정한 존재를 정복하여 똑같이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정한 존재는 결코 거룩의 영역과 엮일 수 없습니다. 만일 부정이 거룩과 엮이게 된다면, 거룩의 영역이 그 자리를 떠나든지, 또는 거룩의 영역이 그 부정한 존재를 파괴하고 죽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부정한 자가 성물을 먹거나 성막에 나아오면 반드시 죽임당하거나 이스라엘 총회에서 끊쳐지는 것입니다. 부정한 자는 그러므로 성막에 나아와 예배할 수 없습니다. 부정한 자는 먼저 정결예식을 통해 정함을 입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성막에 나아와 희생제사를 드려 거룩의 영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한 상태란 희생제사를 통해 거룩의 영역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준비된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정함과 부정함에 대해서는 나중에 11장에 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정결한 예배자가 희생제사를 통해 거룩하게 되어 능히 성막에 나아와 하나님과 대면하여 예배하는 거룩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입니다. 희생제사를 드릴 때만 거룩해져서 거룩의 영역에 잠시 참여할 수 있을 뿐, 끝나면 다시 정함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막으로 나갈 때마다 희생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계가 있는데, 그것은 예배자가 그 희생제물을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희생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제사장의 중보에 의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써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예배자가 먹으면 좋겠지만, 예배자는 지극히 거룩하지 않기 때문에 먹을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거룩한 제사장이 대신 먹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 예배자로 서게 되는 대제사장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만일 대제사장보다 더 높은... 더 온전한 거룩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하나님과 대제사장의 중보자로 서서 이 제사를 집례하고, 그리고 그 중보자가 그 심히! 지극히 거룩한 희생제물을 먹을 것입니다. 

거룩

사람

?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음식

대속죄제 희생제물

희생제물

화목제희생제물


그러나 문제는 구약에서는 대제사장보다 더 높은 거룩의 영역의 대제사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보면 대제사장보다 더 높이 있는 특별한 대제사장입니다. 레위기 8장에 보면 모세는 대제사장 아론의 중보자로 나서서 아론의 대제사장 위임식을 친히 집례했고, 속죄제도 집례하고, 특히 수양의 위임식의 경우에는 요제로 드린 가슴 부분을 모세의 응식으로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바로 대제사장과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는 중보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세 본인은 아론 대제사장을 중보하기 전에 본인의 죄에 대해서 무슨 제사를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모세는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드리지 않고, 곧바로 아론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의 사역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독특한 위치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대제사장보다 더 높이 있는 스페셜제사장으로서 죄가 없으셔서 먼저 자기를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참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세도 대제사장의 속죄제 희생고기만큼은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하므로 실체에 비하여 분명한 한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과 온 회중의 속죄제 희생고기는 대제사장보다 더 높아서 대제사장을 중보할 수 있는 심히 지극히 거룩한 자만이 먹을 수가 있는데, 구약에는 그런 자가 없기 때문에... 그 고기를 아무도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재 버리는데 태워버려서 아무도 먹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히브리서 본문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9)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10)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11)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히 13:9-11)

10절에 보면 신약백성인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제단은 곧 대속죄일날 드리는 속죄제의 희생의 고기를 먹을 권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일체 먹지 못하고 영문 밖에서 불살랐지만, 우리 신약의 성도들은 그것을 불사르지 않고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죄가 심각해서 못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먹을 권한을 가질 사람이 없어서 못 먹었는데, 신약이 도래함으로써 그런 권한을 우리 성도들이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성도가 구약의 대제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얼마나 온전하고 거룩한 지위에 있는 자들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모든 부정과 죄를 영원히 씻음 받아 온전히 거룩하고 정결케 되어 우리 자신이 곧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거룩한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성도들이 참여하지 못했던 것에 참여할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곧 참 속죄제물 되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우리가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레위기에서 왜 대제사장과 온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제의 고기는 먹지 못하도록 하셨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 신약의 성도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때가 차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신약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비밀로 감추어 놓으시고 또 누리지 못하도록 막아 놓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시킨 대로 할 뿐이지만, 우리는 구속의 비밀의 경륜을 다 아는 상황에서 돌아보니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놀라운 특권인지를 분명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약백성들에게 속죄제물을 먹지 말고 진영바깥에 불태우도록 하신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진영 바깥에서 죽임 당하실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12)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2-13)

극악무도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형벌은 거룩한 예루살렘 진영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영 바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셔서 죄인의 신분으로 백성들로부터 능욕을 받으사 영문(진영)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희생의 사랑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입어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받은 우리로서는 이제 자신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가신 고난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에게 대제사장의 속죄제물을 먹지 못하도록 하신 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능욕을 지시고 영문 밖에서 고난당하심으로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할 때, 그리고 구약의 성도들, 특히 대제사장조차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우리 신약의 성도들은 먹을 수 있게 되었음을 생각할 때, 참으로 우리는 감격하며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 믿음, 이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야 하는데 실제 우리는 어떻게 살죠? 감사와 감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이 무엇인지, 그 은혜로 우리가 어떤 자가 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그를 섬기는 자유에서 떠나 율법의 종이요 죄의 종으로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고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사 성전 삼아주셔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대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속죄제물을 먹는 은혜와 특권을 전혀 누리지 못하면서 죄와 율법 아래서 스스로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그들이 먹고 싶어도 자격이 안 되어서 못 먹었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이 다 먹도록 해주셨는데도 자기 스스로 먹기를 거절하고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히브리서 본문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 9절을 보면 구약의 음식법을 이야기합니다. 즉 구약의 율법이 폐지되고 신약이 도래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약에 얽매여서 율법주의적으로 사는 자들은 구약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 속죄제의 희생제물을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히브리서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죄와 율법의 종으로 살던 데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 지 깨닫고 바로 이 나의 죄 때문에 죄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되셨음을 알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그리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와 특권이 어떠함을 깨달아서, 믿음과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은혜를 받은 자는 이제 예전과 같이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주님이 부르신 목적을 따라 거룩한 자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대제사장이 얼마나 거룩의 열망을 가지고 살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대제사장에게는 가장 엄격한 정결규례와 법도가 적용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심지어 가족이 죽어도 그 장례식에 갈 수 없었습니다(레 21:10이하). 시체나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자기도 부정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모든 부정에서부터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부정 타지 않기 위해 늘 노심초사하면서 주의 깊게 살피며 살아야 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부지중에 저지른 허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지나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손으로 땅을 집다가 부정한 곤충의 사체에 접촉하게 되었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미 부정하게 된 것이며, 이 부정을 속죄하기 위해 수송아지 한 마리를 하나님께 속죄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수송아지면, 오늘날 차 한 대 가격입니다. 한번 부정해질 때마다 차 한대씩 날아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큰 죄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대제사장이 하루하루를 얼마나 피곤하게 살았을 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앉으나 서나 잘 때나 생활할 때나 언제나 “하나님께 성결” 이 하나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정신이 대제사장에게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더욱 우리에게 있어야 할 정신입니다. 우리는 이 대제사장보다 더 높은 거룩의 경지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마음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외적으로 죄를 안 짓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모든 악하고 더러운 마음도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마음에서부터 모든 죄와 부정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별로 죄 가운데 사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구약은 율법의 때요 신약은 은혜의 때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걱정 없이 죄를 짓는 데로 나아갑니다. 여러분, 만일 대제사장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단 하나의 죄를 지을 때마다... 아니, 아예 마음속에 단 하나의 악한 생각이라도 품을 때마다 소 한 마리씩 바치도록 했다면, 우리가 잠시 스쳐지나가는 악한 마음에 대해서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며 그것과 철저하게 싸우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구약과 같이 그런 조항이 없으니깐 맘 편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마음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그 죄 된 마음 하나 때문에 소 한 마리 정도가 아니라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제사장보다도 더 치밀하게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또 죄와 싸우며 거룩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서 “일반백성들보다는 족장의 죄가 더 크고, 족장보다는 대제사장의 죄가 더 크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적용하면서 “똑같은 죄를 지어도 일반성도들보다는 직분자들의 책임이 더 크고, 직분자들보다 목사의 책임이 더 크다”라고 적용합니다. 물론 이 본문가지고 그렇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목회자의 죄가 더 큽니다. 

“(48)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 3:1)

그러나 이 본문을 가지고서 단순히 그렇게만 적용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신도라도 본문의 대제사장보다 더 높은 등급의 거룩의 지위에 있는 자들이요 우리 모두가 다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성전 아닌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제사장보다도 더 거룩을 열망하며 살아가야 할 필요성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책임이 큰 것은 목회자가 제대로 사역하지 않으면 온 교회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먼저 영적각성되어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또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각성되어서 주님께로 돌아와 함께 거룩을 열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이 부정 안 타려고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그렇게 치밀하게 매사에 주의를 기울이며 살았듯이, 우리도 우리 마음이 성전이기에, 우리가 죄나 더러운 마음을 품지 않기 위해서, 우리마음을 세상의 더러운 죄들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늘 마음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마음지킴의 교리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23)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 마음이 우리의 신앙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그리고 오감을 통해 들어온 유혹이 또는 우리 마음 안에서부터 올라온 정욕이 어떻게 우리 마음에 착상되고 뿌리를 내려서 우리 마음을 지배하여 우리로 죄를 짓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오고가는 수십만 가지의 생각들과 감정들을 그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서 혹시 성전인 나의 마음이 죄로 더럽혀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그렇게 거의 편집증 환자 수준으로 죄와 부정을 혐오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삶,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에 잠깐 스친 단 하나의 죄 된 마음을 품기라도 했다면, 그것을 작고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그거 하나 붙잡고 울며불며 애통하고 고통가운데 회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5)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6)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3-8)

성도의 목표는 그분의 깨끗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깨끗하게 사는 것으로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작은 티 하나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혹시 우리가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또 거룩한 삶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우리가 온갖 죄와 부정으로 우리 마음이 더렵혀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음란과 부정한 것으로 우리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소멸하고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행위입니다.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고, 바로 그 죄와 불신앙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셨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려 주님께로 회개하며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히 거룩하게 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신약성도로서 가지는 은혜와 특권을 감사와 감격가운데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는 언제나 사명을 낳습니다. 즉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을 세속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지키는 삶을 사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참고> 극빈자들을 위한 속죄제 규례

극빈자의 경우에는 비둘기 두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번제로 하나는 속죄제로 드리도록 하셨는데, 그 이유는 비둘기가 작기 때문입니다. 속죄제는 피를 뿌리고 나머지 고기는 일부분은 태우고 일부분은 제사장에게 응식으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둘기 한 마리로 드리면, 그 작은 거 피를 흘려 뿌릴 수는 있는데, 어떻게 일부분은 불에 태워 드리고 일부분은 제사장에게 몫으로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두 마리를 가져와서 하나는 그 전체를 번제로 불태워드리고, 또 다른 하나는 피를 흘려 그 피로 단에 뿌려 단을 정결케 하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의 몫으로 주는 것입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35 [고린도후서 10장]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file 고후 10:1-6 손재호 2014-08-27 3401
334 [고린도후서 10장] 주께서 주신 권세는 file 고후 10:7-11 손재호 2014-09-03 2160
333 [고린도후서 10장]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file 고후 10:12-18 손재호 2014-09-10 2388
332 [고린도후서 11장]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file 고후 11:1-6 손재호 2014-09-17 2371
331 [레위기 3장] 화목제 file 레 3:1-17 최상범 2014-09-24 4216
330 [레위기 4장,5장] 속죄제(1)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1 2922
» [레위기 4장,5장] 속죄제(2)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8 2384
328 [고린도후서 11장]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file 고후 11:7-15 손재호 2014-10-15 2560
327 [고린도후서 11장]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file 고후 11:16-27 손재호 2014-10-22 2301
326 [고린도후서 11장]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file 고후 11:28-33 손재호 2014-10-29 2062
325 [고린도후서 12장]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file 고후 12:1-13 손재호 2014-11-05 4912
324 [고린도후서 12장]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file 고후 12:14-21 손재호 2014-11-12 1994
323 [고린도후서 13장]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라 file 고후 13:1-13 손재호 2014-11-19 3517
322 [룻기서 1장] 룻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기서 1:1-22 손재호 2014-12-03 1765
321 [룻기서 2장] 룻이 보아스를 만나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2:1-23 손재호 2014-12-10 2878
320 [룻기서 3장]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3:1-18 손재호 2014-12-17 2190
319 [성탄말씀] 초림과 재림 히 9:26-28 최상범 2014-12-24 1288
318 [룻기서 4장] 메시아의 계보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 4:1-22 손재호 2014-12-31 2017
317 [사무엘상 1장] 한나의 기도와 사무엘의 출생 file 삼상 1:1-28 손재호 2015-01-07 3236
316 [사무엘상 2장] 한나의 찬양 file 삼상 2:1-11 손재호 2015-01-14 268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