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0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1:28-33
성경본문내용 (28)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31)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32)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33)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강설날짜 2014-10-29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말씀:고린도후서 11:28-3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어리석은 자랑을 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왜 바울의 자랑이 어리석은 자랑이 되는 것입니까? 바울 자신의 출신과 자신의 수고가 어리석은 자랑이 되는 것은 그런 자랑을 통하여 내가 진짜 사도이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자랑을 어리석은 자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어리석은 자랑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위한 염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랑이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이기 때문입니다. 곧 모든 교회가 사도들이 전한 바른 복음 위에 굳게 세워져 가기를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교회를 위한 염려는 자신이 방금까지 언급한 그 모든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바울이 방금까지 언급한 내용들이 무엇인지를 보겠습니다. 22-27절을 보면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고후 11:22-27).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수고를 더 많이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40에 감한 매를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맞았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5:1-3절에 보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재판을 할 때에 악인에게 정죄가 합당하여 태형을 가하려면 재판장이 죄의 경중에 따라 적절하게 매의 수를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매의 최고한도가 40대 입니다. 그것을 넘기면 천히 여김을 당할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찌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신 25:1-3). 여기서 ‘천히 여김을 받을까 하노라’고 했을 때 ‘여김’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보면 ‘hl;q;’(카라)라는 단어인데 ‘명예를 더럽히다, 모욕하다, 가볍게 평가되다, 수치를 당하다, 멸시를 당하다, 경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히 여김을 받을까 한다’는 말은 마치 사람이 동물처럼 취급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40대 이상의 매를 때리는 일은 동물에게나 하는 일이요, 사람에게 그렇게 할 경우 그를 치욕스럽게 만들어 그러한 형벌이 하나님에게서 온 정당한 형벌로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에 대해서 ‘너무 심한 매질을 할 경우 그를 불구자로 만들기 쉽고 그럴 경우에 그는 평생 조롱거리가 된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태형을 가할 때에 39대를 때렸습니다. 이것은 혹시 실수하여 40대를 넘기면 율법을 범한 것이 되기에 39대를 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에 근거하여 바울이 재판을 받고 매를 맞았는데 무려 다섯 번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하는 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바울이 율법을 어겼다고 태형 중에 최고의 형인 39대를 다섯 번이나 때린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 태장으로 맞은 것은 로마의 법으로 태형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돌로 맞은 사건은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제자들이 둘러 서 있을 때에 바울이 다시 일어나서 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외에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세 번이나 파선하고 여러 가지 위험들이 산재하였으며, 춥고 굶주리고 헐벗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이런 모든 수고보다 더한 수고로움이 있었습니다. 방금 언급한 이런 고난만 해도 감히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들인데 그런 것은 고사하고 더 마음에 눌리는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8절을 다시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였습니다. 물론 바울이 많은 고난을 받은 그 모든 수고가 다 교회를 위한 수고이지만 교회에 더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외부의 핍박이 아니라 거짓 진리에 속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염려하여 거짓 선생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어리석은 자랑도 하고, 자신의 수고를 말하는 것이지 자기를 알아달라고 하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자신을 남보다 더 대접하여 달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일은 고사하고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가 밤낮 그를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 때문에 날마다 눌리고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육체로 당하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왜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 가운데 많은 거짓 선생들이 들이 닥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거짓 선생들로 인해서 교회 가운데 많은 지체들이 복음에서 떠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교회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염려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 대한 염려는 어떤 것들입니까? 대부분 ‘교회가 어떻게 하면 부흥하고 성장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목회를 할 것인가? 교회당 건축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이런 염려들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교회 부흥이 우리의 염려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교회가 사도들이 전한 복음 위에 굳게 세워져 가기를 염려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8-31절을 보면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하여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다시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마지막으로 유언처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떠나면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외부에서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매를 해 놓았는데 이리와 늑대와 같은 자들이 양의 탈을 쓰고 와서는 그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고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를 보면 바울이 떠난 뒤에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며,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떠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회는 자신들의 뺨을 치는 그들을 잘도 용납하였습니다(고후 11:20).

 

그러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왜 그렇게 쉽게 거짓 선생들에게 넘어가는 것입니까? 거짓 선생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거짓 선생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바울이 채워주지 못한 인간의 욕망을 그들은 채워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채워주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일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서 영광스럽게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은 나의 일을 해주셔서 가정도 사업도 잘 되고 세상에서 성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으니 우선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그들은 사람의 공로와 자랑을 함께 섞어 넣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이 사람들에게 좋게 들린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복음을 증거 한 주의 종들이 세상의 영광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께 충성하고 순종하고 헌신하면 그 대가로 세상에서 높아지고 영광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와 같은 신세가 된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보상이 안 된다면 저 세상에서라도 보상이 주어진다고 하여야 할 것인데 보상은커녕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이것이 복음을 증거 하는 자의 보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16-18절을 보면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되 값없이 전하고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이 자신의 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조차도 포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가 용서 받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되었기에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보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이 주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4-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랑 받기를 좋아합니까? 피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와서는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이런 사랑보다 그리스도도 드러나지만 자기도 드러나고 사랑하는 그런 방식을 전하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이나 복음이나 영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고서 오늘 죽어도 좋습니까? 예수님을 믿고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러운 것이 없습니까? 비록 내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하여도 예수님의 그 사랑만으로 나는 감사하고 기뻐합니까? 그렇지 않고 예수를 믿음으로 내가 무언가 세상에서 덕을 보고 세상에서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은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아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그 십자가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부담이 됩니까?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와서는 십자가의 길을 세상의 영광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심히 염려하는 것입니다.

 

29절을 보면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라고 합니다. 왜 약하고 실족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멀어지는 것이 약한 것이며, 실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다른 것이 추가되어야 한다거나, 세상의 영광에 미혹되는 것이 다 연약하고 실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염려는 한가지 입니다. 갈라디아서 3:1절을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외면하게 만들고 율법적인 행함으로 돌아가려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 대한 책망인 것입니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오늘날도 우리를 꾀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 모든 유혹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끊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세상에서도 잘 되어야 복음이 잘 전해진다는 달콤한 유혹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생의 자랑이 되는 모습으로 유혹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생들이 인기를 얻고 그것을 따르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런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자신이 자랑하는 것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자기의 잘남과 세상의 영광을 자랑하는데 자신은 약함만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염려하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거짓 선생들에게 속아서 세상의 영광과 외모에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미련하고 약하게 된 것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바울은 많은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31-33절을 보면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으니 바울은 줄을 맨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넘어간 것입니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 했습니다(31-33). 바울의 이 모습이 어떠합니까?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나서서 장렬하게 죽든지 아니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 적들이 다 엎드려지든지 하면 복음이 더 잘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리의 생각에 기초해서 보면 광주리를 타고 도망간 이 이야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이야기 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이런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12:9-10절을 보면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약함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약함으로 그리스도가 드러남이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바울의 태도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바울의 자랑이 우리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교회를 위한 바울 사도의 염려가 우리의 염려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34 [고린도후서 10장]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file 고후 10:1-6 손재호 2014-08-27 3397
333 [고린도후서 10장] 주께서 주신 권세는 file 고후 10:7-11 손재호 2014-09-03 2160
332 [고린도후서 10장]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file 고후 10:12-18 손재호 2014-09-10 2388
331 [고린도후서 11장]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file 고후 11:1-6 손재호 2014-09-17 2371
330 [레위기 3장] 화목제 file 레 3:1-17 최상범 2014-09-24 4205
329 [레위기 4장,5장] 속죄제(1)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1 2921
328 [레위기 4장,5장] 속죄제(2)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8 2383
327 [고린도후서 11장]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file 고후 11:7-15 손재호 2014-10-15 2560
326 [고린도후서 11장]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file 고후 11:16-27 손재호 2014-10-22 2300
» [고린도후서 11장]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file 고후 11:28-33 손재호 2014-10-29 2062
324 [고린도후서 12장]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file 고후 12:1-13 손재호 2014-11-05 4910
323 [고린도후서 12장]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file 고후 12:14-21 손재호 2014-11-12 1993
322 [고린도후서 13장]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라 file 고후 13:1-13 손재호 2014-11-19 3511
321 [룻기서 1장] 룻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기서 1:1-22 손재호 2014-12-03 1765
320 [룻기서 2장] 룻이 보아스를 만나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2:1-23 손재호 2014-12-10 2878
319 [룻기서 3장]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3:1-18 손재호 2014-12-17 2190
318 [성탄말씀] 초림과 재림 히 9:26-28 최상범 2014-12-24 1288
317 [룻기서 4장] 메시아의 계보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 4:1-22 손재호 2014-12-31 2017
316 [사무엘상 1장] 한나의 기도와 사무엘의 출생 file 삼상 1:1-28 손재호 2015-01-07 3236
315 [사무엘상 2장] 한나의 찬양 file 삼상 2:1-11 손재호 2015-01-14 268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