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74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룻기서 1:1-22
성경본문내용 (1)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2)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4)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5)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6)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 오려 하여(7)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8)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9)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10)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11)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12)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13)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5)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8)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19)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21)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22)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강설날짜 2014-12-03

2014년 룻기서 공부

룻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말씀:룻기서 1:1-22

 

룻기서 1장은 모압 여인 룻의 인생을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룻기서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라는 말은 룻기서의 시대적 배경이 사사시대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입니다. 그 때 그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신 28:20-24). 그때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습니다. 그는 잠시 기근을 피하려고 간 것같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그가 왜 베들레헴에 머물러 회개하고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지 않고 단지 객관적인 사실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없는 시대에 아주 믿음이 좋은 이름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이 나의 하나님은 왕이라고 하면서도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입니다. 그 의미는 ‘사랑스러운 여인’ 또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도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희락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20절의 관주에 보면 ‘희락’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그 뜻은 ‘병약한’, ‘나약한’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기근을 피하여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서 이방 땅 모압 지방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어떠하였습니까? 3-5절을 보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모압에 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에게 두 아들만 남았습니다. 두 아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나안 여인들과의 통혼을 금한 율법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불순종적이며, 불신앙적 행동입니다(신 7:1-4, 23:3-6). 특히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총회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23:3-6절을 보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룻기서에서는 이런 율법을 어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에서 율법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담겨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건을 우리는 구약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취한 것,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과 같은 자들이 하나님의 총회에 편입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단지 하나님의 총회에 편입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악한 것까지도 선용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섭리의 손길은 후에 룻을 다윗의 계보를 잇는 조상의 반열에 세워 주심으로(룻 4:17) 하나님의 구속사 진행의 통로로 삼아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이방의 신실한 여인인 룻을 은혜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구속사 진행의 도구로 선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섭리의 손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정의 불행은 아비 엘리멜렉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5절을 다시 보면 모압으로 이주한지 십여 년이 될 즈음에 말론과 기룐이 거의 동시에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3절에 보면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의 죽음과 두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의식하면서 이를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치신 것”(13) 곧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차원에서 해석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십니다(히 12:6). 히브리서 12:8절에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치신 것”이라고 말하는 나오미의 절망 섞인 자조적 고백 속에서 우리는 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부성애적 사랑의 또 다른 일면을 엿보게 됩니다.

 

드디어 고난의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6절을 보면 오랜 흑암 속에 갇혀있던 나오미에게 마침내 희망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하셔서 양식을 주심으로 마침내 다시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흉년의 심판을 통해 저들의 회개를 촉구하시고 마침내 저들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는 사사시대에 사회적 특징으로 나타났었던 ‘타락-심판-회개-구원’의 반복적 순환주기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백성들을 아주 버리시지 않으시고 때가 차매(합 2:3) 저들의 회개를 담보로 다시 구원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당시 이스라엘 지경을 엄습한 흉년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의도된 징계의 방편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결과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 흉년을 통해 엘리멜렉의 가정이 모압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이 비명횡사를 당했지만, 이 과정에서 며느리로 삼은 룻을 통해서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구속사가 막힘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모든 일련의 긴박한 상황전개가 단순한 세상역사가 아님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역사를 통해서 언약적 구속사를 전개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섭리의 손길이 깊이 작용하고 있음을 명백히 확인하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 되시며, 만사의 시종을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섭리 하시는 역사의 주권자가 되십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은 언약백성들인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지 않으셨고, 이런 사실의 연장선상에서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이 실의에 빠져있던 모압 지방의 나오미에게까지 전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고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은 당시 절망에 빠져있던 나오미에게는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더 이상 낙심과 좌절과 불행만을 안겨준 한맺힌 모압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미련 없이 짐을 정리해 두 며느리와 함께 유다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중도에서 나오미는 갑작스럽게 두 며느리의 장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7-10절을 보면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은 이미 나이 많아 늙어서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치더라도, 두 자부의 경우는 아직도 장래가 창창하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자 저들에게는 타향이나 다름없고 소망이 없는 유다까지 동행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 것입니다. 수혼법에 근거한 계대혼인을 염두에 두고, 백번 양보해서 늙은 나오미 자신이 재혼해서 자녀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자라서 성년이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그때까지 과부가 된 두 젊은 며느리들에게 수절을 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13절에 보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자 나오미는 강력하게 두 며느리와의 결별을 결심하며 눈물로 작별을 고합니다. 자신의 불행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당연한 귀결이지만(13) 자신으로 인해서 젊은 며느리들에게까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심정을 토로합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들의 장래만이라도 평안케 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떠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마침내 오르바는 눈물을 흘리며 나오미와 못내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고향 모압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러나 룻은 막무가내로 나오미와의 동행을 고집합니다. 룻기서 기자는 이들 두 며느리의 상반된 행동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그들이 소리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고 했습니다.

 

15절에 보면 나오미는 자신을 좇아 유다 행을 극구 고집하는 룻을 향해 오르바의 현명한 선택을 따를 것을 재차 종용합니다. 남편이 죽은 상황에서 그것도 홀로 된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한다는 것은 사실상 젊은 과부들에게 있어서 여간 큰 희생을 강요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와의 동행을 고집합니다. 그녀의 선택에는 늙은 시어미를 봉양하는 데서 오는 일체의 고난까지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그것은 연민의 정에 이끌린 단순한 인간적인 동정심의 발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와진 신앙 고백적 차원의 결단이며,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발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룻의 간증을 보겠습니다. 16-17절을 보면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여기서 룻의 아름다운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룻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선적으로 비록 나오미가 흉년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를 했다고 해도 여전히 여호와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을 적극 발휘하며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신앙적 절개와 믿음의 순수성을 철저히 지켰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신앙을 부단히 며느리들에게 전수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사실상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 10:17).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우상숭배가 불가피했던 이방의 모압 여인 룻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하는 데서만 가능한 자기희생적 결단은 결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있는 룻의 고백 속에서 이런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따라서 나오미와의 동행을 결심한 룻의 선택 속에는 단순한 인간적 연민의 정 이상의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본주의 신앙관과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르바의 모압에로의 귀향을 고려한다면 룻의 선택의 배후에서 주권적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결코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일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와 다스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한결 같은 진술입니다(고전 12:3, 엡 2:8, 살후 1:10, 행 16:14, 고전 2:14). 바울의 고백대로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는 하나님 중심의 사고방식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신앙지침입니다.

 

19절에 보면 나오미가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온 성읍이 떠들썩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가 나오미냐”라고 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부연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볼 때 엘리멜렉의 집안은 베들레헴 성읍에서 유력한 가문이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20-21절에 보면 나오미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자괴적으로 실토하면서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오미라 칭하느뇨”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이런 사실을 충분히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고향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 하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각주에 보면 ‘희락’이라고 번역했는데 자신이 현재 처한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게 불리워지는 것이 너무도 비참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차라리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마라’란 각주에 보면 ‘괴로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마라라는 말은 고통과 괴로움의 형벌을 내포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를 지나 마라에 도착해 마실 물을 찾았으나 그 곳의 물이 너무 써서 마시지 못하자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붙인 바 있습니다. 출애굽기 15:22-23절을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지금 나오미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전능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불순종과 불신앙을 징계하시는 방식으로 주신 형벌의 결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아닌 차라리 ‘마라’로 불러달라고 청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소행으로 볼 때 마땅히 받아야 할 응분의 죄 값임을 중심에서 인정하는 회개와 자기성찰에 근거한 적극적인 신앙 고백적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미가 하나님을 특별히 전능자로 언급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20). 이런 의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본문의 문맥을 통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해서 사용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후에 이로 인해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진술입니다. 히브리서 12:11절에 보면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하나님의 징계의 차원에서 해석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심정으로 현실을 기꺼이 수용합니다. 그녀의 이런 자기성찰의 자세는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교제를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의 관점으로 접근해 볼 때, 오래지 않아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룻기서 저자는 22절에서 “나오미가 그 자부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는 말씀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흉년으로 인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했던 나오미는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음으로 불순종과 불신앙의 값을 톡톡히 치른 후에 마침내 베들레헴으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때가 마침 보리수확이 한창일 때라고 설명함으로써 이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 나오미와 룻의 걸음을 섭리적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국 흉년으로 인해 엘리멜렉의 가정이 모압으로 이주한 것은 분명 불순종적이고 불신앙적 행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압으로의 이주는 결과적으로 룻을 은혜로 구원해 하나님의 구속사의 반열에 세움으로 장래 메시아 출현을 위한 결정적인 통로가 마련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당시 기근의 주된 목적이 이스라엘의 범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징계일 뿐 아니라, 구속사의 전개과정에서 엘리멜렉의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역사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룻의 인생을 섭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을 섭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룻과 같이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에 쓰임 받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30 [고린도후서 10장]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file 고후 10:1-6 손재호 2014-08-27 3354
329 [고린도후서 10장] 주께서 주신 권세는 file 고후 10:7-11 손재호 2014-09-03 2145
328 [고린도후서 10장]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file 고후 10:12-18 손재호 2014-09-10 2371
327 [고린도후서 11장]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file 고후 11:1-6 손재호 2014-09-17 2365
326 [레위기 3장] 화목제 file 레 3:1-17 최상범 2014-09-24 4142
325 [레위기 4장,5장] 속죄제(1)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1 2904
324 [레위기 4장,5장] 속죄제(2)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8 2376
323 [고린도후서 11장]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file 고후 11:7-15 손재호 2014-10-15 2535
322 [고린도후서 11장]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file 고후 11:16-27 손재호 2014-10-22 2278
321 [고린도후서 11장]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file 고후 11:28-33 손재호 2014-10-29 2041
320 [고린도후서 12장]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file 고후 12:1-13 손재호 2014-11-05 4845
319 [고린도후서 12장]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file 고후 12:14-21 손재호 2014-11-12 1983
318 [고린도후서 13장]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라 file 고후 13:1-13 손재호 2014-11-19 3450
» [룻기서 1장] 룻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기서 1:1-22 손재호 2014-12-03 1748
316 [룻기서 2장] 룻이 보아스를 만나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2:1-23 손재호 2014-12-10 2854
315 [룻기서 3장]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3:1-18 손재호 2014-12-17 2164
314 [성탄말씀] 초림과 재림 히 9:26-28 최상범 2014-12-24 1286
313 [룻기서 4장] 메시아의 계보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 4:1-22 손재호 2014-12-31 2002
312 [사무엘상 1장] 한나의 기도와 사무엘의 출생 file 삼상 1:1-28 손재호 2015-01-07 3195
311 [사무엘상 2장] 한나의 찬양 file 삼상 2:1-11 손재호 2015-01-14 266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