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362
  • 어제방문자 : 
    1,077
  • 전체방문자 : 
    1,414,378
조회 수 219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룻 3:1-18
성경본문내용 (1)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2)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3)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4)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5)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6)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7)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 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8)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9)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10)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1)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12)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13)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14)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15)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16)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17)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18)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강설날짜 2014-12-17

2014년 룻기서 공부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말씀:룻기 3:1-18

 

오늘은 룻기서 3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룻기서 2장 말씀을 통해서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보리 추수 밭에서 보아스와의 만남과 보아스가 룻에게 보여준 남다른 호의와 친절을 전해들은 나오미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문의 친족으로서 기업을 무를 최적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룻 2:20). 이에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의 밭에서만 이삭을 주울 것을 권유합니다(룻 2:22). 그런 후에 나오미는 오늘 말씀에서 보아스로 하여금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케 하기 위해서 룻에게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룻의 입장에서 먼저 보아스를 찾아가서 구혼을 구함으로써 기업 무를 자로서 보아스의 의무를 촉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와 같은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절을 보면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일을 네게 고하리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몸을 단장하고 한 날을 택해서 밤늦게 찾아가 보아스의 잠자리에 함께 들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주문이 곧 동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계획은 오늘날의 윤리적 관점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없는 돌출 제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젊은 룻에게는 파격적인 요구입니다. 그러나 룻은 신앙적 관점으로 나오미의 제안을 기꺼이 수납합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규례인 고엘제도와 수혼법에 대해 익히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2:20). 더구나 룻은 이를 신앙 안에서 생명처럼 붙들었습니다.

 

룻의 이러한 신앙적 결단의 태도는 이후 나오미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보아스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실제적으로 확인이 됩니다. 9절을 보면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룻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나오미를 수행해 떠나오기 전부터 이미 분명한 여호와 중심의 신앙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참 이스라엘 백성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룻기서 1:16절을 보면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가 동서를 따라 모압으로 돌아갈 것을 권면했을 때 한 대답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룻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에게는 기업을 물려받아야 할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젊은 과부로서 다말의 경우와 같이 기업을 이을 후손을 위해 정당한 절차를 따라 합당한 고엘을 요구할 권리까지도 있었습니다(신 25:7-10, 레 25:25). 당시 기업을 무르는 고엘제도를 고려해 볼 때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과거 다말과 시아비 유다의 경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창 38장).

 

그렇습니다. 나오미의 제안을 신앙 안에서 기꺼이 수납한 룻은 마침내 보리타작 마당으로 내려갑니다. 7절을 보면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고 했습니다. 보아스가 일과를 마치고 노적가리 옆에 눕자 룻이 가만히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자리에 눕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지식이 아닌 생명으로 붙잡는 데서 나와지는 확신에 찬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사실 이방 여인 룻으로서는 선뜻 행하기 힘든 선택이요, 행동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으로 나오미의 제안을 수용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우리는 룻의 이와 같은 담대한 믿음과 의연한 결단의 행동을 보면서 이 일을 배후에서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깊이 개입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대위임령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대위임령을 주시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약속의 말씀은 성령님의 내주, 인도, 다스림의 방식을 통해서 오늘날도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에게 유효하게 역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생명처럼 붙들고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요,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룻의 결단과 결연한 행동 속에서 이런 사실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계시의존 신앙과 섭리의존 신앙에 바르게 접촉된 하나님의 친 백성임이 확실하게 실증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룻의 이런 결연한 행동이 앞서 나오미로부터 전해들은 고엘제도나 수혼법에 관한 규례들을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수납한 데서 나와진 신앙적 결단이었다는 사실은 인기척에 놀라 깨어난 보아스의 질문에 룻이 말한 답변을 통해서 명백히 확인이 됩니다. 8-9절을 보면 “밤 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더라.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볼 때 룻의 행동은 단지 시어머니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한 시늉이나 흉내가 아닙니다. 고엘제도를 믿음으로 수납한 전인적인 신앙고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의 답변 속에서 ‘옷자락으로 덮는다’라는 표현은 보아스로 하여금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물어주는 것을 통해서 생활의 보호와 보장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는 2:12절에서 보아스가 룻과의 첫 번 대면에서 그녀의 선행과 신앙적 결단을 치하하면서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히 상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한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들을 문맥적으로 종합해 보면 결국 룻이 보아스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는 길은 혼인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추론하게 됩니다. 후일에 이 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관계를 맺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에스겔 16:8절을 보면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혼인관계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관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볼 때, 룻은 보아스를 향해 구혼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처럼 말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의 답변이 보아스로 하여금 고엘제도에 따른 ‘기업을 물어달라’는 요청이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구혼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룻의 답변에 대한 보아스의 반응에서도 암시적으로 확인이 됩니다. 10-11절 말씀에 보면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백성이 다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다”란 표현은 룻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만큼 얼마든지 모압에 남아 재가해서 자신의 육신적인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신앙과 늙어 소망 없는 나오미의 봉양을 위해 기꺼이 베들레헴 행을 선택한 자기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인애의 행동을 칭찬하는 말입니다. 한편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다”라는 말은 룻이 처음에 그렇게 자기 자신의 행복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시모를 모시기 위해 베들레헴에로 귀향한 것을 가리키며, 동시에 룻이 나중에 시모를 잘 공경할 뿐만 아니라 엘리멜렉 가문의 계승을 위해서 고엘제도를 전심으로 믿고 의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과 같은 연로한 자에게 혼인을 청하는 신앙적 결단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인격을 통해서 육신적인 이해관계를 떠난 진심어린 인애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룻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고엘이 되어줄 것을 확약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10절에서 말하는 ‘인애’란 히브리어 ‘dsej’e(헤쎄드)란 말로서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는데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끊을 수 없는 사랑이나 돈독한 우정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곤 합니다. 더하여 보아스는 룻의 구혼을 수락함에 있어서 그녀의 현숙함을 추가적인 덕목으로 꼽습니다. 룻이 현숙한 여인이란 사실은 온 성읍 백성이 다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자로 소문난 보아스가 비록 이방 여인인 룻과 혼인을 한다고 해도 크게 축하를 받을 일이지 결코 비방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현숙한 여인이란 잠언 기자의 설명을 빌리면 ① 산업을 핍절치 않게 하며(잠 31:11-19), ② 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하며(잠 31:20), ③ 남편을 존귀케 만들며(잠 31:23), ④ 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으며(잠 31:26), 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으며(잠 31:27, 31), ⑥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주위로부터 칭찬을 듣는 자(잠 31:30-31)로 정의합니다. 이로 보건대 ‘돕는 배필’로서 현숙함을 구비했다면 이보다 더한 배우자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아스와 룻의 대화가 긍정적인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다시 한번 그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의 손길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처음 가나안의 흉년을 피해 베들레헴에서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는 엘리멜렉의 불신앙적 행위까지를 선용하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모압 여인 룻을 은혜로 구원하셔서 이처럼 구원의 크신 경륜을 따라 보아스를 만나게 하심으로 영광스런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유다지파의 반열에 편입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이 은혜의 선물인 사실이 이런 원리에 기인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따라 판단하셨다면 우리는 구원은커녕 마땅히 심판을 받아 지옥 형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평생을 무익한 종의 심정인 “내가 마땅히 행할 일을 하였을 뿐이다”(눅 17:10)라는 빚진 자의 마음을 품고 일생을 한결같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결국 여호와 신앙의 정체성은 무상으로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적극적인 감사의 반응이지, 자신의 현세적인 유익을 위한 보상심리의 발동이 아닙니다. 이 관점을 바르게 정립하는 일은 하나님을 인생의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으로 삼느냐, 아니면 수단과 방편 곧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으로 삼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아스가 룻의 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문제가 하나 제기됩니다. 그것은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는 일과 관련해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2-13절에 보면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찌니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일단 그 친족에게 고엘의 권리를 수행할 것인지의 여부를 물어서 자신의 거취문제를 확정하겠노라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를 합니다.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왜 보아스에게 고엘의 의무를 수행해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나오미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요? 이 부분과 관련해서 4장에서 보아스와 더 가까운 친족과의 대화를 통해 보아스를 선택한 나오미의 심정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 가까운 친족은 기업을 무를 만큼 덕망에 있어서나 책임감에 있어서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엘리멜렉의 가문을 위해 기업 무르는 일과 관련해서는 이를 재정적인 부담과 손해로까지 여기면서 수치를 각오하고서라도 고엘의 권리를 자원해서 포기합니다. 아마도 나오미는 그 가까운 친족의 됨됨이에 대해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유력한 보아스를 택한 것임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14-15절을 보면 새벽녘에 룻은 조용히 보아스 곁을 떠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때 보아스는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줍니다. 16절에 보면 집으로 돌아온 룻을 보자마자 나오미는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고 하며 다급히 묻습니다. 17절에 보면 룻은 자초지종을 낱낱이 전하는 가운데 특별히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면서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고 한 보아스의 말을 강조해서 전합니다. 우리는 이상의 대화 속에서 특별히 보아스가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면서 시모에게 빈손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한 말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선적으로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룻을 위해 기꺼이 고엘이 되어 주겠다는 보아스의 약속의 말에 대한 확실한 보증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는 며느리 룻을 통해 전해진 나오미의 제의를 기꺼이 수락하겠다는 보아스의 동의를 상징적으로 증거 하는 의미도 내포돼 있습니다.

 

한편 안식년 규례에 따르면 6년은 봉사와 수고의 기간이며, 7년째는 안식과 해방의 순간입니다(출 23:10-11, 레 25:2-7, 20-22, 신 15:1-15). 따라서 보아스가 여섯 번 보리를 되어 주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이제 나오미와 룻에게 있어서 고난과 수고의 기간이 다 끝나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곧 안식과 해방의 때가 임박해 왔음을 상징적으로 시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해석의 개연성은 자의적이기 보다는 문맥을 통해 충분히 검증될 수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특별히 ‘보리 여섯 번을 되어 주면서 빈손으로 시모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했던 보아스의 말에 대한 나오미의 확신에 찬 반응입니다. 나오미는 보리 여섯 번을 되어 준 보아스의 행동 속에 담긴 면제년의 의미를 간파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에’라는 수식어(부사)가 넓게는 3장 전체를 통해 보아스와 룻 사이에 오간 모든 얘기를 포함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17절에서 룻이 강조해서 전한 ‘보리 여섯 번을 되어 주면서 빈손으로 가지말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지목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런 보아스의 행동 속에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물기 위해서 어떤 수고와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보아스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고 하겠습니다.

 

나오미는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잠잠히 바라보자고 룻에게 제안을 합니다. 18절을 다시 보면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일의 결국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믿는 히브리적 신앙표현입니다(잠 16:1, 33). 하지만 나오미는 속으로는 일의 성취를 이미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고엘제도에 입각한 자신의 계획이 보아스에 의해 이의 없이 수락되는 것을 통해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있음을 의심 없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이 내게 응하고 내가 말씀을 응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될 때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16절을 보면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때가 서서히 찾아온 것입니다. 고난의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찬란한 광명의 빛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때와 환경과 사람을 적절하게 선용하심으로써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사람의 수고와 노력을 선용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사실 순종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사랑에 반응하는 마땅함으로의 표현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의 의중을 잘못 판단한 나머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마 25:24)로 오해한 결과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땅에 그대로 묻어 두었다가 큰 징계를 받습니다. 구원에 합당한 열매란 말씀 앞에서 성도들의 부단한 순종력의 발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룻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순종하여 삶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34 [고린도후서 10장]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file 고후 10:1-6 손재호 2014-08-27 3398
333 [고린도후서 10장] 주께서 주신 권세는 file 고후 10:7-11 손재호 2014-09-03 2160
332 [고린도후서 10장]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file 고후 10:12-18 손재호 2014-09-10 2388
331 [고린도후서 11장]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file 고후 11:1-6 손재호 2014-09-17 2371
330 [레위기 3장] 화목제 file 레 3:1-17 최상범 2014-09-24 4209
329 [레위기 4장,5장] 속죄제(1)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1 2922
328 [레위기 4장,5장] 속죄제(2) file 레 4:1-5:13 최상범 2014-10-08 2384
327 [고린도후서 11장]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file 고후 11:7-15 손재호 2014-10-15 2560
326 [고린도후서 11장]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file 고후 11:16-27 손재호 2014-10-22 2300
325 [고린도후서 11장]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file 고후 11:28-33 손재호 2014-10-29 2062
324 [고린도후서 12장]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file 고후 12:1-13 손재호 2014-11-05 4910
323 [고린도후서 12장]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file 고후 12:14-21 손재호 2014-11-12 1994
322 [고린도후서 13장]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라 file 고후 13:1-13 손재호 2014-11-19 3515
321 [룻기서 1장] 룻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기서 1:1-22 손재호 2014-12-03 1765
320 [룻기서 2장] 룻이 보아스를 만나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2:1-23 손재호 2014-12-10 2878
» [룻기서 3장] 나오미의 계획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file 룻 3:1-18 손재호 2014-12-17 2190
318 [성탄말씀] 초림과 재림 히 9:26-28 최상범 2014-12-24 1288
317 [룻기서 4장] 메시아의 계보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file 룻 4:1-22 손재호 2014-12-31 2017
316 [사무엘상 1장] 한나의 기도와 사무엘의 출생 file 삼상 1:1-28 손재호 2015-01-07 3236
315 [사무엘상 2장] 한나의 찬양 file 삼상 2:1-11 손재호 2015-01-14 268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