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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2:1-11
성경본문내용 (1)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2)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3)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4)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5)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6)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7)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8)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9)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10)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11)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강설날짜 2014-02-12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


말씀:고린도후서 2:1-11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예가 됨을 배웠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을 변경한 것은 자신의 유익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함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의 기쁨을 돕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울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따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예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바울 사도가 왜 고린도교회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편지를 보냈는지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잠시 본 1:23-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 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편지를 보내는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끼려고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지금 당장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들을 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한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바울의 섬김을 받은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바울이 자신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옛날 우리가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 단체에서 활동할 때 열심히 전도하여 일대일로 양육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도운 사람들을 자기 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목자와 양의 관계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자신이 돕는 양들의 신앙 문제에 관여하여 주관하고자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아직 지식이 없을 때 행한 일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주님의 일하심에 은혜로 참여하는 것 뿐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다스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된 자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마땅한 자세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말씀대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는 능력이 지금도 역사하셔서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예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를 근심하게 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어떤 자세로 전도하고 다니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11:20절 말씀에 보면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찌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를 근심하게 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자기들의 종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런 거짓 사도들을 잘도 용납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자기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 바로 거짓 사도들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런 자들을 분별하여 분명히 물리쳐야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들을 용납한 것입니다. 도리어 참된 목자 바울을 불신하고 배척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목사들이 목회를 한다고 하면서 교인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고, 자기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바울 사도의 이 책망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늘 살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자신의 소유인양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가 된 자들로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자신이 주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바울 자신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로 때가 되매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믿게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일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단지 그 주님의 일하심에 쓰임을 받은 도구일 뿐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은 자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일방적으로 돕는 자이고 자신은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입니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11절 말씀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요청하기를 자신을 위하여 기도로 도우라고 합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11). 바울 사도는 자신도 도움이 필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들이 연보를 하여 바울 사도를 도왔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믿음에 서 있는 모습이 바울 사도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라도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와 성도의 관계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남의 기쁨을 도와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근심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성도의 교제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할 수만 있으면 서로 부딪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에 대해서 상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서로 피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몸의 지체가 서로 떨어져 있으면 그것을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지체가 서로 상관하지 않으면 그것이 몸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서로 상관하지 않고자 하는 것입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현대인들의 특징인데 교회에서 마저도 그런 모습들이 만연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교회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써 서로 돕고 도우며 기쁨을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어떻게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기쁨을 돕고자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보면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 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줄 확신함이로라”고 했습니다(고후 2:1-3). 바울 사도는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를 결단 하였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직접 방문하게 되면 그들을 책망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들로 근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로 근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만나기 위해서 방문을 연기한 것입니다.

 

바울의 기쁨은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지 다른 세상이나 세상의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그 의미를 좀더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또다시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하겠기에, 여러분에게로 가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런 편지를 쓴 뜻은, 내가 그리로 가게 될 때에, 나를 기쁘게 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내가 마음 아픈 일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기쁨임을, 나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확신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 사도의 기쁨은 성도가 믿음 안에 서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바울 자신의 기쁨만이 아니라 고린도교회의 기쁨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기쁨을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서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6-13절 말씀을 보면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해석이나 설명이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도 그들의 믿음 때문에, 그들이 주 안에서 서로 간절히 보고자 하는 사랑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쁨이 있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한 주간 만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까? 방금 읽은 이런 말씀의 내용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썩어지고 쇠하여지고 더러워질 것들, 곧 불에 살라질 것들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이 없지는 않습니까? 바울 사도의 이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큰 환난과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 눈물로 썼다고 하는 이 편지는 사라진 것으로 많은 성경학자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그 편지를 받고서 고린도교회가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편지는 바울이 아주 강력하게 범죄 한 자들을 책망한 내용일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 사도가 범죄 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아마도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도 그런 자들과 교제를 금하였을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책망도 결국은 그들이 믿음에 서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기쁨을 더하게 하고자 함인 것이지 책망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넘치는 사랑으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책망할 때에 정말 사랑으로 세우기 위하여 하는지, 아니면 미워하고 판단하고 책망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볼 때 미워하고 판단하는 마음으로 책망을 할 때가 많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로는 사랑으로 세우기 위하여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제 자신을 볼 때에도 이를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 하고 나면 나도 그런 허물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하여 함께 책망을 받는 것이지 목사가 완벽해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먼저 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책망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자가 그 말씀으로 책망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함께 믿음에 세워지는 기쁨이 더하여 지기를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5-9절 말씀을 보면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찌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근심하게 하는 자가 있었지만 그는 바울을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다고 합니다. 그 벌이란 많은 사람들이 그와 교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봅니다. 바울은 그 벌 받음이 이제는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그로 하여금 벌을 받게 하면 많은 근심에 사로잡힐까 염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곧 실족할까 염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보면 사랑으로 근심하게 하는 책망이 회개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근심은 사망에 이르지만 이러한 근심은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을 통하여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10-11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용서한 일이라면 바울 사도 자신도 그러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용서 한 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죄인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바울 사도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주님께서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지 아니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사단의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단의 궤계가 무엇입니까? 사단은 늘 참소하는 자입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작은 것도 부풀려서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에게서 끊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궤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단의 궤계를 이기는 것은 바로 용서의 위력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입니다(마 9:13).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주님의 용서의 위력 속에서 서로 기쁨을 돕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데살로니가전서 3:12-13절의 말씀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는 이 말씀이 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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