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0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2:12-17
성경본문내용 (12)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13)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5)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17)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강설날짜 2014-02-19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말씀:고린도후서 2:12-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이 서신을 쓴 이유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쓴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기쁨을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고린도후서 2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4-16절 말씀을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우리를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는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김을 이야기 할 때 어떤 이김을 생각합니까? 이 세상에서의 이김을 생각합니다. 곧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이김도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승리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이김이란 그런 이김이 아닌 것입니다. 곧 세상적인 성공이나 승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떤 모습으로 증거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2-13절 말씀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갔습니다. 드로아는 소아시아 서북 무시아도에 있는데 마게도냐와 거래하는 아주 중요한 항구로 터키 서쪽 에게해에 있습니다. 고대 트로이에서 약 10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드로아에서 남쪽으로 40km떨어진 앗소까지 걸어가기도 하였고(행 20장), 2차 전도여행 중 아시아로 가려했으나 꿈에 마케도니아 사람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지역으로 행선지를 돌린 곳이기도 합니다(행 16장). 바울 사도의 강론 중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린 곳이기도 합니다(행 20장). 하여튼 바울이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주 안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게도냐로 갔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가 빨리 오지 않자 여러 가지 근심과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드로아 형제들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바울은 디도 편으로 고린도전서를 고린도교회에 보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것을 기대하며 학수고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디도가 오지 않으니 심히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와 가까운 마게도냐로 가서 디도를 만나고자 그리로 급히 간 것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서 디도를 만난 내용에 대해서는 7:5절 이하에 보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7:5-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드로아에 복음의 문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에 대한 염려로 인해서 디도를 만나기 위해 마게도냐로 왔습니다. 그가 마게도냐로 왔을 때 그의 형편이 어떠하였습니까?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가 어디를 가든지 씩씩하게 불굴의 투지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두렵고 떨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천한 자라고 합니다. 그런 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위로를 하셨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도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는 고린도교회에 회개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디도 편으로 고린도교회에 보내면서 그들이 자신의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여 회개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바울은 디도가 그런 기쁜 소식을 가지고 속히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디도가 바로 그런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의 회개의 역사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시비를 건 것입니다. 바울은 신실하지 못하다, 연약하다, 실패 하였다고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이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광주리를 타고 밤에 몰래 도망을 쳤습니다(행 9:23-25). 고린도교회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물러나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드로아에서는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마게도냐로 가버렸습니다. 마게도냐에서는 두렵고 떨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안팎으로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 사도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이김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다시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기게 하시는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약하고 두렵고 떠는 모습입니다. 도망을 다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무슨 이김이 되는 것입니까?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도들을 사용하시는 방법은 세상이 볼 때에는 실패의 모습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새 언약의 일군의 영광을 말하는 시작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지셨기에 가는 곳마다 승리하면서 세상의 권력을 굴복시키며 정복해 나가야 할 텐데 실상은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이야기 할 때 제국주의자들이 무력으로 약한 나라를 정복하면서 선교했다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곧 정복하고 이기는 것을 선교의 승리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곧 진정한 이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이김과 승리를 복음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교회가 힘이 있어야 전도도 하고, 구제도 하고, 선교도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힘이란 바로 숫자와 돈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그런 힘으로 증거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였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주의 이름을 의지하겠다고 합니다. 시편 20:7절을 보면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선지자는 인생의 호흡이 그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 이사야 2:22절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들이 만들어내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이김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사용하실 때에 세상의 방법과는 반대되는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로 하여금 너무나 심한 환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마치 사형선고를 받아 죽이기로 작정된 자처럼 사용하시는 이유는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고후 1:9). 그런데 이런 모습은 세상에서 보면 승리하는 모습이 아니라 실패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이렇게 사용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4-16절 말씀을 다시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실패자의 모습으로 사용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하면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을 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보다 더 착하게 살아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자고 합니다. 명절이나 집안의 대소사를 잘 참석하고 그들을 돕고 섬겨서 그들로 호감을 가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상살이에서도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 손해를 보고 겸손하고 양보하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것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가 이처럼 평소에 생각하는 향기와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족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 칭찬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마땅히 그리스도인으로써 본이 되어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함으로 손가락질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더 악착같고 더 계산적이고 더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8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아닌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3-4절 말씀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지 아니하는 사람은 망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 사도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무슨 착한 일을 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사도로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향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모든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돌아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모든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복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가 다 좋아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사람을 좋게 할 것인가 하나님을 좋게 할 것인가의 질문을 하면서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10절 말씀에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걸림돌입니다. 걸림돌이 없는 복음은 가짜 복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복음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한 편은 사망의 냄새를 맡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보면 이미 말씀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 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 즉 복음이란 반드시 이런 기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두 편으로 갈라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저주를 받는 것이요, 실패한 모습으로 보여서 싫다고 도망치게 되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십자가를 보면서 바로 나의 죄로 인하여 대신 저주 받으신 십자가이구나 하면서 그 십자가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은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두 강도와 같습니다. 한 쪽 강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네 자신도 못 구하면서 남을 구한다고 하느냐며 네 자신이나 구원해 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실패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강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주님의 나라에 임할 때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눅 23:43).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화가 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똑같이 처형당하는 강도인데 한 강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 가고 한 강도는 믿지 않음으로 지옥 간다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사망의 냄새와 생명의 냄새를 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방식이 사도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볼 때에 능력과 기적으로 모든 세상을 굴복시키는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바울에게도 희한한 능력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으로 증거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과 핍박으로 증거 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런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의 성공을 말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연약함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도라면 어떻게 외모도 별 볼일 없고, 말도 어눌하고, 하는 일도 시원찮은 모습이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배경 있는 자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능력 있게 사역하는 자신들이 진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러한 사람들을 수다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고 합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수다한 사람과 같이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사람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희미하게 만드는 자들인 것입니다. 마치 포도주에 물을 혼합하는 것처럼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 자신은 순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결과 온갖 핍박과 환난을 다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로,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로 난 것입니다. 누가 이것을 감당하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냄새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의 냄새로 역사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21 [레위기 1장] 번제 file 레 1:3-17 최상범 2014-04-02 3713
320 [레위기 1장] 예물과 헌상 file 레 1:1-2 최상범 2014-03-26 3168
319 [고린도후서 4장]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file 고후 4:1-6 손재호 2014-03-19 3285
318 [고린도후서 3장]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file 고후 3:12-18 손재호 2014-03-12 3301
317 [고린도후서 3장] 우리가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에 file 고후 3:6-11 손재호 2014-03-05 2892
316 [고린도후서 3장]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니 file 고후 3:1-5 손재호 2014-02-26 4480
» [고린도후서 2장]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file 고후 2:12-17 손재호 2014-02-19 4055
314 [고린도후서 2장]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 file 고후 2:1-11 손재호 2014-02-12 4509
313 [고린도후서 1장]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file 고후 1:12-24 손재호 2014-02-05 4831
312 [고린도후서 1장]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file 고후 1:1-11 손재호 2014-01-29 5746
311 [고린도전서 16장]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file 고전 16:13-24 손재호 2014-01-22 3833
310 [고린도전서 16장]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file 고전 16:1-12 손재호 2014-01-15 4339
309 [고린도전서 15장]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file 고전 15:50-58 손재호 2014-01-08 4120
308 [고린도전서 15장]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file 고전 15:35-49 손재호 2013-12-18 3603
307 [고린도전서 15장] 나는 날마다 죽노라. file 고전 15:29-34 손재호 2013-12-11 6090
306 [고린도전서 15장]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 file 고전 15:20-28 손재호 2013-12-04 4484
305 [고린도전서 15장]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file 고전 15:12-19 손재호 2013-11-27 4946
304 [고린도전서 15장] 복음을 알게 하노니. file 고전 15:1-11 손재호 2013-11-20 43355
303 [고린도전서 14장]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file 고전 14:26-40 손재호 2013-11-13 5980
302 [고린도전서 14장]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file 고전 14:20-25 손재호 2013-11-06 553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35 Next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