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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3:12-18
성경본문내용 (12)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13)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14)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15)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강설날짜 2014-03-12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말씀:고린도후서 3:12-18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새 언약과 옛 언약을 대조하면서 새 언약의 일군의 영광이 옛 언약의 일군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새 언약의 일군은 의문 곧 율법으로 하지 않고 오직 영으로 합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맡았던 의문의 직분 곧 죽이는 직분도 영광스러운 직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스러운데 살리는 직분인 영의 직분이야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고린도후서 3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12-13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같은 소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6-11절에서 말한 새 언약의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새 언약이 영원하며 변할 수 없는 언약으로서 그 영광에 있어서도 옛 언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소망이 그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담대히 말하는데 모세가 장차 없어질 영광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 같이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출애굽기 34:29-35절 말씀을 새롭게 재해석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4:29-35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증거 판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째 받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첫번째 받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사건 때에 깨어졌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움이 더딤을 보고 아론에게 이르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신이라고 하며 그 앞에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며 음란히 섬겼습니다. 이와 같은 자기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모세는 분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증거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어버렸습니다. 만약 모세가 이 증거판을 깨어버리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진멸당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법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두 번째 돌 판을 다시 받아 오는데 그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그를 보는 자들이 다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그들을 가까이 오게 하고서는 얼굴의 광채가 나는 그대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나서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모세가 왜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을까요? 출애굽기 34:34-35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말씀하실 때는 수건을 벗고 있다가 회막에서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가리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모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려고 하였기 때문에 가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수건으로 그 광채를 가린 것은 그런 뜻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에 보면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얼굴을 그 수건으로 가린 것은 그 얼굴의 광채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지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받아 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히 두려워서 그 앞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랬던 그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세를 미워하고 대적하며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에서 광야생활 40년 동안의 과정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완악함 때문에 그 율법의 영광은 사라지고 율법의 완성이 되는 새 언약의 영광을 내다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가려져야 하고 고발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직분인 의문의 직분이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하나님의 법은 인간들이 만든 법과는 달리 거룩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은 선한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법을 그대로 집행하는 자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직분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율법에 대하여 마태복음 5:17-18절에 보면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다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천지보다도 하나님의 율법 한 점이 더 귀한 것입니다. 율법에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시대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였습니까? 돌로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율법을 완성하시는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는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신 21:23). 그런데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자신이 내린 율법의 저주를 자신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성취되는 영광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만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의 저주받는 자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죄를 대속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죄의 영광만이 아니라 의롭게 하는 영광도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긍휼과 진리가 함께 만나고, 의와 화평이 함께 입을 맞춘 것입니다.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새 언약의 일군인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수건과 같은 것으로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밝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13-15절 말씀을 보면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문에 쓴 증서는 우리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그 의문을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처럼 수건으로 가릴 필요 없이 담대히 새 언약의 영광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14-15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저희 마음이 아직도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돌아오면 그 수건이 벗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이 아닙니다. 바울이 떠난 후 고린도교회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증거한 복음도 부정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십자가 복음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저주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1:8절 말씀에 보면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증거 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 당시에만 수건이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에도 수건이 가려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들이 수건이 가려진 자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성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로 인한 정죄를 다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시는 대속도 다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완성을 믿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들의 행위로 무엇을 보태어야 한다고 여기는 자들은 여러 가지 추가적인 행위를 덧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들고자 합니다. 물론 그들은 완전히 무효라고 하지는 않을지라도 완전하지는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모든 이단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을 보십시오. 그들은 공적을 강조합니다. 안식교는 아직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다 인간의 공적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무효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을 믿고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가 로마 카톨릭의 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허물고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성화와 축복과 상급은 행함으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 이미 구약에서 증거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행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이제부터는 새 사람이 되었으니 바르게 행동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는 죽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로 돌아가는 자는 수건이 벗겨집니다. 16-17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질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까?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하십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나고 손해가 일어나면 당장 무슨 생각이 듭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간에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법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자유 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업이 안 되고, 병이 들고, 실패하는 것이 저주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하려고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집어넣기도 하고, 인간의 행위를 집어넣기도 하여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에게는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영광을 직접 봐야 합니까? 고린도후서 4:3-4절 말씀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수건이 가려지듯이 복음에 가려져 있으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임한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란 세상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건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임한 자에게는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자는 그 십자가가 영광임을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완성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10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증거 하는 영광스러운 사도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환난, 궁핍, 곤란, 매 맞음, 갇힘, 요란함, 수고로움, 자지 못함, 징계를 받는 자 같음, 욕됨, 속이는 자 같음, 근심하는 자 같음, 가난한 자 같음,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습니다. 모세의 수건이 가려진 자들에게, 곧 복음이 비치지 못하게 가려버린 자들에게는 이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건이 벗겨진 자들은 이런 바울을 통하여 항상 기뻐함과 부요하게 함과 영광과 즐거움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역사인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런 자들은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은혜는 사람의 혈육이나 노력이나 애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임한 곳에 자유 함과 영광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주의 영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세상이 알 수 없는 십자가의 영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담대히 주님의 이 십자가의 영광을 증거 하는 새 언약의 일군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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