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98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7:25-40
성경본문내용 (25)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26)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27)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28)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29)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30)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31)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32)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33)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34)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35)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36)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37)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38)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39)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40)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강설날짜 2013-06-26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이 세상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말씀:고린도전서 7:25-40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전서 7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가 주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감사하며 사셨습니까? 성경은 이 세상 자체를 종말론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곧 이미 끝이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요 19:3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이상적인 희망이든 꿈이든 간에 인간이 이루어 내어서 만들 유토피아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성취하시고 재림을 통해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자족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주의 영이 임하면 자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 답변을 우리는 오늘 본문 29-3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형적들, 곧 이 세상의 모습들,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결국 묵시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눈에 보이는 이 역사 세계 속에서 다 이루어지면 이 세상은 불타 없어지는 것입니다(벧후 3:7).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아니한 자 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29-31절의 말씀과 같이 살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의 모든 형적들이 지나가고 사라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달라고 애통하면서 기도해야 할까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것이기에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나라를, 곧 주님의 재림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 곧 그 약속의 나라를 우리가 눈에 보는 듯이 여기며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정말로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질 그 성취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이 세상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솔직하게 우리 자신들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 곧 사라져 없어질 것들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2:15-16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보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주의 영이 임하여야 됩니다. 주의 영이 임하면 세상의 종말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느 정도로 자족하였는가 하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부요에 처할 줄도 알았다고 합니다. 일체의 비결을 알았다고 빌립보서에서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4:12절을 보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심지어 빨리 죽고 싶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20-24절을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세상 살기가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빨리 죽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 곧 십자가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너무 좋아서, 우리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더 좋아서 빨리 죽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이런 신앙이 부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신앙을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노력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주의 영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봐야 오늘 본문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처녀에 대한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5-31절을 보면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처녀에 대하여는 주께 받은 계명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 충성된 사도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처녀들은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곧 임박한 환난이 임한 이 때에 처녀들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처녀들에 대한 결혼의 권면의 요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임박한 환난’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루살렘의 멸망일 수도 있고, 로마의 핍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온 세계의 멸망의 모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박한 환난이 임할 때 누가 더 환난을 당하게 됩니까? 마태복음 24:15-20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자들이 도망하기가 더 힘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두렵지 않습니까? 재림의 시기를 알아서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재림의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종말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란 메시아가 오시면 말세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는 것이 말세의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오셨고,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이 이미 종말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종말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알 때 자유 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처음에는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면서 따라 갔습니다. 예수님이 높아지시면 자기들도 한 자리 하고자 서로 누가 높으냐며 시기질투하고 치맛바람까지 일으키면서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고 나니 세상의 끝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의 끝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까? 이 세상의 형적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 자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전에는 두려워서 도망간 관원들 앞에서 도리어 큰소리를 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관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제자들을 잡아서 협박을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협박이 통했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죽이고 갖은 핍박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더욱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세상의 끝을 안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여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라질 형적들을 붙들고 있으면 그것들과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어떤 중요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처녀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결혼하여 살고 있는데 이혼해야 할까요? 그러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27). 그러면서 결혼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28). 그러나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나누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32-35절을 보면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처녀 총각 때는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다가도 결혼하게 되면 어찌하면 아내와 남편을 기쁘게 할까하면서 그 마음이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올무를 놓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의 유익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곧 그들로 하여금 마음의 분요함이 없이 오직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32-35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의 형적이 지나가는 것이기에 세상의 일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누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인간이 살아가는 일에 큰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인륜지대사라 하여 관혼상제 즉 성인식, 결혼, 초상, 제사를 말합니다. 이러한 일조차 종말에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고자하는 사람이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하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오겠다고 하니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겨두라고 하십니다. 지금 주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눈에 보이는 형적들에 마음이 얼마나 빼앗깁니까? 너희의 보물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6:21). 세상의 형적들을 보물이라고 여기면 마음이 거기에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주님의 나라에 마음이 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이 말씀 앞에 다시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골로새서 3: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6-38절을 보면 계속해서 바울은 권면합니다.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일반적으로 이 본문 말씀은 처녀를 둔 부모에게 대한 권면의 말씀을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말씀의 요점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딸을 결혼시키는 것은 무방하나 바울은 결혼시키지 않는 것이 더욱 잘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 말씀에 대한 견해가 분분합니다. 그것은 이 본문은 처녀 딸을 둔 부모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아니라 처녀의 약혼자에게 하는 권면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헬라어 원문에는 ‘딸’이라는 말이 없다는 것과 ‘혼기도 지나고’라는 말이 ‘정욕을 억제하기 어렵고’라고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라는 말도 부모가 딸을 시집 보내는 것보다 남녀의 성행위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고대 로마나 히브리 시대 딸의 결혼 문제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39-40절을 보겠습니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혼에 대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의 말씀으로 과부들의 재혼에 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아내는 그 남편이 살 동안에만 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죽으면 자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자기 뜻대로 시집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때는 반드시 주 안에서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재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다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세상의 행적이 다 지나간다는 분명한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분명한 종말론적인 세계관에 기초해서 결혼관을 소유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아니하고 오직 우리 주님을 온전히 섬겨가는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00 [고린도전서 13장]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file 고전 13:8-13 손재호 2013-10-23 4815
299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이 없으면--- file 고전 13:1-7 손재호 2013-10-16 5610
298 [고린도전서 12장]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file 고전 12:12-31 손재호 2013-10-09 6602
297 [고린도전서 12장] 은사를 주신 목적 file 고전 12:4-11 손재호 2013-10-02 4722
296 [고린도전서 12장] 신령한 것에 대하여 file 고전 12:1-3 손재호 2013-09-25 3778
295 [고린도전서 11장] 주의 만찬에 대한 권면 file 고전 11:17-34 손재호 2013-09-11 5730
294 [고린도전서 11장] 권세 아래 있는 표 file 고전 11:1-16 손재호 2013-09-04 4170
293 [고린도전서 10장]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file 고전 10:23-33 손재호 2013-08-28 5078
292 [고린도전서 10장]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 file 고전 10:14-22 손재호 2013-08-21 4622
291 [고린도전서 10장] 우리의 거울이 되어 file 고전 10:1-13 손재호 2013-08-07 5731
290 [고린도전서 9장]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file 고전 9:19-27 손재호 2013-07-24 4141
289 [고린도전서 9장] 사도 바울의 자랑과 상 file 고전 9:16-18 손재호 2013-07-17 4959
288 [고린도전서 9장] 복음을 위한 사도됨의 변명 file 고전 9:1-15 손재호 2013-07-10 5871
287 [고린도전서 8장]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file 고전 8:1-13 손재호 2013-07-03 5817
» [고린도전서 7장] 이 세상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file 고전 7:25-40 손재호 2013-06-26 3987
285 [고린도전서 7장]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 file 고전 7:17-24 손재호 2013-06-19 5537
284 [고린도전서 7장] 혼인한 자들에 대한 명령 file 고전 7:10-16 손재호 2013-06-12 3394
283 [고린도전서 7장] 남편과 아내의 의무 file 고전 7:1-7 손재호 2013-06-05 5243
282 [고린도전서 6장]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file 고전 6:12-20 손재호 2013-05-29 6591
281 [고린도전서 6장]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 file 고전 6:1-11 손재호 2013-05-22 543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34 Next
/ 34